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은 韓정부가 국운을 걸었던 산업이었다"

권석훈 한진해운 사사편찬팀장 인터뷰
한진해운, 대한해운공사 시절 담아 60년사 발간
  • 등록 2010-01-28 오전 10:58:55

    수정 2010-01-28 오후 1:38:01

[이데일리 김국헌 기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가가 정책적으로 설립한 최초의 국책회사가 대한해운공사(한진해운 전신)였단 사실을 아십니까? 한국 증권거래소에 처음으로 상장됐던 종목도 대한해운공사였습니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가 가장 시급하게 육성하려고 했던 산업은 해운업이었습니다."

한진해운(117930) 사사편찬팀을 이끌고 있는 권석훈 팀장은 한국 해운업의 태동기를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진해운이 지난 20일 한진해운 60년사를 발간했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기업이 적지 않지만 한진해운의 60년사 발간은 한국 해운업계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한국 해운산업의 역사가 한 기업의 사사(社史)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 권석훈 한진해운 사사편찬팀 팀장

권 팀장은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광복 이후 3면이 바다이고 외국 원조 없이 살 수 없는 현실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해운이 한국에 가장 시급한 산업이라고 인식하고 대한해운공사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한국기업 조선우선社의 선박 소유권을 두고 연합군과 미 군사정부의 해석이 달랐던 탓에 한국은 고장난 선박 1척으로 해운산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949년 12월23일 교통부가 운영하던 부영선박과 적산(敵産)인 조선우선을 합병해 대한해운공사를 설립했다. 한진그룹이 나중에 민영화된 대한해운공사를 인수하면서, 한진해운은 대한해운공사의 명맥을 잇는 해운 종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권 팀장은 "1950년대에 한국 수출 규모가 수백만달러에 불과했지만 한국 정부는 보유하고 있던 외화 가운데 600만달러를 들여 최우선적으로 화물선 6척을 도입했다"며 "한국은행이 지급보증서를 발행해도 차입을 할 수 없어 현금을 들고 가서 선박을 사야 했다"고 전했다.

60년사 이면에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았다. 최초의 근대시 `불놀이`를 쓴 시인 주요한은 대한해운공사 사장이었고, `목마와 숙녀`를 쓴 시인 박인환도 대한해운공사 직원이었다.

영문학자이기도 했던 주요한 사장은 영어에 능통해 대한해운공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는 지난 1974년 대한해운공사 사보 `해공` 1월호에 "이런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의 힘"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대한해운공사 영업보고서에는 한국 근현대사가 담겨 있었다. 권 팀장은 "1950년 영업보고서에는 6.25전쟁으로 서울에 있는 한진해운 본사와 인천지점이 업무를 못하게 돼 부산지점이 전사를 총괄하게 됐단 내용도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재미있는 것은 50년 전이나 지금이 영업보고서에선 운임 경쟁은 치열하고 유가(당시 석탄가)는 폭등하고 환율은 급변해 경영 환경이 어렵다고 서술하고 있더라"라고 웃음지었다.

▲ 사사편찬팀이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 사무실에서 사료와 자료를 살펴보고 토론하고 있다. 권석훈 한진해운 사사편찬팀 팀장(왼쪽 3번째)을 포함한 4명은 사(史)와 자료 2권으로 구성된 60년사를 영문판 약사로 정리한 후 팀을 해체하게 된다.


지난 2007년 10월 중순부터 사사 편찬작업에 착수한 사사편찬팀의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공사가 민영화되고, 다시 한진그룹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60년간의 기록이 유실되는 것은 자명한 일.

권 팀장은 "3~4년의 역사는 책상에 있고, 10년의 역사는 사무실 책장에 있지만 15년 넘는 역사는 어느 팀이나 부서를 막론하고 폐기된 경우가 많았다"며 "기록이 없던 시절은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대부분은 기록물에 의존했다"고 말했다.

특히 대한해운공사 직원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사보 `해공`을 보내줬을 때는 기록이 없어 고생했던 편찬팀에게 한 줄기 빛이 됐다. 그는 "자료를 못 찾으면 빼자는 말도 나왔지만 없으면 칸을 비우지 통째로 빼는 것은 안된단 생각에 사명감을 가지고 일일이 찾아다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어려움은 모은 자료와 사료를 60년사로 압축해서 정리하는 것이었다. 권 팀장은 "일본 해운업체들의 사사를 봤지만 기록 성격이 강했고, 국내 기업 사사들은 창업자가 기업을 일으킨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며 "대한해운공사는 한국 해운업의 시발점이기 때문에 기업사적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언급했다.
 
60년사를 정리하면서 권 팀장은 어느새 자부심 강한 해운인으로 달라져 있었다. 그는 "한국 해운업계에 통사는 드물다"며 "한진해운은 해운업계 종가이자 뿌리란 사명감을 가지고 2년 넘는 기간 동안 조직과 인원을 투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권 팀장은 "한진해운이 현재 글로벌 해운사로 도약할 수 있었던 DNA는 60년 역사에 담겨 있다"며 "대한해운공사 시절부터 무에서 유를 만들었던 개척정신과 한진그룹의 육해공 물류 노하우를 접목해 경영을 선진화한 것이 그 DNA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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