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토in 박낙호 기자] 부품사에서 시작한 혼다의 역사
혼다 소이치로와 혼다의 역사는 아트상회의 정비에서 시작됐다. 정비공으로 일하던 혼다 소이치로는 1937년 지인인 사토 시치로와 손을 잡고 동해정기중공업을 설립하고 피스톤 링을 생산했다. 회사는 초기 토요타에 부품을 납품했으나 제품 불량으로 인해 계약을 해지 당하며 경영의 큰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혼다 소이치로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토요타의 제품 품질 관리를 배워 1941년 다시 한 번 토요타에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로 선정됐다. 동해정기중공업의 성장을 눈 여겨 본 토요타는 지분의 40%를 인수하고 그 권한으로 혼다 소이치로를 사장직에서 전무로 인사 이동을 시켰다. 혼다 소이치로에게는 당황스러웠지만 정책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1943년 제 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동해정기중공업은 기존의 피스톤 링 대신 군수물자 생산을 명령 받는다. 이후 동해정기중공업은 전투기 및 헬기 등에 장착되는 프로펠러를 생산하게 됐다. 하지만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은 미군 공군 폭격의 타겟이 되어 1944년 미군의 B-29 폭격기의 폭격을 받아 야마시타 공장이 파괴되고 이듬해는 진도 6.8의 미카와 지진으로 이와타 공장이 파괴됐다.
다섯 평에서 시작한 혼다 바이크의 역사
전쟁이 끝나고 혼다 소이치로는 남은 지분과 회사의 생산 설비 등을 모두 45만엔에 토요타에 처분했다. 그리고 이 자금으로 1946년 혼다의 첫 시작을 알리는 내연기관과 차량의 연구 및 제작을 목적으로 하는 ‘혼다 기술 연구소’를 설립한다. 혼다 소이치로는 다섯 평의 작은 공간에서 12명의 연구원과 2행정 50cc 보조 엔진을 개발하고 이를 자전거에 장착, 판매하며 혼다 바이크의 역사를 시작했다. 이후 혼다 기술 연구소는 꾸준한 기술 연구와 상품 개발을 통해 1948년 혼다 모터사이클을 설립하고 이듬해 드림 타입 D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바이크 제조 업체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패전의 상처를 바이크 레이스로 극복하다
제 2차 세계대전의 패배 후 한국 전쟁을 발판 삼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54년 휴전으로 전쟁을 멈춘 한국전쟁의 특수가 끝나며 일본의 성장 폭이 급속도로 감소했고 이로 인해 일본 경기는 급속도로 동결 됐다. 실제로 당시 200여 개가 넘는 바이크 제조 업체 중 약 70% 가량이 도산하는 위기에 놓였다.
커브(Cub)의 성공을 발판으로 드림 시리즈와 벤리 등 숱한 성공 모델을 만들며 시즈오카에서 도쿄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던 혼다 역시 위기를 맞이했다. 하코네 산길의 강자인 드림 4E와 세련된 디자인의 주노와 같은 이슈 메이커를 개발했지만 바이크의 완성도 부족은 물론 지나치게 무거운 무게, 효율성 등의 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혼다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는 혼다를 존재하게 만든 ‘귤 박스’ 위에 올라 당시 세계 바이크 레이스 중 가장 혹독한 레이스이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월드GP 맨섬 TT 레이스(Isle of Man, Tourist Trophy)’에서 우승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219개의 코너와 60km에 이르는 혹독한 레이스를 지배하는 바이크 브랜드가 얻는 명성은 엄청났다.
호기로운 목표가 있었지만 당시 맨섬 TT 레이스는 모토 구찌 V8, 몬디알 등 유럽 최강의 바이크 메이커들의 격전지였던 만큼 혼다 소이치로의 선언은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하지만 혼다는 당시 바이크 업계에서는 산색을 표하던 DOHC 방식을 적용한 2기통 125cc 엔진을 장착한 RC 142를 공개로 1959년 첫 도전에 나섰다.
첫 번째 도전이었음에도 혼다는 성공적인 결과에 올랐다. 125cc 급에서 두카티, MV 아구스타 등 유럽의 유수 브랜드와 경쟁 끝에 4위, 5위, 6위 그리고 1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마이크 헤일우드를 영입한 1961년에는 125cc와 250cc 클래스의 우승을 차지하고 1966년에는 배기량을 올린 500cc 클래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일약 세계적인 바이크 브랜드로 도약한다.
이후 혼다는 바이크 레이스 무대의 절대적 강자로 그 입지를 지킨다. 70년 대 후반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바이크 설계의 새로운 가이드를 제시한 NR500을 공개했고, 1980년 대에는 2행정 NS500을 통해 아르헨티나 GP에서 포디엄, 벨기에 GP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1985년에는 RC250와 라이더 프레디 스펜서의 조합으로 월드 타이틀에 오르고 이후 혼다 바이크의 전설적 존재인 NSR과 믹 두한의 월트 챔피언 5연패의 기록을 세운다.
믹 두한의 6연패를 막아선 건 바로 천재적 재능으로 평가 받는 발렌티노 롯시의 등장이었다. 혼다는 발렌티노 롯시와 손을 잡고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한다. 이 이면에는 4행정 990cc V5 모델인 RC211V의 경쟁력도 뒷받침 됐다. 하지만 롯시의 야마하 이적과 함께 혼다의 전성기는 끝나는 듯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현재, 최근 몇 년 간 혼다는 바이크 레이스에서 경쟁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여전히 강자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중 바이크 시장의 절대 강자
혼다는 2015년 현재에도 고성능 바이크 시장의 절대적인 명품 브랜드로 그 입지를 굳히고 있지만 ‘고성능 모델’만 집중한 브랜드가 아닌 ‘대중성’ 또한 겸비해왔다. 특히 지금까지도 그 혈통이 이어지고 있는 슈퍼 커브(Super Cub)를 1958년 데뷔시키며 저렴한 가격, 높은 신뢰도, 우수한 효율성까지 모든 걸 갖춘 대중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슈퍼 커브는 1959년 말 혼다 바이크 생산의 상당수를 차지했고 일본 내 시장에서도 높은 효율성, 유지의 편의성 등 다양한 매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며 시장을 석권했다. 슈퍼 커브는 이후 국내 바이크 시장에서 C100으로 데뷔하고 이후 스테디셀러인 ‘시티 시리즈’의 원형 모델로 사용될 만큼 경쟁력과 상품성을 인정 받았다.
월드GP 맨섬 TT 레이스에서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1959년 미국 진출에 나선 혼다는 ‘쵸퍼’와 같은 미국 특유의 대형 바이크 사이에서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바이크의 대표주자로 시장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미 미국 브랜드들이 군림하고 있는 대형 바이크 보다는 세련되고 담백한, 그리고 실생활에서 발휘 되는 높은 효율성으로 시장에 빠르게 녹아 들었고 1960년 대 중반, 미국 소형 바이크 시장을 석권하며 일본이 아닌 ‘해외 시장에서도 혼다의 경쟁력’을 어필했다.
혼다, 자동차에 도전장을 던지다
쇼와 시대 중반을 지나는 1960년대 일본은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의 문을 열었다. 자동차 수리공으로 성장했던 혼다 소이치로는 바이크 시장의 성장이 정체되고 자동차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자동차 제작을 선언한다. 1963년 혼다 자동차(Honda Automobiles)를 설립했으나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일본 통산성이 수입자동차 시장의 개방에 자동차 브랜드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동차산업 합리화’ 정책을 발표해 당시 7개의 자동차 제조사를 3개로 합치겠다는 정책을 밝혔다.
합리화 정책에 브랜드 흡수, 폐지가 예고된 브랜드에는 마쯔다와 혼다도 속해 있었다. 당시 일본에는 이 시기 ‘동쪽의 혼다, 서쪽의 마쯔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기술에 대한 욕심, 독특하고 과감한 경영 방침을 가진 두 브랜드를 지칭한 것이다. 두 브랜드는 합리화 정책에 반대하며 마쯔다는 로터리 엔진과 이를 통한 르망 재패, 혼다는 F1 출전과 우승이라는 대응으로 통산성의 정책을 무너뜨리며 독자 브랜드로 생존하게 된다.
혼다는 1965년 2도어 상용 밴 모델인 L700을 공개했고 1967년에는 2도어 콤팩트 모델인 N360과 N600 등을 차례대로 공개했다. 두 차량을 공개하고 2년이 지난 1969년에는 혼다 최초의 4도어 세단 모델인 ‘혼다 1300’을 공개했다. 1960년대 다양한 타입의 차량을 공개한 혼다는 1970년 본격적으로 혼다의 주력 모델로 자리 잡는 모델들을 차례차례 공개한다.
혼다 모터스포츠, F1 정상에 서다
바이크 시장의 성공과 함께 자동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혼다는 ‘브랜드의 성장’과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선언한다. 이는 당시 일본 통산성의 자동차산업 합리화 정책에 대응해 ‘브랜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또한 그 동안 레이스에서 많은 성장 발판을 얻은 혼다 다운 선택이었다.
혼다는 빠르게 움직였다. 차량 섀시 제작은 로터스에 의뢰하고 엔진은 혼다가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엔진 개발은 맨섬 TT 레이스의 우승을 낳게 한 바이크 엔진 설계 팀의 신무라 키미오 엔지니어와 팀의 엘리트를 모아 F1 그랑프리에 사용될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숱한 시행 착오를 걸쳐 개발 된 V12 엔진은 최고 출력 200마력을 상회하며 당대 최고인 페라리의 엔진보다도 높은 출력을 자랑하며 ‘엔진의 혼다’의 가치를 정의한다.
F1 그랑프리 출전을 앞둔 상황에서 섀시 개발을 담당한 로터스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자 혼다는 항공기 설계를 전공한 사노 신이치를 필두로 섀시까지 직접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짧은 개발 시간이었지만 혼다는 수 차례의 설계 변경과 수 많은 프로토 타입을 개발하며 혼다 최초의 F1 머신인 RA271로 1964년 F1 그랑프리에 출전한다.
1964년 혼다의 첫 번째 도전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출력 저하와 오버 히트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자동차산업합리화 법안은 폐기됐지만 혼다는 F1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1965년 두 번째 도전 역시 쉽지 않았다. 시즌 초반에는 전년도의 문제를 크게 해결하지 못하고 고전하며 전년도와 같은 리타이어의 연속이었다. 이에 혼다는 대담한 결정을 내린다. 혼다 F1은 시즌 출전을 곧바로 중단하고 모두 일본으로 철수했다.
차체와 엔진 등 모든 요소를 새롭게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펌프식 연료 분사 장치와 마그네슘 블록, 무게 중심의 변화를 적용한 새로운 엔진을 장착한 RA272을 완성했다. 혼다는 1966 시즌을 기다리지 않고 개발 완성과 동시에 1965 F1 그랑프리 최종전인 멕시코 그랑프리에 출전했다. 혼다는 1965년 F1 최종전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2년 만에 F1 최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혼다는 바이크 레이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동차 레이스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F1의 경우에는 1968년 철수했다. 이후 1980~1990년 대에는 엔진 공급 업체로 활동했는데 당시 혼다 엔진을 장착한 맥라렌은 아일톤 세나 알랭 프로스트를 앞세워 강력한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이후 혼다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다시 한 번 워크스 팀으로 F1 무대에 도전하며 혼다가 가진 모터스포츠의 열정을 느끼게 했다. 현재 혼다는 엔진 공급자로서 다시 한 번 맥라렌과 손을 잡고 F1 무대에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F1 외에도 혼다는 각종 투어링 카 레이스와 랠리, 드래그, 카트 그리고 인디카 레이스의 엔진 공급 업체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 혼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지는 레이스는 바로 일본 최고 권위의 슈퍼GT로서 혼다는 NSX의 프로토타입인 HVS-010 GT를 대회 최고 클래스인 GT500 클래스의 규정에 맞춰 제작, 공급하고 있고 무겐이 제작한 CR-Z GT는 GT300 클래스에 출전하고 있다.
한편 미국을 대표하는 인디카 레이스에는 쉐보레와 함께 엔진 공급 업체로서 경쟁을 펼치고 있으며 F1을 비롯한 다양한 포뮬러 카테고리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편 투어링 카 레이스인 WTCC와 TCR 시리즈에서도 시빅이 맹활약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전역의 투어링 카 레이스에서도 활약하고 있으며 혼다 시빅, 인테그라로만 운영되는 대회도 존재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1970년 혼다의 두 기둥이 등장하다
1970년 대는 혼다의 거대한 기둥이 되는 글로벌 스테디셀러 콤팩트 모델인 ‘시빅’과 글로벌 스테디셀링 중형 세단 ‘어코드’가 데뷔하는 시기였다. 1972년 등장한 1세대 시빅은 작은 차체와 우수한 효율성을 앞세운 실용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데뷔와 함께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시빅은 혼다의 주력 모델로 자리 잡았고 70년대부터 2015년 현재까지 10세대 이르는 긴 역사를 써 내려갔다.
특히 시빅 EG6 모델로 명성이 높은 5세대 시빅과 EK9으로 유명한 6세대 시빅은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8세대 시빅은 하이브리드 모델을 최초로 도입하며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혼다의 의지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시빅을 대표하는 타입 R 모델도 꾸준히 공개하며 탄탄한 시빅 마니아 층을 형성했다. 올해 공개된 10세대에 걸쳐 꾸준한 기술 개발과 함께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중형 모델 어코드 역시 혼다의 성장을 이끌었다. 1972년 데뷔한 시빅과 4년 터울을 둔 1976년 데뷔한 어코드는 초기에는 현재의 세단 모델이 아닌 3도어 해치백 모델로 데뷔했다. 대신 시빅과는 체격의 차이를 두고 포지션 상에서도 차이를 뒀다. 1세대 어코드는 1977년 4도어 모델을 미국 시장에 출시하며 본격적인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어코드는 일본 시장981년 데뷔한 2세대 어코드는 본격적인 4도어 세단과 3도어 해치백의 두가지 바디워크를 갖추고 일본은 물론 미국 시장을 대표하는 중형 세단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호주에도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고, 3세대부터는 유럽 시장에 최적화 된 슈팅 브레이크 모델 등을 추가하며 모델 바리에이션을 다양하게 형성했다.
이후 어코드는 꾸준한 개발, 시장 별 최적화 전략 등을 채택하며 일본과 유럽, 북미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혼다를 상징하는 모델로 성장했다. 현재 어코드는 9세대 이르렀고 9세대 역시 올해 페이스 리프트와 상품성 개선으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어코드로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혼다의 전설, VTEC
흔히 기술의 혼다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기술의 닛산, 엔진의 혼다’다. 실제로 혼다는 엔진 기술에 있어 특출한 경쟁력을 뽐내왔다. 그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엔진 기술이 있다면 바로 VTEC이 있다. 가변 밸브 타이밍 및 리프트 전자 제어(Variable Valve Timing and Lift Electronic Control)의 준말인 VTEC는 일본 자동차 메이커 들이 배기량의 한계를 뛰어넘는 출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흘린 땀의 결실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VTEC 기술은 엔진 회전 수에 따라 흡기 및 배기 밸브의 개폐 타이밍과 개폐량을 가볍적으로 조절한다. 이를 위해 엔진 내에 두 개의 캠을 장착해 RPM에 따라 두 개의 캠을 오가며 RPM에 맞는 최적의 개폐 타이밍과 개폐량을 보장한다. 이를 통해 VTEC은 고 PRM에서 더욱 강력한 출력을 발휘할 수 있어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터보 차저와 유사한 핸디캡을 받기도 했다.
혼다는 VTEC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저 배기량에서도 높은 출력을 발휘하는 차량들을 개발할 수 있었고, 혼다 최초의 슈퍼카인 ‘NSX’의 개발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2000년 혼다는 VTEC 엔진을 더욱 발전시켜 리터 당 100마력 이상의 강력한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스포츠카 ‘S2000’ 또한 개발하며 엔진 기술의 최고봉에 서 있음을 증명했다.
혼다 만의 새로운 도전
동쪽의 혼다 서쪽의 마쯔다라는 말처럼 마쯔다 쯔네지 만큼이나 혼다 소이치로 역시 괴짜였다. 그의 성격과 경영 방식은 1973년 그가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변치 않았다. F1 무대와 대중 시장에서 토대를 닦은 혼다는 VTEC 기술과 모터스포츠에서 얻은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
일본 최초의 슈퍼카 ‘NSX’는 버블 경제 속에서 혼다는 ‘세계 유명 슈퍼카’들과 경쟁하겠다는 의지를 앞세워 대대적인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개발된 차량이다. NSX는 1984년 미드쉽 구조의 차량을 연구하기 위해 개발 된 UMR(Underfloor Midship Rear-drive)을 토대로 개발됐다. 알루미늄 모노코크 차체에 V6 3.0L VTEC 엔진을 장착한 NSX는 아일톤 세나와 나카지마 사토루 그리고 바비 라할과 같은 유명 드라이버를 테스트 드라이버로 채용해 차량의 완성도를 높였다.
초 경량화 설계와 주행 성능과 승차감의 공존, 공기역학을 고려한 디자인 등 모든 부분에서 우수한 완성도를 선보인 NSX는 혼다의 뛰어난 엔진 기술 및 차량 설계 기술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기회가 됐다. 1990년 공식 데뷔한 NSX는 2005년까지 많은 사랑을 받으며 두터운 마니아 층을 형성했다. 한편 혼다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채택한 2세대 NSX를 2017년 데뷔를 목표로 개발 중에 있다.
1985년에는 플래그십 모델인 레전드를 개발해 프리미엄 시장을 노리며 시빅-어코드-레전드로 이어지는 혼다의 모델 라인업을 구축했다. 레전드는 운전석 에어백과 ABS, 사이드 도어 빔 등을 장착한 일본 최초의 차량이었고 이후 5세대에 이르며 혼다 플래그십 모델로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한다. 엔진을 새로 배치한 2세대 레전드는 국내 시장에서 ‘대우 아카디아’로 판매되기도 했다.
한편 일본 프리미엄 브랜드의 시작을 알렸던 것도 혼다였다. 1980년 대 혼다는 북미 시장에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해 프리미엄 브랜드 ‘어큐라’를 설립하고 혼다 인테그라와 혼다 레전드를 선보였다. 다만 제품 자체의 완성도는 우수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상품성’이 렉서스나 인피니티에 비해 뒤쳐졌고 혼다의 리뱃징 모델이 많았던 만큼 프리미엄 브랜드로 입지를 다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외에도 1980년 대에는 CR-X와 같은 소형 스포츠카를 공개하고 이 모델은 1992년 데뷔한 소형 컨버터블 스포츠카인 CR-X 델솔로 이어진다. 한편 CR-X 델솔과 함께 혼다는 경차 규격의 미드십 후륜 구동 스포츠 카 ‘비트’ 또한 공개하는데 두 차량 모두 버블 경제에 탄력을 받고 개발된 ‘젊은이들을 위한 차량’이었다. 한편 혼다는 모든 자동차 브랜드들이 친환경 차량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2000년 대에도 CR-Z와 같은 ‘스포츠 드라이빙을 품은’ 하이브리드 차량을 공개하는 등 혼다 만의 고집을 이어갔다.
혼다의 새로운 도전
바이크 산업을 시작으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든 혼다지만 혼다는 바이크와 자동차 외에도 소형 발전기, 제설기, 사륜 스쿠터, ATV, 선박용 엔진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혼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 1980년 대 혼다 로보틱스를 설립하고 로롯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에 1980년 대 말에는 이족 보행 로봇인 E 시리즈를 개발하고는 이후 1990년 대에는 무선 운동 자기 조절이 가능한 휴머노이드 보행 기능을 탑재한 P시리즈를 공개했다.
이후 2000년, 혼다는 아시모를 발표했다. 아시모는 더욱 유연한 움직임을 자랑했고, 이후 다양한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실제로 2005년에는 움직임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기도 했고 2006년에는 계단에서 넘어지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곧 지면의 공을 인식하고 이동해 공을 차는 완성도 높은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아시모는 이후 혼다의 주요 행사는 물론 전세계의 다양한 기술 개발 포럼, 전시회에 전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2015 서울모터쇼에서는 혼다 코리아가 부스에 전시되어 다양한 동작들을 선보이는 공연과 인터뷰, 관객과 함께하는 아시모의 댄스 타임 등을 부스를 찾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아시모 쇼’를 진행했다.
한편 최근 혼다의 활약 중 가장 인상적인 활동은 바로 항공기 개발 사업이다. 비행기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혼다 소이치로의 1940년부터 항공기 개발을 위한 인력을 영입했고 1962년부터는 항공기 사업을 위해 가스 터빈 연구소를 설립하고 가스 터빈 엔진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후 혼다는 1986년 혼다기술연구소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항공기 개발에 나섰다.
지난 1993년 혼다는 타사 엔진을 장착한 MH02를 개발하며 항공기 설계 및 개발이 가능하다는 현실성을 증명했고, 지난 2003년 엔진과 기체를 모두 혼다가 설계, 제작한 혼다제트(Honda-Jet) 프로토 타입의 시험비행에 성공한다. 혼다제트는 제트 엔진이 주익 위쪽에 배치된 독특한 디자인으로 공기역학을 개선하고 실내 공간을 대폭 늘렸다. 성공적인 시험 비행 이후 혼다는 2010년 공식 판매를 선언했지만 세계 경제 위기 및 양산화 단계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그 시기가 뒤로 미뤄졌다.
하지만 혼다 소이치로의 꿈은 이뤄졌다. 세계에서도 기체와 엔진을 모두 단일 브랜드에서 개발하는 경우는 무척 드문 경우인데 혼다는 결국 해냈다. 혼다제트는 2015년 11월부터 3,000시간이 넘는 시험 비행을 진행했고 안전 승인과 형식 증명 취득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판매가 가능해졌다. 혼다제트는 길이 13m, 항속 거리 2,185km를 가지고 7명만이 탑승할 수 있는 소형 비행기임에도 이미 100대 이상 주문을 받았고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인계를 시작한다.
혼다의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다
혼다는 늘 새로운 미래를 선보여왔다. 지금 혼다는 사륜 구동 조향 시스템인 SH-AWD 기술을 더한 하이브리드 슈퍼카 ‘NSX’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FCV’ 등을 공개하고 혼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새롭게 개편하며 자동차 제조사로서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그와 함께 S660과 N-One, N-Box와 같은 경차의 다양화를 통해 시장에서의 입지 역시 확실히 다지고 있다.
그리고 꿈으로만 여겨졌던 로봇, 항공기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좋은 결실을 맺고 있다. 꿈을 현실로 만들고, 그 꿈의 힘을 보여준 혼다. ‘The Power of Dreams.’이라는 그들의 슬로건처럼 앞으로 혼다가 꿈의 힘을 기대해본다.
사진: 혼다 월드와이드/혼다 뮤지엄
협조: 동경대학교 대학원 아시아사 김승래 / 고려대학교 대학원 김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