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름세일 ‘원정쇼핑 1박 3일’ 동행 취재

이민가방 들고 명품쇼핑… “이것도 모자라요”
새벽 공항 내리자마자 명품 매장으로 직행
엔화 약세로 가격역전… 신제품 많아 인기

  • 등록 2007-07-18 오후 12:00:00

    수정 2007-07-18 오후 12:00:00

[조선일보 제공] 지난 14일 오전 7시 도쿄 신주쿠(新宿) 이세탄백화점. 열도(列島)를 몰아친 초강력 태풍‘마니’에도 불구하고 영업시작 3시간 전부터 쇼핑객들이 백화점 주변을 휘돌아 감았다. 얼핏 세봐도 1500여명이 쉽게 넘어갔다. 곳곳에서 한국말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입장 대기 번호표를 쥐고 있던 한국인 쇼핑객 이모(여·32·회사원)씨.“ 새벽 5시40분 하네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어요. 인터넷 카페에서 일본이 세일 기간이라는 정보를 듣고 왔습니다.”

3시간30분을 기다려 들어간 이씨가 1층 구찌 매장에서 고른 핸드백은 7만2000엔(약 55만6000원). 매장 직원이 “한국엔 없는 스타일”이라고 자랑했다. 이씨는 망설임없이 신용카드와 함께 핸드백을 점원에게 내밀었다. 바로 위층 의류 매장. 한국에서 30만원쯤 하는 ‘마크 바이 마크제이콥스’ 반바지가 1만3000엔(9만원선)이었다. 이날 인천공항 환전소 환율은 100엔당 773.71원. 같은 상품이 일본에선 거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또 다른 한국인 이희범(35·회사원)씨. 여름 휴가차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도쿄타워 등을 둘러 볼 요량으로 일본 땅을 밟았다는 그는 “핸드백과 나이키 운동화만 사가도 비행기 값은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렀다”며 “정말 너무 싸다”고 말했다.


◆일본행 쇼핑객으로 붐비는 공항

한국 쇼핑객들이 일본으로 몰려들고 있다. 한국에는 없는 오리지널 신착(新着)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다, 원화 강세로 인해 일본 내 명품 가격이 국내보다 훨씬 싸졌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명품 시장인 일본에는 에르메스나 루이비통, 샤넬 등 유명 명품 브랜드 상품 중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모델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수요가 적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상품들이다. 게다가 싼 엔화 덕에 주머니 부담도 국내보다 훨씬 덜하다. 3년 전 105만원은 하던 일본 내 명품을 지금은 77만원에 살 수 있다.

이날 새벽 1시. 인천공항 J열 발권 데스크 주변 의자에는 도쿄 1박3일 쇼핑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새우잠을 청하고 있었다. 최모(여·38)씨는 단 3일짜리 여행인데도 이민가방 사이즈의 대형가방을 들고 나왔다. “한번 해보세요. 이것도 나중엔 모자랍니다….”

최씨는 지난 2년간 4번이나 일본 ‘밤도깨비 여행’(금요일 밤에 출발, 월요일 새벽에 귀국하는 단기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 때마다 주위 사람들 부탁으로 핸드백이나 옷 등을 사왔어요. 이번엔 ‘코치’(미국 브랜드) 매장을 주로 둘러볼 생각입니다.”

주5일 근무제와 함께 외국 쇼핑 붐이 불면서 국내 여행사들은 주말마다 인천공항과 하네다 공항을 오가는 전세기를 띄운다. 예약은 대부분 한달 전에 끝난다. 하나투어 김희선 팀장은 “여름 세일기간을 맞아 일본·홍콩의 비행기 좌석과 현지 호텔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쇼핑이 주목적인 하나투어 도쿄 자유여행 상품의 이용객은 2003년 295명에서 지난해 5278명으로 3년 사이 17배 이상 늘었다.

일본으로 원정쇼핑을 떠나는 이들은 누구일까. 몇 년 전만 해도 보따리 장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주부·회사원에 심지어 학생들까지 총망라돼 있다. 이들은 주로 일본항공(JAL)의 전세기를 이용한다. 출발은 언제나 인천공항. 김포~하네다 노선보다 값이 싸기 때문이다. 전세기 260여 좌석엔 빈 곳이 하나도 없었다.

▲ 태풍‘마니’가 불어 닥친 지난 14일, 여름 세일을 맞아 도쿄 신주쿠 이세탄백화점을 찾은 쇼핑객들이 개점을 기다리며 아침부터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이성훈 기자

◆한국 쇼핑객들 ‘불편 없다’

백화점 밀집 지역인 긴자(銀座) 네거리 주변 명품 거리에서도 한국어가 자주 들렸다. 회사원 최지원(34)씨는 대로(大路)에서 조금 비껴나 골목에 위치한 루이비통·샤넬 매장을 찾아 들어갔다. 샤넬 매장에서 최씨가 “2.55 모델 있느냐”고 영어로 묻자, 매장 직원은 서툰 한국어로 “한국 분이신가요?”라고 되물었다. 그가 꺼내온 핸드백 가격은 33만3900엔(258만3400원). 최씨는 “한국 모델과 스타일은 조금 다른데, 가격 차이는 50만원쯤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귀국 후 국내 백화점 매장에서 확인한 같은 모델의 가격은 359만원. 최씨가 생각한 것보다 가격 차이가 훨씬 컸다.

이튿날인 15일 오후. 최근 젊은 한국 쇼핑객들 사이에서 새 명품 명소로 떠오른 하라주쿠(原宿)의 오모테산도를 찾았다. 지난해 문을 연 대형 쇼핑몰 ‘오모테산도 힐스’ 주변으로 루이비통·프라다·구찌 등의 명품 브랜드 로드숍이 줄지어 서있다. 약사인 박모(42)씨 부부는 “도쿄에 올 때마다 꼭 이곳에 온다”며 “세련된 명품 매장을 둘러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고 말했다.

도쿄만에 인접한 쇼핑몰 ‘비너스포트’에도 손님의 3분의 1 이상이 한국인들이었다. 한국인들은 ‘버버리 블루라벨’이나 ‘ZARA’ 등 한국에 없는 브랜드 매장에 주로 몰렸다.

현행 관세법에 따라 400달러가 넘는 물품을 들여 올 때 세관에 신고해야 하지만, 한국인 쇼핑객들은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개인 여행객의 짐을 일일이 확인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씨는 “세관신고서만 제출할 뿐, 지금까지 한번도 짐 검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지 쇼핑가이드 나카하타 유리(友里)씨는 “세계 최고 명품시장인 일본에서 한국인 쇼핑객은 중국인과 함께 큰 손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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