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 기조 몰랐나…자금난 대책 '컨트롤 타워 부재' 논란

레고랜드 사태 한달 지나서야 비상 회의 열어 대응
경제 수장들 수차례 만나지만 “불안해 말라” 강조 뿐
과거 대통령 주재 '서별관 회의'와도 비교돼
민주당 비판에 정쟁 비화, 추가 위험 막을 대책 필요
  • 등록 2022-10-23 오후 5:46:18

    수정 2022-10-23 오후 9:04:01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최근 회사채·단기자금시장 변동성이 높아지자 정부가 뒤늦게 비상 회의를 열어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등 대책을 내놨다. 잇단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자금시장 어려움이 예상됐음에도 적기 대책을 내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당국 수장들이 연이어 회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비상 상황에 ‘컨트롤타워’를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쟁 등 경제 당국 수장들은 취임 후 수차례 만나 거시경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지만 적기에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6월 16일, 7월 24일, 9월 5일, 9월 22일 각각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 (사진=기재부)


23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이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경제 당국 수장들은 지난달 22일 이후 한달여만에 다시 만나 금융시장 안정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새 정부 들어 추 부총리와 이 총재 등은 수시로 공식·비공식 회담을 통해 거시·금융경제에 대해 의견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한 금융시장 대응은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대응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한은도 지난 7월과 10월 기준금리를 50bp(1bp=0.01%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두 차례나 실시한 바 있다. 이미 상반기부터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긴축 기조로 채권 등 금융시장의 경색 우려가 나왔지만 정부는 여러 차례 열린 회의에서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75bp 올린 지난달에도 추 부총리는 이 총재와 만났지만 “과거 금융위기에 비해 대외건전성 지표들은 양호해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말부터 불거진 레고랜드 사태가 불똥이 튀면서 회사채 발행은 급감하는 등 기업들의 자금 조달 어려움이 이어졌다.

문제는 이미 시장에서 대책 마련 요구가 이어졌지만 적기 대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레고랜드 사태가 한 달 가량 지난 20일에서야 “최근 단기 자금시장 변동성 확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채권안정펀드 여유 재원 1조6000억원을 통해 신속한 매입을 재개하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이날 회의에서도 정책 대응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고 이에 대해 추 부총리는 “시장의 평가를 잘 유념하겠다”고 답했다.

윤 정부 일련의 정책 대응 과정을 보면 과거 경제 당국자들이 모여 대책을 찾던 ‘서별관 회의’와도 비교가 된다는 의견이 있다.

김영상 정부 때 청와대 서쪽 작은 별관에서 시작한 서별관회의는 청와대·정부 주요 인사들이 비공식적으로 현안을 논의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매주 화요일 열려 금융위기 대응이나 부동산 대책 등 굵직한 의제가 올라오기도 했다.

경제 당국 수장들이 ‘밀실 회의’를 지양하고 공개적인 모임을 자주 열고 있지만 정작 비상 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게 업계 우려다.

경제 위기 대응은 정쟁으로도 비화할 조짐이다. 더불어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는 이날 긴급 성명서를 통해 레고랜드 지급 보증을 거부했던 김진태 강원도지사를 규탄하며 “시장이 발작을 일으킨 후에야 늑장·뒷북·찔끔 대책을 내놨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가 내놓은 채안펀드나 은행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유예, 추가 캐피탈콜 조치는 늦었을 뿐 아니라 시중은행의 은행채 발행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대응해 추가 위험이 전개되지 않도록 유동성 공급 조치가 필요했던 상황”이라며 “정부는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 등이 유동성을 쓸어가는 것을 맡기 위해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채권 발행 압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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