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중간점검)④"무용론보단 조기정착 힘쓸 때"

시행초기 곳곳에서 마찰..일부선 무용론도
"혼란 필연적..법취지 살려 수정·보완해야"
  • 등록 2009-02-23 오후 12:33:00

    수정 2009-02-23 오후 12:33:00

[이데일리 김춘동기자]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함께 논란도 뜨거워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던 데다 기존 제도와 관행의 큰 틀을 바꾸다 보니 시행초기 이곳 저곳에서 삐그덕 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자통법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일부에서는 자통법 무용론마저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질 수밖에 없는 혼란으로 인해 규제완화 등의 법 취지 자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강하다. 특히 투자자보호의 경우 금융회사는 물론 투자자들도 초기 불편을 감수해, 올바른 투자문화 정착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평가다.

다만 마치 선진 투자은행(IB)과 등식관계로 인식되고 있는 자통법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법 시행과정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은 조화롭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자통법=선진 IB` 환상 버려야

자통법은 당초 선진 IB로 향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졌다. 금융당국과 증권업계가 자통법 입법을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그 효과를 다소 과장한 영향이 크다. 자통법은 선진 IB라는 등식은 입법과정에서 위력을 발휘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IB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면서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통법 시행 후에도 환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자통법이 기존 규제의 체계와 방향을 전반적으로 바꾸고, 투자자보호 역시 크게 강화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획기적인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자통법 시행 자체가 선진 IB를 만들어주거나 금융투자회사의 대형화와 전문화 등의 경쟁력 강화를 담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가령 금융상품 규제가 네거티브 방식으로 변경됐다고 해서 상품개발 능력이 단숨에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펀드판매 규제 강화를 의식해 앞으로 브로커리지 부문에 더 집중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한 증권사 사장은 "자통법은 증권업계의 경쟁력 향상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통법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혹평을 내놨다.

◇ 법 취지 살려 수정·보완 병행 필요

하지만 자통법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것이 자통법 무용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통법이 충분하진 않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금융투자업계의 경쟁력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금융상품 규제완화가 상품 경쟁력을 담보해주진 않지만 자유롭게 창의적인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겸업허용으로 당장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순 없지만 역시 다양한 가능성의 바탕을 마련해줄 수는 있다.

다만 도입과정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겸허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 법을 만들다 보니 국내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현지화를 거치지 못한 탓이다.

이에 따라 차이니스월 등 업계의 현실과 도저히 맞지 않는 규정들은 과감하게 또 조속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투자자보호 규정 역시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흐를 경우 보완해야 한다. 자통법의 모델 가운데 하나였던 호주의 금융서비스개혁법(FSRA) 역시 2002년 시행 이후 두 차례나 개정됐다.

앨런 캐머런 전 호주 증권투자위원장은 지난달 자통법 국제세미나에서 "FSRA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장상황에 맞춰 2005년과 2007년 잇따라 개정됐으며, 개혁은 현재진행형"이라며 "한국의 자통법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고, 효과는 5년 이상을 두고 차분히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규제완화·투자자보호 취지 훼손 안돼

반면 자통법 보완을 이유로 규제완화와 투자자보호 강화라는 법 취지 자체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부에서는 자통법이 혁신과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해 네거티브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지만 하위규정들이 네거티브 규제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현재 금융상품 판매자는 물론 투자자에게 가장 큰 불편을 안겨주고 있는 투자자보호 규정의 경우 초기 불편에도 불구하고 당초 취지를 잘 살려 조기정착을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그 동안 거액의 금융상품을 판매하거나 구입하면서도 기본적인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던 만큼 자통법 시행을 계기로 불완전판매 관행을 근절하고, 새로운 투자문화 정착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

금융당국 관계자는 "집을 살 때는 직접 방문하거나 등기부등본을 떼보는 등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서도 금융상품을 구입할 때는 너무 쉽게 결정한 측면이 있었다"며 "자통법 시행과 함께 금융회사는 물론 소비자 역시 기존의 관행을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자통법 시행초기엔 펀드판매 등의 부문에서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선진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한번은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인 만큼 조기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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