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한국 최초의 노벨 화학상 수상이 무산된 가운데 이웃나라 일본은 올해 노벨 물리학상에 일본인 교수 3명이 공동 선정되는 등 역대 22명(미국 국적 과학자 2명 포함)이 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거머쥐었다. 분야별로는 물리학상이 이번 수상자를 포함해 10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2명이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한국과는 천양지차다.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의 밑받침이 되는 기초 과학 기술은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과 현장 중심의 연구 환경 그리고 정·재계의 전폭적인 지원에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9일 보도했다.
‘장인정신’..日경제 이끄는 원동력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60) 미국 캘리포니아주 UC샌타바버라 교수는 1979년 일본 도쿠시마(德島)현 ‘니치아화학공업’의 평범한 연구원으로 출발했다. 니치아화학공업은 TV 브라운관 등에 사용되는 형광체를 제조하는 업체로 직원도 200명 남짓이었다.
변변치 않은 시설과 지원 속에서 나카무라 교수는 특유의 장인정신을 발휘해 10년 가까이 청색 LED(발광다이오드) 개발에만 몰두했다. 회사는 수익성이 기대되지 않는다며 ‘연구 중지’를 통보했지만 그는 이에 응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해 결국 1993년 청색 LED 실용화에 성공했다.
이 같은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은 노벨상뿐만 아니라 일본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볼트’와 ‘너트’ 등 부품소재만을 다루는 일본 중간재 기업의 2012년 무역수지는 1370억달러(약 147조원)로 2007년 1160억달러에서 18% 넘게 성장했다.
SMBC닛코증권에 따르면 올 3월에 끝난 지난 회계연도에 이들 일본 기업들은 전년 대비 69% 증가한 25조3000억엔(약 251조5251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가파른 엔화약세 흐름에도 불구하고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전자업체 삼총사의 실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걸 고려하면 이들 부품소재 업체들의 실적은 괄목할만한 성과다.
현장 중심 연구환경..연구 흐름 잡는다
과학자들은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통해 개발 중인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현실에 적용시킬 방법을 고민해왔다.
아카사키 교수는 기업과 연구소를 넘나들며 청색 LED 연구 토대를 쌓았다. 1952년 교토(京都)대 이학부를 졸업한 그는 고베공업(현 후지쓰)에서 7년간 일하다 나고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 연구실장을 역임했다.
일본의 현장 중심 연구 환경 덕택에 지난 2002년 일본에서는 박사학위도 없는 평범한 학사 출신 민간 기업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가 노벨 화학상을 받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정·재계 아낌없는 ‘총알’..노벨상 뒷받침
정·재계의 아낌없는 지원도 일본이 노벨상 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2050년까지 노벨 과학상 수상자 30명을 배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초과학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의 한 해 연구·개발(R&D) 비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인 2000억달러(약 215조원) 규모로 한국과 비교해 4배 이상 크다. 이에 따라 일본 과학자들은 7~10년 동안 연구비 걱정 없이 연구를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또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도 요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