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이경탑 김수연기자] 내년 4월 시행 예정인 2단계 방카슈랑스를 둘러싸고 은행과 보험사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은행은 `예정된 일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보험사는 `연기`을 강력 요청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감독당국이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방카슈랑스는 은행을 통해 보험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한 제도로 2단계가 시행되면 현행 생보사의 저축성 보험에서 보장성 보험과 손보사의 자동차보험으로 판매 상품이 확대된다.
은행과 보험사간의 갈등은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이 19일 은행장들과 취임후 첫 상견례를 가진데 이어 20일 보험사장단들과 만나 보험업계의 현안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더욱 부각되며 도마위에 올랐다.
자신의 고유 영역을 빼앗긴 보험사장단들은 2단계 방카슈랑스 확대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 반면 은행장들은 `법에 정한 당초 일정대로` 추진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윤 위원장은 "방카슈랑스가 도입된 지 1년이 채 안돼 현 단계에서 성급하게 그 성과와 문제점을 말하기 이르다"고 전제한 뒤 "(방카슈랑스가) 지난 1년간 판매과정에서 일면 보험시장과 판매채널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은행의 우월적 판매지위 남용, 불완전판매, 중소판매인의 불안 등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내년 4월 확대 도입 예정인 2단계 방카슈랑스의 연기 가능성을 감독당국이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 시사한 것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특히 윤 위원장이 전날 은행장 간담회에서 "은행들은 단기적인 수익성에만 매달리지 말고, 기업 가계대출 신불자 문제 등에 있어 적극적인 자세로 실물 경제를 선도해 줄 것"을 촉구한 것과 달리 이날 보험사장단과의 만남에서는 보험시장의 어려운 속내를 잘 알고 있다고 밝혀 감독당국이 보험업계쪽에 서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보험사 "`3윈→1윈2루즈로 퇴색`..연기해야"
보험사장단은 "방카슈랑스 도입 검토 당시 정부와 업계는 보험사-은행-고객이 모두 이익을 내는 `3윈`을 목표했으나 지난 1년간 국내 방카슈랑스 시장은 은행만 독주하고 보험사와 고객이 모두 손해를 보는 `1윈-2루즈`로 퇴색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자동차보험과 보장성보험으로 확대되는 2단계 방카슈랑스 계획을 정부가 전면 재검토, 시행시기를 연기해 줄 것을 강력 촉구하고 있다.
요지는 이렇다. `당초 방카슈랑스를 통해 은행은 신규 수입원(판매 수수료)을 확보하고, 보험사는 전체시장의 규모확대를 통한 이익 증대를, 고객은 판매구조 개선에 따른 보다 낮은 보험료를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경기침체 등으로 전체 보험시장은 정체상태에 놓여 있는 반면 은행은 판매에서 우월적 지위를 통해 높은 수수료를 요구해 보험료는 인하되지 못했고, 오히려 불완전판매 등으로 되레 향후 보험료 인상 가능성이 예고된다는 주장이다`
생보사 관계자는 "2단계 방카슈랑스 도입 이후 생보시장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1차년도에 은행이 전체 보장성보험 판매의 42%를 차지하고, 3차년도에는 52%까지 잠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2단계 개방 1차년도에 국내 생보 10개사중 절반이 부실화되고, 3차년도에는 6개사, 6차년도에는 8개사가 망할 것으로 전망됐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2단계 방카슈랑스가 시행되면서 국민은행의 KB생명 출범에 이어 은행의 자회사 설립과 시장점유율 확대 등이 지속돼 중소형사는 물론 대형사까지도 함께 경영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손보업계도 자동차보험의 방카슈랑스 판매가 허용되면 은행은 높은 고객 접근성과 임직원의 판촉을 앞세워 단기간내 자동차보험 시장의 35%를 점유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경우 자동차보험의 97%를 차지했던 설계사와 대리점 조직이 와해돼 이들의 대량실업 사태를 맞을 가능성이 크고, 중소형 손보사들은 재무안정성 등의 취약점으로 은행과 방카슈랑스 제휴도 못맺고 있어 2단계 도입 즉시 파산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아울러 중소형보험사가 파산될 경우, 이들의 계약분은 대형사들이 나눠가질 수 밖에 없고, 이럴 경우 대형사들도 동반 부실화하는 이른바 `보험대란`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리젠트보험 파산으로 삼성 등 대형 상위사들이 현재 1000억원대 가량의 손실을 분담하고 있다"며 "중소형사 파산시 업계전체의 공멸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은행 "법 대로 하자"
은행들은 보험사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법대로 하자`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일정대로 강행`을 외쳐왔던 감독당국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자 배경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은행들은 감독당국이 지엽적인 문제로 정책 틀을 바꿔서는 안되고, 방카슈랑스의 가파른 시장잠식 등은 이미 제도 도입전부터 예상됐던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방카슈랑스를 도입해 보험산업이 망한 곳은 없다"며 "이미 제도적으로 정해진 만큼 충실히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방카슈랑스가 보험 상품의 불완전 판매를 부추긴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은행이 책임져야할 일인데 은행권이 일부러 부실 판매를 할 이유가 없다"며 "설령 그런 부분이 있더라도 방카슈랑스에 대한 정부의 정책 수정이 아닌 감독 기능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은행만이 보험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한데 따라 제기된 보험사들의 `불공정 경쟁` 주장과 관련해서도 "보험사의 은행 인수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라는 보다 큰 문제와 연결된 사안인 만큼 방카슈랑스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은행권 또 설계사의 실업 문제 등 지엽적인 문제로 정책적 틀을 바꿀 수는 없다며 정책 신뢰성 측면에서도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일정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감독당국 `예정대로 강행`→`검토` 입장 선회(?)
양측 입장차가 워낙 첨예해지면서 결국 칼자루를 쥔 감독당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최근 금감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제까지의 `예정대로 강행` 입장에서 `보험사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점이 감지되고 있다.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방카슈랑스를 도입하기로 했을 때) 이미 보험사와 대리점 등의 충격을 예상은 했지만, 사실 그때는 손보사들의 영엽 환경이 이렇게까지 악화될 줄은 몰랐고, 온라인 자동차보험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도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내년 4월까지는 아직 시간여유가 있는 만큼 재경부나 금감위가 당장 연기여부를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윤증현 감독위원장도 2단계 방카슈랑스 시행과 관련, "재경부와 충분히 협의해 검토하겠다"고 말해 2단계 방카슈랑스 연기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한편 2단계 방카슈랑스 시행시기가 다가오면서 보험업계의 공동 투쟁은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손보협회는 이달말 각 은행장들에게 보험산업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서신을 발송할 예정이다. 또 손보대리점협회는 내달 9일 서울 광화문에서 1만여명의 설계사와 대리점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생보협회도 이르면 내주중 재경부와 감독원 등 관계당국에 방카슈랑스 도입 1년 동안의 부작용과 2단계 강행시 발생할 문제점들을 담은 `2단계 방카슈랑스 유보 건의서`를 제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