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기대감은 새로운 시빅의 보도 자료를 살펴보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지는 듯 했다. 보도자료 속에는 기대하던 1.5L 터보 엔진이 사라져 있었고, 판매 가격 역시 최근 가격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수입차 시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3,060만원의 가격이 써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진을 찍던 기자는 그 뒤로 약 한 달이 지난 7월 중순, 10세대 시빅의 키를 쥐었다.
시빅이라는 아이콘의 존재 그 자체가 크다. 시빅은 말 그대로 ‘글로벌 베스트 셀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데뷔 이래로 10세대에 걸쳐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혹자는 시빅을 생애 첫 차로 사용하기로 했고, 혹자는 모터스포츠에서의 파트너로서 시빅과 함께 하며 시빅의 역사를 지금까지 이어온 모델이다.
때문일까? 혼다코리아는 올 뉴 시빅을 출시하며 호기롭게 ‘연간 1만 2,000대 판매 목표를 앞세웠다. 어코드가 중심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올 뉴 CR-V, 올 뉴 시빅 등을 통해 판매량을 끌어 올리겠다는 의지였다. 처음에는 시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만큼 그 이야기가 가능하리라 생각했으나 자료 속 시빅의 내용을 살피고는 ‘혼다 코리아의 목표가 과연 실현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시장에서 잠시 멀어졌던 공백으로 인해 시빅의 존재감 자체가 옅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동남아시아나 미국 같이 시빅의 주무대라 할 수 있는 시장에서는 시빅이 꾸준한 판매를 이어가며 이번 10세대 시빅까지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판매 저조 등으로 2년 정도 공백기를 가졌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다 올 뉴 시빅은 기존 9세대 시빅 대비 한층 커지고 여유로운 차체가 눈길을 끈다. 특히 넓어진 전폭과 길어진 휠 베이스를 바탕으로 4,650mm의 전장과 1,800mm의 전폭, 1,415mm의 전고와 2,700mm의 휠 베이스를 자랑한다. 이는 시장에서 직접적인 경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현대 아반떼AD나 쉐보레 올 뉴 크루즈 등과 무척 유사한 수치다.
한편 올 뉴 시빅의 보닛 아래에는 2.0L 직렬 4기통 i-VTEC 엔진이 탑재됐다. 이 엔진은 최고 출력 160마력을 내며 19.1kg.m의 토크를 낸다. 여기에 CVT의 조합을 통해 복합 연비 14.3km/L(도심 12.8km/L 고속 16.9km/L)의 우수한 효율성을 자랑한다. 엔진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C-세그먼트에서 2.0L 엔진을 탑재한 모델만 내놓은 점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런데 이 엔진을 올 뉴 CR-V 터보에서는 탑재하는 결정을 보였다. 덕분에 크로스오버 모델인 CR-V에 1.5L 터보 엔진이, 그리고 시빅에는 2.0L 엔진이 탑재되어 ‘단일 엔진 사양’으로 운영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출시 현장에서 시빅 1.5L 터보 모델의 도입은 아직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에 기자는 ‘차라리 그 반대로 구성을 하지..’라는 중얼거림을 하게 됐다.
출시 행사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난 후, 시승을 앞두고 시빅의 키를 쥔 기자의 머리 속은 꽤나 복잡했다. 시빅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했고, 그러면서도 1.5L 터보 엔진에 대한 부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북미 시장에서 ‘1.5터보 모델’에 대해 우수한 평가가 이어진 것을 본 입장에서는 무미건조할 것 같은 2.0L 엔진이 얄미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발진을 시작한 시빅은 큰 저항감은 없지만 살짝 둔한 것 같은 감각이었다. 아무래도 터보 엔진들과 다른 리니어한 토크 밴드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터보 엔진을 많이 탔던 기자는 RPM이 오르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엑셀레이터 페달을 강하게 밟으며 RPM을 끌어 올렸다.
이런 발진, 가속을 수차례 이어가던 중 기자는 어느새 기어를 S 단으로 옮겨 사용하고 있었고 1.5L 터보 엔진은 나중에 들어와도 좋으니 차라리 패들 쉬프트가 적용되어 RPM 활용을 더욱 능동적으로 하여 스포티한 주행을 가능하게 해줬으면 하는 ‘2차적인 소망’을 바라게 됐다.
자동차의 주행에 있어 파워트레인은 무척 중요한 존재다. 하지만 파워트레인만으로 좋은 드라이빙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시빅이 그 예를 무척 잘 보여준다. 혼다 시빅은 자동차 개발, 특히 주행 관련된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기술력이 파워트레인을 얼마나 돋보이게 만드는지 가르쳐 주는 차량이었다.
스티어링 휠을 쥐고 꽤나 빠른 템포로 주행을 이어갔음에도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도 크게 느껴지지 않고, 차량의 무게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혼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빠르게 차선을 바꾸고, 시빅을 앞으로 재촉했다. 시빅은 그런 재촉이 아무런 일이 아니라는 듯 차체를 가볍게 움직이며 주행을 이어갔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점은 ‘포용성’이 한층 개선된 점이다. 이전의 시빅이 경쾌한 맛이 있었지만 다소 배려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의 올 뉴 시빅은 다르다. 노면에 대한 충격도 꽤 적극적으로 걸러내는 모습으로 탑승자가 느끼는 부담을 충분히 덜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운전자에게는 주행 및 노면 정보를 전달하는 그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올 뉴 시빅과의 드라이빙을 마친 후 조금 다른 눈빛으로 시빅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미 지난 1월의 출장으로 외형을 직접 봤던 만큼 외형에 대한 큰 감흥은 없지만 익사이팅 H를 품은 전면 디자인은 마치 고성능 스포츠 쿠페의 전면이라도 해도 무방할 와이드하면서도 역동적인 감성을 과시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쿠페의 유려한 실루엣과 근육질의 차체를 담은 측면과 9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그리고 올 뉴 시빅만의 확실한 시그니처 디자인이라 할 수 있는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가 적용된 후면 디자인도 최고의 디자인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참으로 혼다답고’ 또 개인적으로는 무척 마음에 드는 모습이었다.
먼저 대시보드의 경우 고급스러운 내장은 아니지만 콤팩트 세단으로서 많은 고민이 담긴 공간임을 느낄 수 있었고 뛰어난 시인성을 자랑하는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의 디스플레이 패널은 주행 정보는 물론이고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손쉽게 조작할 수 있어 사용에 대한 만족감을 무척 높게 만들었다.
끝으로 적재 공간도 매력적이다. 특히 트렁크 공간은 경쟁 모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질 정도다. 특히 트렁크 공간의 좌우폭을 넓게 확보한 점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어쩌면 시빅을 패밀리 세단으로도 사용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올 뉴 시빅을 시승하며 불안과 걱정은 어느새 씻은 듯 사라지고 ‘나쁘지 않은 선택’ 그리고 ‘선택하고 싶은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대로 만족하진 못한다. 아무래도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시빅’이 내심 마음에 걸리는 것 같다.
사실 시빅은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자랑한다. 먼저 바디 타입으로는 국내에 출시된 세단을 비롯해 콤팩트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해치백과 다이내믹한 감성이 강조된 쿠페가 준비되어 소비자들의 다양한 선호를 대응하고 있으며 퍼포먼스 부분에서는 175마력의 1.5L 터보 엔진과 이를 개선한 205마력의 시빅 Si 모델도 존재한다.
물론 국내 시장에 시빅의 모든 바리에이션이 들어오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건 너무 이기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시빅 유로를 국내에 출시했던 혼다 코리아의 과거와 시장 상황에 따라 해치백 혹은 Si 모델 등의 도입은 ‘한 번 정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좋은 점: 드라이빙을 위한 절묘한 조합 그리고 이로 인한 뛰어난 주행 성능
안좋은 점: 1.5L 터보 엔진의 부재, 3,060만원이 주는 심리적이 가격 장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