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과 공조관계를 과시하던 재정경제부가 발끈했고 채권 투자자들은 큰 손실로 울상을 지었다. 돈이 필요한 기업들은 차입을 미루고 한계상황에 처한 중소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겁없이 부동산에 뛰어들었던 투자자들은 정부의 8·31 부동산 대책 이후 또 한 번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금리인상에 의문부호를 달며 `물타기`에 나섰다.
바야흐로 금리인상에 대한 저항이 여기저기서 본격화할 조짐이다.
◇재경부 "금리인상? 한은 총재 개인의견일 뿐"
박승 한은 총재는 전날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이제 통화정책의 점진적인 방향조정을 검토해야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이후 계속된 금리인하 행진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박 총재는 "경기가 기대했던 대로 간다면 다음달 금리를 올리겠다"며 시기까지 제시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재정경제부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콜금리 동결소식이 전해진 직후 "전적으로 금통위 의견을 존중한다"며 표정관리에 바빴던 재경부는 박 총재의 금리인상 발언이 알려지자 "경기상황을 고려했는지 의문스럽다", "박 총재 혼자만의 입장일 뿐"이라는 식으로 맹공을 퍼부었다.
◇채권시장, "시그널 있었나" 비난
돈값인 금리를 다루는 채권시장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박 총재 발언이 지나치게 직설적인 것 아니냐는 의견에서부터 통화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며 노골적인 불신을 나타내는 발언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시그널을 줬다고 하는데 그것을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며 "말 한 마디로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기업, 채권발행 연기..中企 벼랑끝 위기
금리인상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금리가 급등하자 예정됐던 채권발행을 연기하는 등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신용도가 뛰어난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철도공사마저 이날 예정된 채권입찰을 갑작스레 연기했다.
기술력은 부족하고 중국의 저가공세로 가격경쟁력도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말 그대로 벼랑끝에 몰렸다. 정부나 한은의 정책이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에 맞춰져있어 이들 기업은 당국의 자금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박승 한은 총재마저 "경쟁력 없는 곳은 퇴출될 수밖에 없다"며 밑빠진 독의 물붓기 식의 대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부동산 투자자도 반발
정부의 8·31 부동산 대책으로 숨죽이고 있는 부동산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주택담보대출비중이 큰 상황에서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담보가치가 하락하고 상환부담이 늘어난다.
소폭의 금리인상으로 집값을 잡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있지만, 일단 한은이 긴축기조로 돌아설 경우 이에 대한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계 "한은 금리 못올린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박 총재의 금리인상 발언에도 불구하고 연내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며 심지어 내년 하반기에나 금리인상이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HSBC는 "긴축에 관한 논쟁은 집값 오름세와 유가상승, 2분기 경제성장률 반등 등으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당국은 부동산 문제를 진정시키기 위한 대책을 취해왔고 유가는 물가보다 소비자 경기심리에 더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연내 콜금리 인상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한 술 더 떠 모간스탠리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한은이 금리를 인상하지 못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모간스탠리는 "한국 경제는 고유가와 글로벌 경기하강 위험에 직면해있다"며 "경기회복 신호 없이 완화적인 정책을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도 한국 경제 회복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성급한 조치가 될 것이라며 한은의 금리인상 움직임에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한은 "거부감 있어도 감수해야"
물가상승이 표면화됐다면 경제주체들의 거부감이 덜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한다.
한은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주체들의 반발에 밀려 제때 통화정책을 펴지못하면 국민경제에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뒤로 물러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은 관계자는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는 물가와 경기, 자원배분의 왜곡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모든 국민들이 100%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펴기는 쉽지 않으며 반발이 있다하더라도 어떤 게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