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공포영화 흥행참패, 외부 탓? 내부 부족?

  • 등록 2009-09-02 오후 12:50:00

    수정 2009-09-02 오후 12:50:00


 
[경향닷컴 제공] 올 여름 한국의 공포영화는 전멸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평단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은 영화도 있지만 여름이라는 공포 장르 시즌을 겨냥해 조악한 속내를 드러내 철저히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지난해 공포영화의 가뭄 속에서도 <고사: 피의 중간고사>가 제작비의 두 배 이상을 거두는 알찬 흥행 성적을 거둔 데 비해 올해 공포영화의 흥행 대차대조표는 참혹할 정도로 비관적이다.

‘10주년 기념작’이라는 거창한 홍보문구를 앞세우며 여고생의 동반자살을 소재로 삼은 <여고괴담5-동반자살>은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냉대를 받았다. 한 영화평론가는 “시리즈 최악의 졸작”(김종철)이라고 했으며 또 다른 영화평론가는 “연출, 촬영, 연기 등 잘한 게 하나도 없다”(김봉석)라고 혹평했다. 평단에서는 대체로 평면적인 캐릭터, 장르에 대한 몰이해, 흔들리는 정체성 등을 들어 ‘허망하다’며 혀를 찼다. 물론 온라인에서는 이보다 더 심했다. “현실성도 떨어지고 긴장감도 없다”(suessyume) “아무 의미 없는 막장영화”(seokwoo) “점점 어수선해지는 영화”(cdyzone)라며 절하했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집착을 그린 <요가학원>도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한 영화평론가는 “<여고괴담3: 여우계단>의 패착과 인테리어 공포의 반복”(황진미)이라며 목표와 설정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네티즌은 “줄거리 예고편이 보여줄 수 있는 전부였다”(freemom)며 실망감을 토로했다. 그들은 여성 감독이 만들었음에도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입을 모았다. 유승호, 강소라 주연의 추리극의 얼개를 갖춘 <4교시 추리영역>도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기대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그나마 평단에서 인정을 받은 공포영화는 <불신지옥> <독>이었다. <불신지옥>은 “한국 공포영화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이동진) “제대로 만든 한국형 공포영화”(김봉석)라는 평가와 함께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수작 공포영화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렇지만 네티즌은 “무난하지만 심리적 긴장감이 떨어진다”(bonnykim) “지나칠 수도 만만하지도 않는 공포”(mooncos)라며 어중간한 자세를 취했다. 특히 광신과 탐욕이 인간을 어떻게 옥죄고 파멸시키는지에 대한 부분에서는 종교를 비하시켰다는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이 튀기도 했다.

이에 반해 저예산 공포영화 <독>에서는 귀신이나 살인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에서 가져온 공포가 귀신보다도 더 무서운 공포를 낳으며 종교는 순수한 믿음의 의미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이 영화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독립영화로 인식되어 스크린잡기부터 한계를 보여 관객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들 공포영화는 평론가나 기자들의 평가를 제쳐두고라도 흥행결과도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나마 <여고괴담5-동반자살>이 전국적으로 약 65만명의 관객을 모아 겨우 손익분기점을 맞췄다. <불신지옥>(24만8000명) <요가학원>(24만5000명) <4교시 추리영역>(6만7000명)은 현재 상태라면 손익분기점조차 맞출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8월 31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인용)

이렇게 올 한국 공포영화들이 관객들의 외면을 받은 이유는 뭘까? 서대원 영화칼럼니스트는 단적으로 올 공포영화들이 졸속기획으로 작품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4교시 추리영역>같은 경우는 작년에 <고사: 피의 중간고사>가 흥행에 성공했다고 비슷한 얼개를 갖고 올해 또 개봉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매년 하는 이야기, 여름 한철 장사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제작자와 감독의 뼈를 깎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공포영화평론집 <공포영화관>을 낸 김시광씨는 “<여고괴담5>의 경우 어디선가 본 듯한 이어붙인 영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세월이 10년이나 흘렸는데 낡은 감성으로 관객에게 호소하려 하니 접점을 찾지 못했다”며 “차별화된 구성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불신지옥>의 경우 평단이나 매체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이들의 파급력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입증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올해 공포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이유로 ‘대작들 틈바구니 속의 희생양였다’고 말하는 영화관계자도 있다. <트랜스포머2> <해운대> <국가대표> 등에 치여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관계자는 “공포영화가 결코 쉬운 장르가 아니다. 고단수인 관객보다 한발 앞선 동선을 만들어내기 위한 꼼꼼한 기획이 우선돼야 한다”며 “예전처럼 ‘공포영화 첫 작품 불패신화’를 믿고 매년 비슷한 공포영화가 양산된다면 관객들은 싫증을 내고 외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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