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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州) 엘코에서 11·6 중간선거 지원유세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모스크바가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을 위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위반했다는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INF협약은 지난 1987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이다.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사거리 500~5500km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고, 기존 핵무기를 전량 폐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대표적인 냉전 종식 협정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이 새로운 협정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협정을 파기하겠다”며 “그런 다음 우리도 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무기를 만들고 있는데 우리만 조약을 지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기 “모스크바와 새로운 무기 협정을 체결해 무기를 상당히 줄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를 위반하고 지속적으로 무기를 개발하자, 똑같이 무기를 늘려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이에 대처하려고 했으나 협정이 걸림돌로 작용,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을 파기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장기적으로 중국이 개발한 중거리미사일에 대응할 준비를 이미 시작했으며, 과도기적으로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등 잠수함 등에서 발사하던 기존 미사일을 지상발사형으로 개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미사일은 일본이나 괌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수주 안에 조약 파기에 공식 서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오는 22~23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나 미국의 협정 파기 방침을 직접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작년 2월 러시아가 미국의 항의에도 미사일 배치를 강행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동안 미국 정보보고서에서 러시아 순항 미사일을 ‘SSC-X-8’로 표기해 왔으나, 더이상 ‘X’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이는 미사일이 개발단계를 지나 실전 배치된 상태라는 뜻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보기 위한 러시아의 도발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미국의 협정 탈퇴가 현실화될 경우 미국, 러시아, 중국의 핵개발 경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신(新) 냉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을 비롯해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사태, 이란 핵협정 등 각종 현안에서 양국이 충돌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수 있어서다.
러시아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파기와 관련,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으나 언론 등을 통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알렉세이 푸시코프 러시아 상원의원은 “미국이 탈퇴하면 세계의 전략적 안정성이 다시 타격을 입게 된다. 2001년 미국의 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ABM) 탈퇴가 첫 타격이었다”면서 “세계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냉전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란츠 클린세비치 상원의원도 “미국이 러시아를 군비경쟁에 끌어들이려 한다”며 “러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새로운, 위험한 난제가 생겨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를 지냈던 스티븐 파이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모스크바는 아무런 제약 없이 SSC-8 순항미사일과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마음껏 배치할 것”이라며, 조약 파기가 되레 유럽의 안보 위험을 증가시켜 각국의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