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사회와 기업은 하나다
②커피향의 죄책감을 씻다
③`最善`이 최고의 부가가치
④`생산활동=사회공헌`
⑤`국민기업` 발렌베리를 가다
제2부, 한국기업 새 부가가치에 눈뜨다
제3부, 기업환경이 부가가치를 만든다
[이데일리 이태호기자] 지난 12일 세계 2위 PC업체 휴렛패커드(HP)는 조만간 캐나다를 시작으로 자사제품의 다쓴 배터리를 무료로 회수하는 서비스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객이 HP에 전화를 걸면 무료로 방문, 회수해주는 방식이다. 재활용 가능한 배터리가 대부분 버려지면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다.
HP는 이미 `플래닛 파트너스`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1991년부터 프린터 카트리지를 회수·재활용하는 서비스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제품으로까지 `돈이 안되는` 프로그램 적용을 확대하려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회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주가도 높다
사회책임경영 전문잡지 비즈니스 에식스는 올해로 7년째 세계 `100대 기업시민` 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다. HP는 이중 유일하게 7년 연속 상위 1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회사. 2000년에 `디지털 빌리지` 프로그램을 통해 후진국에서 기술교육을 실시하고, 세계 환경보호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 축소에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HP는 이 같은 사회사업에 관심을 쏟는 이유에 대해 "투자자와 소비자들이 과거와 달리 사회책임경영을 지속가능경영의 필수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사회책임경영 우수기업이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란 뜻이다.
실제로 HP의 주가는 기술업체의 전반적인 부진에도 불구하고 미국 증시의 대표적인 지수인 S&P500을 웃돌고 있다. 지난 13일까지 3년 간의 주가의 경우 HP는 13.5달러에서 23.7달러로 43% 올랐고 S&P는 1365.6으로 23% 상승했다.
물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바른(善) 기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더 뛰어난 주가 상승률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00대 기업시민`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주가가 고공비행하는 기업은 얼마든지 있다. 통상 `악덕 기업`으로 분류되는 석유기업 엑손모빌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가총액을 자랑하고 있다.
사회책임경영이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미국의 투자 연구소 KLD가 고안한 DS400 지수(그래프)가 있다.
사회책임경영 전문 투자 건설팅회사인 KLD는 S&P500 지수를 기본 틀로, 지배구조·환경보호·지역사회공헌·품질과 안전성 제고노력·다각화 등 분야에서 뛰어난 기업들의 비중을 강화하고 도박·술·무기·담배·포르노업종을 제외해 DS400 지수를 만들었다.
S&P500 지수내 기업이 250개, 비(非)S&P 기업 100개로 이뤄져 있으며, 나머지 50개는 이례적으로 높은 사회책임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들로 채워진다.
KLD에 따르면 DS400 지수의 수익률은 특정 기간에 따라 주식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웃돌기도, 밑돌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수익률을 나타내는 누적 수익률로 볼 때 S&P500 지수를 꾸준히 웃돈다는 것을 밝혀냈다.
지난 한달(9월)의 경우 DS400 지수의 수익률은 3.02%로 같은 기간 S&P500 지수의 수익률 2.58%를 크게 앞질렀다. 이 지수가 처음 만들어진 지난 1990년 5월 이후의 수익률은 DS400 지수가 연율 기준 11.87%, S&P500이 11.20%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배구조·사회공헌·친환경·윤리경영 등을 종합 평가하는 사회책임투자(SRI)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사회투자포럼(SIF)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국에서 운용되는 SRI 자산은 2조3000억달러(2300조원)로 10년 전에 비해 258% 급증했다. 또 SRI 펀드는 전체 펀드 자산의 8분의 1 수준에 달한다.
고지식한 투자자들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SRI 펀드를 `이상주의자들의 공허한 아이디어` 정도로 폄하했지만, 이제는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게 된 노릇이다.
◇"이왕이면 바른 기업의 제품을 사야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소비자들이 감동을 주는 기업에 지갑을 열 것이란 생각은 그동안 상당히 추상적인 기대로 비춰졌다. 고전적인 관점에서 소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낮은 가격 혹은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 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보회사 플레시먼힐라드와 미국소비자연맹(NCL)이 지난 5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는 다소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조사 대상 800명 가운데 35%가 제품 선택의 기준으로 해당 제조업체의 사회책임경영 여부를 중시한다고 답한 것이다(왼쪽 그래프).
반면 낮은 가격과 구매용이성이 중요하다는 답변은 똑같이 20%로 오히려 이보다 훨씬 적었다. 선진국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응답자들은 향후 기업 투자를 고려할 때도 사회책임경영을 매우 중대한 잣대로 삼을 것이라고 응답(63%), 단순히 돈만 잘버는 데 혈안이 된 기업들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한편 소비자들은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기록(record)을 알아보는 데도 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항상(always)` 기록을 찾는다는 답변은 6%, `때때로(sometimes)` 찾는다는 답변은 46%로 집계됐다. 전혀 찾지 않는다는 응답은 10%에 그쳤다. 기업경영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눈이 크게 성숙해진 것이다.
이와 관련, `2005 대한민국 사회책임경영 대상`을 수상한 신한은행의 사회공헌팀 관계자는 "은행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예전과 달리 비슷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 기준에는 `어떤 기업이 보다 사회적인 책임에 충실한 지`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