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달의 세상보기]아! 그리스, 어디로 가나

  • 등록 2012-05-30 오전 11:02:31

    수정 2012-05-30 오전 11:02:31

[김홍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장] 유로존 위기에 다시 불이 붙었다. 그리스인들은 재정긴축이라는 구제금융 조건을 수용하면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연일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급기야는 긴축반대, 구제금융 재협상을 주장하며 벼랑끝 전술을 펴고 있는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이 6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이 충격과 공포에 떨고 있다.

재정긴축과 경기침체로 거리에 내몰린 그리스인들에게 급진좌파연합의 주장은 천사의 목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미 1997년 구제금융의 혹독한 조건을 경험했다. 당시 대다수 국민들은 왜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참으로 많이 억울해 했다. 한국경제의 취약함을 비웃는 외신보도에 자존심이 구겨지고 울분도 삼켜야 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168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기업과 금융부문에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빚을 갚고 다시 일어서자면 그 길밖에 없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3년이나 앞당겨 이뤄냈다.

그리스는 이미 1, 2차 구제금융을 통해 2500억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받았다. 또한 국가채무도 1050억유로나 탕감 받았다. 불과 195억달러의 자금을 지원받고 단 한 푼의 채무도 탕감 받지 못한 한국에 비하면 엄청난 특혜다. 게다가 구제금융의 조건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공무원 1만5000명을 감원하고 증세 등으로 330억유로를 확보하는 재정긴축 조치를 하기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리스인들은 이마저도 못 받아들이겠다고 국제사회를 볼모로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위기를 초래한 배경을 비교해 보자. 두 나라 다 국민경제가 감당하지 못할 빚 때문에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은 기업과 금융부문에 168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누군가가 그만큼의 돈을 써버렸기에 펑크가 난 것이다. 누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다 썼는가. 대부분의 돈은 이들 기업이 돈을 빌려 기업활동을 하다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동안 그 기업은 물론 수많은 거래처의 근로자 등 많은 사람들의 정당한 소득으로 배분되었다. 허투루 쓴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해보려하다 실패했을 뿐이다. 사업실패가 모아진데다 한 번에 해결하려다 보니 그 규모가 커진 것이다.

그리스는 어떤가. 먼저 빚을 내어 흥청망청 쓰다가 감당 못할 빚을 짊어진 주체가 정부라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기업을 일으키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써버렸다. 2시 반이면 퇴근하는 공무원의 임금이 민간의 3배가 넘고 노동인구의 4분의 1이 공무원인 나라,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을 시켜주고 세계 최고 수준의 연금제도를 가진 복지천국, 이런 나라에서 그리스인들은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잘 살아왔다. 한마디로 빚내서 소 잡아먹은 꼴이다.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한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시장경제하에서 가계나 기업은 물론 정부까지도 금융을 통해 부채를 조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적당한 수준의 부채가 생산적인 활동에 투입된다면 레버리지효과를 통해 소득을 증대시키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미래의 예상되는 소득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부채에 의존하거나 그러한 부채를 소비에 써버린다면 이는 분명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대로 그리스는 다 써버렸다. 살려내야 할 기업조차 없다. 짧은 축제 뒤에 남은 건 긴 고통뿐이다. 남의 돈으로 축제를 즐긴 그리스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 때문에 지구촌의 선량한 이웃들이 함께 고통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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