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국회를 최종 통과한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을 보면, 기금 지원 분야는 방위산업 업종·외국인투자 제한 업종·비상대비 자원 생산업종·국가 핵심기술 보유 업종·필수 공익사업 중에서 시행령(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종에 속하는 기업으로 규정됐다. 사실상 정부가 지원 업종을 정하겠다는 뜻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2일 기금 조성 발표 때 항공ㆍ해운ㆍ조선ㆍ자동차ㆍ일반기계ㆍ전력ㆍ통신 7대 주요 업종을 특정했다. 그러나 실제 법에는 이들 산업을 특정하지 않고, 국민경제와 고용안정, 국가안보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업종의 기업을 지원키로 했다. 구체적 지원업종을 정할 대통령령은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만들 수 있다.
또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 등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지원이 가능해졌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당초 개정안은 “(지원대상에)중소기업은 제외한다”고 규정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 문구가 삭제됐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40조원 기간산업안정기금 방안을 발표하면서 “기본 중심은 7대 기간산업이지만 국민경제와 고용안정을 위해 (지원이) 필요한 기업이 있으면 산업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협의해 필요한 부분에 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기금 조성의 목적은 기업 구조조정 보다 ‘코로나19’로 일시적 위기를 겪는 기업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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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유지, 이익공유 조건 완화
특히 ‘기업의 경영성과를 기금과 공유’하도록 한 명시적 조항은 최종안에서 빠졌다. 대신 기업 지원 방식으로 ‘출자’를 지원금액의 최대 20%까지 하도록 포함했다. 또 정부가 보유 지분을 증권시장에서 매각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의 주주 또는 지분권자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민주노총은 “세금으로 지원되는 자금이 또다시 대기업과 재벌에게 집중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영권 개입 근거조항 추가..“자금지원 안전장치 필요”
이와 반대로 정부가 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당초 개정안은 “출자로 취득한 지분에 대해선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최종안은 “자금지원 조건을 현저하게 위반해 자금회수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그렇지 않다(행사할 수 있다)”고 단서를 추가했다. 예외적으로 지분권 행사에 나설 수 있는 근거 조항을 삽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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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혈세 들어가지만, 감시 사각지대..관리소흘 지적도
일각에서는 법률상 공적자금이 아니어서 관리감독이 소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산업은행이 정부의 원리금 보증을 받아 채권을 발행해 조성한다. 사실상 국민 부담이지만 정부 재정을 직접 투입하는 건 아니어서 국회 등 외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지는 않는다. 공적자금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심사보고서에서 “지원조건 이행점검 및 사후관리와 관련해 명문의 규정이 없다”며 “이 기금은 국가재정법상 기금이 아니어서 운용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금융위는 이에 대해 산업은행 기간산업기금운용심의회 총 7명 중 2명이 입법부 추천인사여서 기금운영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심의회는 특정 기업 지원과 고용유지와 경영개선 노력 등 의무 부과 등을 심의한다. 반면 국회 추천인사가 의사결정 기구에 들어가게 되면 기업 지원문제에서 정치권 입김이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금융위는 산업은행법 시행령 개정과 구체적인 지원기준 마련 등 후속조치를 마무리한 뒤 이달 안에 기간산업안정기금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원 방식은 자금 대출과 자산 매수, 채무 보증 또는 인수, 사채 인수, 출자(전환사채 및 신주인수권부 사채 등 포함), 특수목적기구 및 펀드 지원 등으로 다양하다.
산업은행은 4일 성주영 수석부행장을 단장으로 하는 기간산업안정기금 설립준비단을 발족, 기금설립 준비절차에 본격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