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투기꾼은 이미 발빼… 정부 또 뒷북행정"

  • 등록 2004-02-05 오전 11:05:03

    수정 2004-02-05 오전 11:05:03

[조선일보 제공] “팔 사람은 벌써 다 팔았죠. 이젠 땅값도 오를 만큼 올랐고, 매물이 나와도 살 사람이 없어요.” 행정수도 후보지로 꼽히는 충북 청원군 오송리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주모씨. 그는 “지난해 서울에서 투기꾼과 기획부동산(기업형 토지사기단)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내려 오면서 땅값이 치솟았다”면서 “최근 정부의 단속강화 이야기가 나오면서 대부분 발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4일 토지투기대책을 추가로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발빠른 투기꾼들이 땅값만 잔뜩 올려 놓고 빠져 나간 상태이다. 정부는 토지투기를 막는다면서 수도권·충청권 등 전국토의 15%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지만 투기꾼들은 필지 분할·증여·경매 등 다양한 편법으로 법망을 피하고 있다. 투기세력은 현지인 명의를 빌려 평당 5만~10만원의 헐값에 수천평씩 임야나 농지를 사들였다가, 허가가 필요없도록 50~100평씩 필지를 잘게 분할해 외지인에게 2~3배씩 차익을 남기고 되팔았다. 토지거래허가가 필요없는 위장 증여도 성행, 지난해 증여 형태로 거래된 토지가 20만건을 넘어섰다. 정부가 최근 땅값이 치솟은 지역에 대해 대대적인 투기조사·토지거래허가제 강화 등의 추가대책을 공언하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이미 판이 끝났다”며 뒷북 행정을 비웃고 있다. JMK플래닝 진명기 대표는 “발빠른 투자자들은 벌써 제2, 제3의 먹잇감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군 기지 이전예정지로 거론되고 있는 경기도 평택시 안정리 지역. 이 곳은 2002년 말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지만, 땅값은 작년 초보다 2배 이상 뛰었다. 목 좋은 상업지역은 평당 200만원에서 불과 1년새 평당 1000만원까지 급등했다. 평택시의 박성근 공인중개사는 “거래량의 80% 이상은 외지인끼리 사고 팔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투기꾼들은 작년 초부터 기지 이전 정보를 입수, 인근지역에 많게는 수십억원대 땅을 사들인 뒤 외국인 임대주택 부지로 인·허가를 받았다가, 기지 이전이 확정된 뒤 2배 이상 비싼 값에 땅을 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속철도 역사 주변 지역인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일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투기 감시의 손길이 약했던 2~3년 전에 땅을 사둔 외지인들은 막대한 양도 차익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소하동 삼성부동산 성승식 사장은 “투자할 사람은 이미 다했다”면서 “평당 50만~60만원에 산 땅을 평당 120만원에 판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농지규제완화를 천명하면서 농지로도 투기세력이 몰리고 있다. 지난주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 펜션(임대수익형 전원주택) 부지를 계약하러 갔던 개발업체 ‘티붐닷컴’ 송성수 사장은 땅 주인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설 연휴 직전 평당 6만원에 구두로 약속했던 농지(밭) 가격이 불과 일 주일 사이에 8만원으로 30%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젊은 주부들이 떼지어 중개업소 사장과 함께 몰려다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작년만 해도 볼 수 없던 광경이다. 토지정보업체 ‘오케이시골’ 김경래 사장은 “정부의 각종 규제에도 불구, 행정수도 이전 예정지인 충청권, 경부고속철도 개통 역사 주변, 서해안 개발 예정지, 강원도 일대 전원주택 부지 등은 요즘 개미투자자들로 들끓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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