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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부터 지난 달까지 1년 반 동안 10차례에서 걸쳐 기준금리를 3%포인트 인상한 만큼 ‘금리 인상 파급 효과’를 지켜보자는 취지가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은은 3.5% 금리가 ‘긴축 수준’임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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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은 “금리 3.5% 긴축 수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3일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이데일리가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경제연구소 연구원 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이 금리 동결을 예상해 금리 동결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금통위는 1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통해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그간의 금리 인상 파급효과 등을 점검해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를 새로 넣는 등 금리 동결을 노크한 바 있다. 한은은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기준금리를 긴축적인 수준까지 인상했다”며 3.5% 금리가 긴축 수준임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물가상승률이 서서히 둔화될 것으로 보이는 반면 경기, 부동산 악화에 대한 고민은 커지고 있다. 작년 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비 마이너스(-) 0.4%로 2년 만에 역성장을 보였고 상반기 내내 경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수출은 1월 전년동월비 16.6%나 감소하는 등 넉 달째 감소하고 있다. 수출 경기를 좌우할 반도체 업황이 올 3분기 이후에나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개선 시점도 지연되고 있다. 1월 국내 카드 승인액은 8.7% 증가, 전월(10.8%)보다 증가세가 둔화하는 등 고금리·고물가에 소비도 위축 조짐이다.
정부가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펼치고 있지만 미분양 주택은 작년말 6만8107가구로 정부가 위험선이라고 언급한 6만2000가구를 훌쩍 뛰어넘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도 1월 96.1로 9개월째 하락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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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가
‘노랜딩(no landing·경기 착륙하지 않음)’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미국 경기가 계속해서 호조를 보일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최종금리 전망이 4.75~5.0%에서 한 달 만에 5.25~5.5%로 상향 조정됐다. 한미 금리 역전폭이 2%포인트로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 데다 연준의 강한 긴축이 달러 강세를 자극, 원·달러 환율이 두 달 만에 1300원을 돌파했다. 채권시장에선 환율이 1350원을 넘을 경우 한은 금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근본적인 고민도 있다. 금리를 역사상 가장 빠르게 올렸지만 물가가 잡혔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1년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두 달 연속 오르고 있는 데다 올 들어서도 햄버거 뿐 아니라 소주·맥주 가격이 상승하며 수요측 영향을 받는 외식·가공식품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뒤늦게서야 “공공요금 인상이 직접적인 물가 상승 효과 외에 여타 상품 및 서비스 가격에 대한 2차 파급 영향도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한은 금리 인상 기조가 무색하게 금융당국이 은행에 예금·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하면서 금리 인하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1년짜리 정기예금이 3%대로 내려왔다. 지난 달 13일 금리 인상 이후에도 국고채 3년물, 91일물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 등 시장금리가 한 때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등 금리 인하 기대가 커졌다. 실제로 2월 금리 전망CSI는 113으로 19포인트나 하락, 2020년 3월 팬데믹 이후 최대폭 하락세를 보였다.
즉, 한은의 금리 인상이 시장금리 등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쳐 실물경제까지 미치는 통로가 무너졌다는 얘기다. 이런 부분들이 물가상승을 또 다시 자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책 엇박자에 과잉 긴축 우려가 커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