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의 근거는 이렇다.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집값은 추가 하락이 점쳐지고 있어서 소비 심리가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소비 둔화는 생산 활동 저하를 일으키고 결국 당분간 경제 역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논리다.
많은 전문가들이 작년 연말을 전후로 나타난 증시 반등을 베어마켓 랠리(약세장에서의 일시적 반등)로 보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물론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후퇴(recession)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고용, 소비, 산업생산, 주택가격 등 경기를 판단하는 지표들은 일제히 내림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관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 일자리는 줄고 집값은 떨어지고
경기후퇴로 인해 이익이 감소한 기업들이 비용절감에 나섬에 따라 실직자가 늘어나고 있다. 계속되는 고용 악화는 경기가 쉽게 반등하기 어려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2월 미국의 비농업부문 고용은 52만4000명 감소했다. 이로써 비농업부문 고용은 12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했다. 지난해 무려 26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는 지난 1945년 2차 대전으로 경제가 피폐해졌던 이후 최대치다. 최근 4개월 동안에만 190만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작년 12월 7.2%를 기록한 실업률이 올 연말 두자릿수로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소장을 지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실업률은 10% 위로 상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후퇴 속에 고용이 감소하면서 위기의 진원지인 주택시장의 한파는 회복되기는 커녕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견조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상업용 부동산 시장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 채권시장의 3분의1 가까이 차지하는 상업용모기지담보채권(CMBS) 체납률은 1.2%까지 상승, 석달 사이 두배 가까운 오름세를 탔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실업률은 2010년경 9%에 달하게 되고, 집값은 이미 25% 하락한 데 이어 2010년 바닥을 칠 때까지 15% 가량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과 주택시장 모두 올해 안에 회복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 소비 둔화에 생산 활동 위축
실업자가 늘어나고 집값이 떨어지면서 소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경기 회복은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는 점에서 소비 둔화는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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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닥은 아니다. 아직은 소비가 조만간 회복될 것이란 단서를 찾기 어렵다. 지난해 S&P500 지수는 38% 하락했고,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한 미국 가계의 자산 손실은 지금까지 약 4조달러로 추정된다. 게다가 실직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역(逆) 부의 효과로 인한 소비가 둔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루비니 교수는 8일 포브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역 부의 효과로 인해 개인 소비는 올해에도 가파르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며 "역 부의 효과가 달러당 6센트일 경우 미국의 개인 소비는 5000억달러에 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용경색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점도 소비를 둔화시키는 요인이다. 라이보(Libor) 금리가 최근 떨어지고는 있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대출을 꺼리고 있다. 연준으로부터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받은 은행들이 이를 풀지 않는다면 소비는 물론 경기 회복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존 실비아 와코비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의 침체는 이제 절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며 "특히 자동차의 경우 회복이 되기까지 1년이 꼬박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부양책 효과는 과연?
경기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여전히 힘을 과시하면서 미국 경제는 올해 역성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올해 GDP 증가율이 -0.9%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정부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폭적인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내놓을 경기부양책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규모는 7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작년부터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에 투입한 돈은 총 8조달러에 달하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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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적절한 조치가 없다면 경기후퇴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지적이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4일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 회의에서 "정부의 정책은 금융부문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줬을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며 대규모 경기부양책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만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지출 확대는 재정적자 확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계론도 만만치 않다. 또한 오바마의 `감세` 위주 경기부양책의 효과에 대한 의문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동안 실시된 감세정책 중 절반만이 비용 효율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제 위기가 이 지경까지 오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위기는 새로운 위기를 싹티우며 계속해서 진화하며 전염돼 왔다. 그런 면에서 올해 미국 경제에 또 어떤 사건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민간 수요를 되살리지 못하고, 경기부양책에 실패한다면 과거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물론 반대로 예상보다 빠른 회복이 가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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