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히스패닉계의 구매력

  • 등록 2003-03-03 오후 12:20:33

    수정 2003-03-03 오후 12:20:33

[뉴욕=edaily 이의철특파원] 지난주 CBS방송이 중계한 그래미상 수상식. 수상식의 중간 중간에 방영됐던 광고중엔 독특한 광고가 하나 있었다. 프록터앤갬블(P&G)의 "크레스터"치약 광고였는 데 영상이 화려했다거나 컨셉이 독특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광고가 스페인어로 방영됐다는 점 때문에 시청자들의 귀(?)를 끌었다. "스페인어 광고"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사실 새로울 것도 놀랄 것도 없다. 이미 스페인어 채널에서 숱하게 스페인어 광고방송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CBS방송의 주요 시청시간대에 더구나 영어권 시청자들을 겨냥한 프로그램에서 스페인어 광고를 내보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CBS가 프라임 시간대에 스페인어 광고를 내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프록터앤갬블로서도 이번 광고가 미국내 첫번째 스페인어 광고다. 미국 주류방송에서의 스페인어 광고는 미국내에서 히스패닉계의 정치력과 경제력이 급속히 신장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이미 히스패닉은 흑인을 제치고 소수계중 최대인종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발표된 인구 센서스국의 통계에 따르면 2001년 7월 기준 스페인계나 멕시칸계로 불리는 히스패닉이 3700만명 (미국 전체 인구의 13%)으로 흑인(3200만명)을 제치고 소수계 인종 1위로 부상했다. 여기서 말하는 히스패닉이란 "스페인어를 쓰는 부모나 조상을 둔 사람"들이다. 히스패닉계는 이미 정치 경제 문화 등 미국사회의 전 부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서부는 물론 동부의 많은 학교들에서 스페인어를 제 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으며 지난번 중간선거에선 남부 일부 주의 주지사 후보들이 스페인어로 정견발표를 하기도 했다. 히스패닉들이 많이 사는 LA 등지에선 영어를 몰라도 의사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스페인어가 일반화돼있다. 그렇다면 히스패닉계가 미국내에서 이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간 평균 35만명의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들어올 만큼 이민자들도 많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자녀들을 많이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센서스국의 통계를 보면 히스패닉의 증가율이 여타 소수계 인종들의 증가율을 훨씬 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4월부터 2001년 7월까지 히스패닉은 3530만명에서 3700만명으로 4.7%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중 흑인(스페인어를 쓰지 않는 흑인 기준)은 3550만명에서 3610만명으로 2% 늘어나는데 그쳤다. P&G와 같은 기업들이 히스패닉계를 겨냥해 스페인어 광고를 내보내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히스패닉계의 구매력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미국내에서 히스패닉계는 그간 양적으로 끊임없이 증가해왔지만 미국 주류사회내 비중으로 따진다면 별 볼일 없었다. 미국 사회내에서 경제적 입지에 따라 인종들을 일렬로 줄세운다면 히스패닉은 여전히 중간 이하다. 정치적으로도 비중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불법체류신분들이 많아 투표권을 가질 수 없고 이는 곧 정치적인 "소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같은 지형에 이제 서서히 변화가 오고 있다. 히스패닉들이 양적 성장을 토대로 정치 경제적인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 기업들도 히스패닉계의 잠재적 구매력에 눈을 돌리고 있다. 피닉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광고회사 가우거&샌티사의 부사장 로저 아레발로는 "현재 미국내 히스패닉계의 구매력은 6000억달러 정도로 추산된다"며 "오는 2007년까지 히스패닉계의 구매력은 매년 10% 씩 성장해 9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계 히스패닉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은 멕시코 출신들이다. 그 다음으로 푸에르토리코와 쿠바 등의 순서다. 서부는 멕시코계가, 동부는 푸에르토리코와 쿠바계들이 장악하고 있다. 특히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는 쿠바 출신 히스패닉들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연간 총매출액이 110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미국에서 "범 히스패닉 중산층"이란 새로운 계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히스패닉들이 미국 사회내에서 그들의 양적 성장에 걸맞는 경제적 힘을 발휘한다면 그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영어권내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이들 히스패닉들이 그 비중에 걸맞는 대접을 당당히 요구할 날도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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