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100일)이명박, 다시 CEO로 돌아가라

국민과 공무원들 `직원 아닌 고객`으로 대해야
  • 등록 2008-06-02 오후 12:51:12

    수정 2008-06-02 오후 12:59:11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100일은 태어난 아기가 살아남아 사람 구실을 할 지, 병으로 죽을 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아기를 상에 앉혀놓고 백일잔치를 하는 것은 그런 큰 고비는 넘겼다는 축하의 뜻을 담고 있다. 
 
3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 이명박 정부는 그런 축하의 박수를 받기에 아직 이르다. 오히려 취임 100일을 기점으로 맥박과 혈압의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는 양상이다. edaily는 이명박 정부 100일을 맞아 새 정부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 100일' 시리즈를 준비했다.[편집자주] 
 
다시 작년 12월로 돌아가보자. 국민들은 왜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그리고 5개월 가량이 흐른 지금 실망을 넘어 분노의 목소리들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명박 정부 100일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민심의 변화를 주의깊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지율이 낮아진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우리는 그대로 간다'는 결론이 아니라면 국민들이 어떤 점에서 실망했는지를 아는 것이 남은 임기를 풀어가는 고민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은 '일을 할 줄 아는 믿음직한 경제 전문가'라는 이미지 덕분이다. BBK 문제에 대한 논란조차 '경제를 잘 아니까 그런 것에도 얽히지 않았겠느냐'는 식으로 해석될만큼 국민들의 경제문제 해결에 대한 갈증은 대단했다.

이명박 정부라는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시원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경제가 어려워진 것이 노무현과 386들 때문이라는 시중의 목소리도 이런 기대감을 거들었다. 그러나 인수위가 출범하면서부터 조금씩 의문과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 광우병 논란 등과 관련해 지난달 22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출처: 청와대)


◆ 국민과의 갈등..'오해다' 시리즈에서 출발

인수위 시절의 해프닝으로 기억되는 가장 상징적인 두 가지 사건은 이명박 정부와 민심의 괴리가 어디서부터 벌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 뒤의 여러 시빗거리들은 이 두 사건의 아류작들이다.

첫번째 사건은 영어 몰입교육이다. 국제화 시대에는 영어가 국가경쟁력이라는 명쾌한 논리에서 시작했지만 국민들은 '이제는 영어도 과외를 시켜야 하느냐'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정권 초기의 보이지 않는 이 간극을 이명박 정부는 메우지 않고 넘어갔다. 영어 몰입교육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불안해 하는 여론에 대해서는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그건 오해다'라고 한마디하고 넘기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들은 다시 뒤돌아서 어떻게 하면 영어 몰입교육을 추진할 것인지 며칠밤을 새워가며 고민했다. 예산을 짜고 교사 수급상황을 살폈다. 처음에는 다 반대하기 마련이고 나중에는 다 알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너무 강했다. '오해다' 시리즈는 그 뒤로도 계속됐다.
 
대운하 논란도 그와 똑같은 프레임으로 진행됐고 쇠고기 협상도 그런 식이었다. 요즘 한참 바쁘게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오해하는 것인데 지금은 바빠서 설명할 시간이 없다. 나중에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모드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머슴론'을 강조했지만 머슴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주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했던 게 국민들과 멀어진 첫번째 이유였다. 국민들에게 오해라고 손을 내저었지만 사실 오해는 이명박 정부가 먼저 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것을 국민들이 자신들을 믿는다는 것으로 '오해'한 것에서 비극이 시작됐다.

◆ 어설픈 디테일로 공무원들 다그쳐

두번째는 대불공단 전봇대 사건이다. 지방 공단의 전봇대 문제까지 꿰고있다는 디테일에 강한 이미지를 한껏 부각시켰지만 주사나 과장이 아닌 대통령의 '디테일'은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대불공단에서는 결국 엉뚱한 전봇대가 뽑혔고 대형 트레일러는 여전히 못다닌다.
 
'하루 220대 다니는 톨게이트' 사건과 '50개 생필품 물가관리 지시'사건은 대통령의 어설픈 디테일과 복지부동형 공무원들의 합작품이었다. 220대가 다니는 톨게이트는 결국 찾지 못했고 52개로 정리된 물가관리 대상은 정해놓긴 했지만 그 뒤로 이것들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이명박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이던 '일 잘하는 일꾼'의 이미지는 무참히 깨졌다. 일하는 방식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저기서 오해와 부작용이 늘 생기는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실망했다.

경제 전문가 이미지도 얼마 못갔다. 성장과 물가 사이를 오가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전달되면서 국민들은 더 불안해졌다. 시장은 불경기보다 불확실성을 더 싫어한다는 기초적인 원칙도 배려하지 못한 셈이다. 정부 정책의 방향성이 갈팡질팡하는 데 선뜻 투자에 나설 기업은 없다.

공무원들에게 '창의적이면서 부지런하라'는 다소 앞뒤가 안맞는 주문이 쏟아지면서 공무원들은 특유의 '복지부동'과 '핑퐁 모드'로 전환했다. 청와대의 시각에서 보면 늘 오해만 하는 국민들과 말귀를 통 못알아듣는 공무원들로 둘러싸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단독 드리블과 정면돌파가 잦다. 국민들의 눈에는 그게 오기로 비친다. 쇠고기 협상을 놓고 사과는 했지만 소통부족이 문제일 뿐 협상 자체는 잘못된 게 없다는 입장이 계속된다. 기름값이 오르는 건 소비를 줄여서 극복해야지 별다른 대책은 없다는 게 대통령의 일관된 시각이다.

◆ CEO 마인드 아쉬워..역사적 지도자 부담 벗어라

많은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과 경영을 혼동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국민을 부하직원 다루듯이 대한다는 지적이다. CEO 마인드를 버리고 대통령의 마인드를 찾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100일의 좌충우돌은 그의 강점인 CEO마인드를 쉽게 버리고 고독한 국가지도자의 사명감을 갖게 된 탓에서 온 면이 크다. 여야관계가 삐걱거리는 것도 따지고 올라가면 "나의 경쟁자는 국내에 없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내 경쟁자들"이라던 독불장군식의 지도자 마인드에서 비롯됐다. 상대로 생각하지 않으니 대화가 될 턱이 없다. 

영어 몰입교육도, 쇠고기 문제도, 공기업 민영화도 여론과의 갈등을 빚었던 모든 문제들이 이명박 정부의 5년을 국민이 아니라 역사에 '납품'하고 물러나겠다는 대통령의 거창한 목표의식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1~2년 힘들더라도 10년후에 튼튼해지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발언도 지금은 왜 힘든지 10년후에는 어떻게 튼튼해지는지 국민들을 납득시킨 후에야 유효한 선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CEO로 돌아가라는 충고는 그래서 나온다. 다만 되찾아야할 것은 국민을 직원으로 생각하는 CEO마인드가 아니라 국민과 공무원들을 고객으로 생각하는 CEO마인드다. 촛불시위에 참가한 국민들의 목소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CEO로 돌아가지 않으면 국민들이 그를 CEO 시절로 되돌리겠다'는 경고까지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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