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2곳 법정관리 보낸 `헌인마을` 가보니

  • 등록 2011-04-21 오전 10:23:28

    수정 2011-04-21 오전 10:23:28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지난 19일 오전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마을 입구엔  버려진 가구와 쓰레기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 마을에서 30년을 살았다는 한 할머니는 성한 구석을 찾아보기 힘든 이곳이 마치 전쟁터 같다고 했다. 노인정은 사라진 지 오래 됐고 교회에서 운영했던 공부방도 문을 닫았다.

헌인마을에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300가구가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떠나고 20가구 정도만 남아있다.

이 마을에 광풍이 몰아친 건 2006년 땅주인들이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부터다. 무허가 판자촌이 즐비하던 마을에 한 채당 30억원짜리 고급주택 400가구가 들어선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삶의 터전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주민들의 불안감은 곧바로 보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당시 도시개발사업 조합은 땅주인들에게 3.3㎡당 700만원 가량의 보상가로 토지 매입을 추진했다. 이 지역은 자연녹지로 묶여 공시지가가 3.3㎡당 500만원 수준이다. 강남 지역인데도 이처럼 땅값이 낮아 주민들이 반대했고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 헌인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건물들. 시멘트가 부서지고 페인트가 벗겨진 그대로 방치돼 있다.
현재는 조합이 전체 사업대상지 중 70%의 토지를 확보한 상태이고 30%는 여전히 땅주인들이 갖고 있다. 도시개발법에 따르면 개발구역 토지의 3분의 2 이상을 소유하면 시행사 자격으로 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40년 가까이 헌인마을에서 살았다는 김모 할머니(82)는 "고급주택은 나랑 아무 관련이 없다. 몇 평 안되는 땅에 터 잡고 사는데 평당 700만원씩 받고 나가라 하면 이 나이에 도대체 어디 가서 사느냐"고 하소연했다. 

도시개발사업 조합은 보상비를 올리고 싶어도 땅을 매각한 기존 주민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달리 방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조합 관계자는 "서울시로부터 실시계획인가를 받아 용도변경이 정식으로 고시되면 주변 주거용지 시세와 비슷해지겠지만, 지금은 자연녹지라 시세가 낮다"면서 "환지 방식의 개발사업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굳이 추가 매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세입자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실시계획승인이 나면 세입자들은 쫓겨날 수밖에 없다. 1960년대에 지은 건물이라 건축물관리대장에 등록이 안 돼 있어 강제집행을 당하더라도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2008년 8월에는 세입자와 조합간에 대규모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합이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가구공장에 난입하자 이를 막는 세입자와 격한 몸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들은 가구 파손으로 인해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공장이 철거되기도 했다.  

헌인마을에서 건물을 빌려 가구업을 하는 최모씨(46)는 "영세한 세입자들을 쫓아낸다고 1500명씩 용역을 고용했다. 이런 상황을 내버려두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무허가 건물이란 이유로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은 오는 6월에 실시계획승인을 받으면 본격화할 수 있지만 PF대출 만기연장을 둘러싸고 시공사인 삼부토건(001470)동양건설산업(005900)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 헌인마을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 쓰레기와 가구가 그대로 버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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