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제공] 새해 벽두부터 스크린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지난해 연초에 불었던 어설프게 불었던 바람과는 달리 단단하고 야물었다 . 멜러 장르속 눈물의 여왕이 아닌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그리면서 캐릭터와 이야기의 농도가 짙어졌다. 문제를 놓고 결정하는 선택에 있어 후회나 미련없이 당당하고 주인공의 고민은 현실처럼 사실적이다.
1일 개봉한 '기다리다 미쳐'(류승진 감독/아이필름 제작)는 군대간 남자친구와의 사랑과 고민을 20대 초반의 감성과 열정 그대로를 담으면서 첫주 40만에 가까운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진부한 군대 이야기지만 남자들을 기다리며 여자들이 느끼고 겪는 갈등과 고민 스트레스를 표현하는데 있어 '기다리다 미쳐'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네 커플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했다.
10일 개봉하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임순례 감독/MK픽처스 제작)은 더욱 뚜렷하다. 아줌마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들의 휴먼 드라마이자 스포츠 영화다. 여섯명의 여자 주인공 여자 감독 여자 제작사 대표까지, 청일점 엄태웅이 애처로워 보일 정도. 국가대표 태극 마크의 이상적인 모습과 이에 반에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을 가진 그 주인공들의 삶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영화는 새로운 감동 곡선을 그려내고 있다.
역시 17일 개봉하는 '뜨거운 것이 좋아'(권칠인 감독/시네마서비스 제작)도 세대별 여성들의 이야기를 여성의 시각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40대 엄마, 20대 사회 초년병, 호기심 많은 여고생 세 여주인공의 일과 사랑 그리고 고민에 대해 각각의 색깔 별로 다채롭고 현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2008년 새해를 여는 여성 주인공 영화들은 좀더 세련되게 가공되고 잘 빠진 양장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올댓 시네마의 김진영 이사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충무로 제작 현장에 여성 PD가 증가하고 여성 감독이 늘어났다. 또 여성 제작자들이 제작에 본격 참여하면서 작품속 여주인공을 여성의 시각으로 디테일하게 그릴 수 있게 된 것이 새로운 변화"라고 평가했다.
현재 등장하는 작품속 여성 캐릭터는 과거에 비해 전형성을 탈피하고 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세밀한 캐릭터를 갖게 됐다는 얘기다. 김이사는 이어 "이제 작품속 화자(내레이터)가 여성이 되면서 그 느낌이 전달되는 영화의 주 타겟인 20대 여성 관객에게 공감대를 구축하기 좋은 장점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연말 여성 영화인 축제에서 연출·시나리오부문 상을 받은 김미정 감독은 "연출부 시절 이준익 감독에게 일을 못한다고 구박을 받았는데 동료이자 스승인 스태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며 "열심히 영화를 만들어 공로상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잊지 않았었다. 이날 모인 여성 영화인들은 무려 100여명이 넘었고 연기파 배우 설경구, 최동훈 감독 등은 오히려 손님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충무로에서 여성 영화인들의 '세'가 커지고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옮겨왔다는 것을 보여준 자리였다.
MK픽처스의 간판이자 충무로 대표적 여성 제작자인 심재명 대표는 "'세븐데이즈'처럼 이제는 미스테리 스릴러를 풀어나가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결과가 흥행적으로도 성공하는 현실을 볼 때 영화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이전보다 중심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이제는 강한 여성의 모습, 여주인공이 극의 중심에서 주체적이되고 입체적인 상황을 갖는 모습으로 외연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평했다.
제작과 투자유치가 어려워 그동안 여성들이 만들고 여성주인공이 전면에 등장한 영화는 대작보다는 작은 영화 페미니즘 영화가 많았다면 새해 벽두 스크린을 공략하는 여성 영화들은 보다 상업적이면서도 디테일에서 더 강한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들이 과연 얼마나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