[여성파워] 김성녀 예술감독 "도전 즐기는 리더여 '엄마'가 돼라"

지난해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부임
'장화홍련' '배비장전' '서편제' 연달아 매진사례
"창극 무한변신 통해 르네상스 이끌것"
여자보다 강한 '엄마 리더십'으로 단원들 포용
  • 등록 2013-11-21 오전 11:36:13

    수정 2013-11-21 오후 1:48:03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의 리더십은 ‘엄마의 리더십’이다. 김 감독은 “엄마의 리더십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면서도 그 안에 회초리와 눈물도 담고 있다. 결국 엄마의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 사회의 리더십도 잘 실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사진=권욱 기자 ukkwon@).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지난해 11월 2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장화홍련’은 창극 역사상 유례없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국립극장이 처음으로 선보인 ‘스릴러 창극’으로 공포극을 창극의 소리와 연극적 대사로 풀어내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장화홍련’에 이어 공연된 ‘배비장전’과 ‘서편제’ 등도 연이어 매진을 기록했다. 창극 분야에서 국립극장 50년 역사상 전무한 대기록의 뒤에는 김성녀(63)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있었다. 부임한 지 채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김 감독은 연일 매진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창극의 부활을 알렸다.

사실 김 감독은 창극뿐 아니라 연극·영화·드라마와 뮤지컬을 넘나드는 공연계의 팔방미인이다. 백상예술대상 연기상(1986)을 비롯해 서울연극제 여자연기상(1991),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1996), 이해랑연극상(2010)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지난해 국립창극단의 수장이 된 이후로는 ‘창극의 무한변신’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김 감독은 “판소리와 창극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인 유산이다. 이제 창극이 발돋움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창극의 변신을 시도하면서 문화훈장도 받았다”며 웃었다. 내달 8일부터 16일까지 앙코르 공연되는 코믹창극 ‘배비장전’ 준비에 여념이 없는 김 감독을 만났다.

△“무대가 곧 내 삶이고 삶이 곧 무대”

김 감독은 여성국극 스타 박옥진(1935~2004) 씨와 ‘춘향전’을 최초로 영화화한 극작가이자 연출가였던 김향(1921~1999)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음 무대를 접한 건 다섯 살 때. 유랑극단의 배우였던 엄마를 따라 천막극장 무대에 처음 섰다. 1976년 극단 민예극장에 입단한 이후로는 150여편의 연극과 뮤지컬·영화·드라마 등에 출연했다. 올해로 배우생활을 한 지 36년째. 아역배우로 활동한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무대는 곧 삶의 일부가 됐다.

“어릴 때부터 지금의 자리에 올 때까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온 것도 있고, 예술가로서의 성취도에 대한 조급함도 있었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 대인관계에서의 실망감도 맛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산들을 넘고 보니 내가 강한 여성이 돼 있더라. 말하자면 용광로에 몇 번 들어갔다 나온 쇠 같은 그런 강인함이 생겼다는 얘기다. 30∼40대 힘들었던 경험들이 아주 강한 충격에도 지지 않고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단단한 토대가 됐다.”

‘김성녀’ 하면 ‘마당놀이’를 빼놓을 수 없다. 김 감독은 김종엽·윤문식과 함께 ‘마당놀이의 귀재’ ‘마당놀이 문화재’로 불린다. 30여년간 공연한 마당놀이 횟수만 3000여회. 매년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뮤지컬처럼 더블캐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같은 배우와 스태프가 30년을 동고동락해왔다. 인생의 반을 함께 해 온 마당놀이는 2011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처음부터 “박수칠 때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 하지만 마당놀이 이후에도 김 감독의 열정은 꺼지는 법이 없었다. 지난해에는 뮤직드라마 ‘벽 속의 요정’에서 1인 32역을 소화하며 ‘동아연극제 연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쉴 새 없이 달려왔지만 오히려 “지금이 인생 최고의 전성기”라고 말한다.

△‘독사’ 선생에서 ‘엄마의 리더십’까지

김 감독은 지난해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임기는 3년. 한때 ‘쌍칼’ ‘독사’라고 불릴 만큼 무서운 선생이었던 그가 국립창극단에 오면서부터는 ‘엄마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할 때도 있고 호통을 칠 때도 있다. 하지만 바탕에는 단원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깔려 있다.

“여자보다 더 강한 것이 엄마다. 엄마를 떠올리면 보통 ‘희생’ ‘봉사’ 그리고 자기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를 떠올리게 된다. 엄마의 마음으로 국립창극단을 이끌겠다고 말한 것은 배려와 사랑을 바탕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 것을 챙기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런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엄마의 리더십’인 것 같다.”

리더의 자리에 오르면서부터는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남들이 바라보는 위치에서는 더욱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김 감독을 보고 주변에서는 오히려 “실수하는 모습을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을 정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한다.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하는 제자라도 따로 뭔가를 챙겨주는 법이 없다.

“하는 일에 대해서는 사실 무서운 선생이다. 일을 할 때는 감성적인 것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뭐든 객관적인 시각에서 처리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다. 혹시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일을 할 때는 공정하게 대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입바른 소리를 하기보다는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심어주는 스타일이다. 나 역시 학생이었을 때에는 존경할 만한 스승이 나에게 실망을 안겨줬을 때, 존경할 어른이 없다고 느꼈을 때 외로웠다. 그래서 좋은 선배가 돼야겠다고 늘 다짐해 왔다.”

△새로운 도전 즐기는 리더

김 감독이 부임한 이후 국립창극단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첫 작품 ‘장화홍련’에서는 1500개 전체 객석 중 절반을 무대로 이동시키는 것은 물론 전통적인 창자(唱者·노래나 창을 하는 사람)의 발림 대신 현대적인 몸짓을 삽입했다. 또한 창극에 샤워장면까지 넣는 등 그야말로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두 번째 작품 ‘배비장전’도 연달아 히트했다. 유실된 판소리로 만든 ‘배비장전’은 고고한 척 위선을 떨던 배비장이 기녀 애랑의 유혹에 본색을 드러내는 과정을 담은 ‘배비장타령’이 원작. 안숙선 명창이 창을 만들고 황호준이 작곡했다. 배우들이 극장 사방에서 나타나 객석과 소통하며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세 번째 도전은 ‘서편제’였다. 뮤지컬과 영화로 만들어지며 유명세를 탔지만 김 감독의 ‘서편제’는 ‘진짜 소리꾼들이 들려주는 소리꾼’ 이야기였다. 역시 반응은 뜨거웠다. ‘장화홍련’과 ‘배비장전’ ‘서편제’는 연이어 매진을 기록하며 국립극단의 레퍼토리가 됐다. 만원사례를 기록하면 단원들에게 현금봉투를 주는 행사도 국립창극단 창단 이래 처음으로 치렀다. 김 감독은 “다음 작품에도 만원사례 봉투가 붙어야 할 텐데”라며 웃었다.

“우선은 좋은 작품으로 많은 관객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성과가 좋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도 잘 돼야 할 텐데, 이번엔 관객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난다. 50년간 비슷한 스타일의 창극을 했던 단원들은 처음엔 새로운 걸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두려워했다. 하지만 1년 반이 되고 나니 단원들의 시각이 바뀌었고, 오히려 새로운 걸 하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창극 배우들의 변신도 무한대로 펼쳐지고 있다. 얼마 전 공연한 연극 ‘단테의 신곡’에서도 엄청나게 활약했다. ‘창 하는 사람들의 다재다능한 재능이 이제야 꽃을 피우는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더라. 많은 관객들이 창극의 새로움에 즐거워하고 있다. 창극을 안 보던 관객들까지도 창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창극 르네상스 멀지 않았다”

이토록 숨 가쁘게 한길만을 달려온 김 감독의 목표는 뭘까. 김 감독은 창극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머지않은 미래에 ‘창극 르네상스’가 오길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판소리 다섯마당에 대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연출가를 불러 세계인의 눈으로 본 창극을 만드는 것. 한마디로 해외거장들이 만드는 우리의 고전이다. 당장 내년 12월엔 세계적인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과 함께 작업하는 ‘춘향전’이 예정돼 있다. 국내 젊은 연출가들과 판소리 열두 마당 중 유실된 일곱 마당을 복원하는 작업도 임기 동안 하고자 하는 일이다. 이미 ‘배비장전’을 공연했고, 내년엔 ‘변강쇠전’과 ‘숙영낭자전’을 준비 중이다.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며 관객과 소통하다 보면 ‘창극 르네상스’의 시기가 앞당겨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창극이 관광산업뿐 아니라 공연예술의 중심에도 서게 되길 바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젊은 사람들은 창극 공연의 표를 얻으면 부모님께 드리지 않나. 뮤지컬은 한 달을 넘게 공연하지만 창극은 닷새 채우기도 힘든 게 현주소다.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새롭고 즐거운 창극을 많이 만들면서 이러한 간극을 좁혀나갈 계획이다. 우선 국내에서 기반을 다진 후에 외국에 나가 창극의 위력을 발휘하고 싶다.”

△ 김성녀 예술감독은…

대한민국 배우이자 대학교수, 국악인이다. 단국대 국악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국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 극단 민예극장에 입단, 1978년 국립창극단과 1981년 국립극단에 입단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극단 미추에 입단해서는 김종엽·윤문식과 함께 대표 레퍼토리인 ‘마당극’을 30여년간 이끌었다. 그간 드라마 ‘토지’ ‘서울뚝배기’ ‘아내가 있는 풍경’, 연극 ‘한네의 승천’ ‘지킴이’ ‘욕탕의 여인들’, 뮤지컬 ‘7인의 신부’ ‘돈키호테’ ‘에비타’, 영화 ‘눈꽃’ ‘춘향뎐’, 마당극 ‘허생전’ ‘흥부전’ ‘심청전’ 등에 출연했다. 또 독실한 불교신자로 ‘김성녀의 찬불가’ 등 불교음반 10여편을 제작하며 가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2000년 중앙대 국악대학 과정이 설립되면서 교수로 영입됐고, 2005년 중앙대 국악대학 음악극과 학과장을 거쳐 2007년 제5대 국악대학장에 취임했다. 현재는 중앙대 예술대학 전통연희예술학부 교수이자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극단 미추 대표를 겸하고 있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사진=권욱 기자uk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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