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니진 입은 최은영 회장 "고정관념을 깨라"

서강대 개교 50주년 명사초청 특별강연
"회장이니까 하면 안된다 아니고 선입관 깨야"
"경영철학은 더 박스..더이상 아줌마 아니다"
  • 등록 2010-04-16 오후 2:41:05

    수정 2010-04-16 오후 2:41:05

▲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16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 이냐시오관에서 개교 50주년 특별강연 연사로 나섰다.


 
[이데일리 김국헌 기자] 16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 이냐시오관. 개교 50주년 특별강연이 열리는 강당에 학생 450여 명이 꽉 들어찼다.
 
서강대학교 법학부 왕상한 교수가 연사를 소개했다. 여성 연사는 검은 가죽재킷에 리폼한 서강대 티셔츠와 스키니진을 입고 강단에 올라섰다.

국내 최대 해운사이자 세계 8위 해운사 한진해운(117930)을 이끌고 있는 최은영 회장이었다. 그는 젊은 패션감각으로 학생들 사이에 탄성을 자아냈다.

"요즘 대학생들은 저녁에 무엇을 합니까? (일순간 침묵) 저는 출장 때문에 못 볼 때를 빼곤 `무한도전`(MBC 예능프로그램) 본방(재방송이 아닌 원래의 방송)을 사수합니다.
 
2년 전 신입사원 면접에서 무한도전 멤버들 가운데 한진해운 모델로 누가 적합한지를 물어봤습니다. 유재석, 박명수, 노홍철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오더군요. 
 
임원들이 저에게 "회장님 체면과 위신이 있기 때문에 신중한 질문을 하셔야 한다"고 건의하더군요. 그러나 회장이니까, 총장이니까, 이사장이니까 이런 건 안된다고 하지 말고, 고정관념과 선입관을 깨야 합니다."

해운업계 여걸로 알려진 최 회장은 소문대로 강단에서도 거침없었다.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학생들을 사로잡았다.

최 회장은 "내 경영철학은 더 박스(The Box)"라며 "고객이 원하는 것, 상상을 초월하는 것을 박스에 담아 전세계에 운반하는 것이 제 경영철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1950년대 말 컨테이너 박스가 발명돼 엄청난 물적 교류,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수송 혁명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현재 전세계 물동량의 95%가 선박을 통해 수송되고 있다는 것.

두 딸을 둔 최 회장은 학부모의 심정으로 "나는 1960년대 초에 태어난 더 박스 세대라고 할 수 있다"며 "여러분은 글로벌 세대인 만큼 생각을 넓히고 성인인 만큼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조언했다.

이어 그녀는 "자고 일어나 눈을 뜨는 순간에 세계는 움직이고, 하루에 1억3000만개의 컨테이너 박스가 쉴 새없이 움직인다"며 "여러분도 컨테이너 박스 안에 본인의 창의력과 열정, 꿈을 담아 어느 항구에 올려놓을지 인생계획을 세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인생에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제 인생을 20, 20, 20으로 나눠보면 처음 20년은 부모님 밑에 태어나 대학을 마칠 때까지 였어요. 그 이후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이를 낳고 남편을 내조한 평범한 아줌마의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21년을 살다가 한진해운 경영자로 살아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앞으로 또 20년이 더 온다면 양현재단 이사장으로서, 어린 환자들을 도우며 늙어가는 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난 2006년 11월 남편인 고(故) 조수호 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한진해운 경영에 참여하게 된 최 회장은 주부에서 여성 경영자로 변신하게 된 과정에서 느낀 소회도 털어놨다.

그녀는 "나이 50이 다 돼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지만 제 자신이 더이상 아줌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최 회장은 "지난 2007년 2월부터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때론 부담스럽지만 자동차 산업보다 외화벌이를 많이 하는 해운업에 종사하면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녀는 여학생들에게 "해외에서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여자니까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여자로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장애가 아니라 여성 자체가 경쟁력이 되고 있단 점을 아시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해운업계 여성 임원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고, 여성 선장이 꼭 나와줬으면 한다"며 "한진해운 국내 직원 850명 가운데 200명이 여성"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진해운 경영에 참여한 지 약 2년 만에 대표이사를 맡은 최 회장은 그 이듬해인 작년 12월 한진해운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시켰고, 경영권을 안정시켰다. 대표이사 취임 2년차인 올해 경기침체를 털고 영업이익 흑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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