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우리은행 하반기 경영전략회의가 열린 지난 23일 일산 킨텍스(KINTEX) 행사장.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임직원 1800여명에게 하반기 전략을 설명하다말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듣고 싶다"며 직원 2명을 무대로 불러세웠다. 갑작스러운 호명에 어리둥절했던 이정숙 신림로지점 대리(33)와 장선영 발안지점 부지점장(52)은 이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전혀 예상도 못했고…."
이정숙 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당시 무대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듣던 이 행장은 "이왕 나왔으니 선물로 냉장고라도 줘야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못가져왔다. 대신 이것이라도 드리겠다"며 뜬금없이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펼쳐보니 승진사령장이었다.
| ▲ 우리은행 이정숙 대리. 은행 내에선 "청약통장의 달인"으로 불린다. 뛰어난 영업실적을 인정받아 우리은행 첫 특별승진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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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창구업무만 해야했던 이 씨는 그날로 대출이나 외환 등 영업점의 모든 업무를 다룰 수 있는 일반직군으로 전환됐다. 당연히 급여도 올라간다.
우리은행 내에서 '청약통장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뛰어난 고객유치 실력을 보였음에도 텔러행원에 머물러야했던 그녀에게 가장 큰 선물이었던 셈이다. 이 씨는 3년전 이른바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청약저축종합통장을 두 달만에 1000건이나 유치해 국토해양부장관의 표창까지 받았다.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 씨는 "몇날 며칠을 울었어요. 이젠 텔러업무 뿐 아니라 다른 직군의 업무도 할 수 있게 됐으니 공부를 더 해볼 생각입니다"라며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이날 발안지점 부지점장에서 광교도청역지점장으로 승진한 장선영 씨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했다. 장 씨는 30년 넘게 은행에서 근무했지만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막혀 남자직원들보다 승진이 더뎠다. 본인의 영업실적이 좋았음에도 지점의 성과가 낮아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승진을 계기로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주게 된 것에 고마워했다. 장 씨는 "항상 적극적인 자세로 일을 즐겁게 하면 성과가 돌아올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 ▲ 장선영 부지점장(왼쪽)도 이순우 행장(오른쪽)이 주는 "두루마리" 선물을 받았다. 이순우 행장은 "영업을 잘하면 누구라도 승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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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인사상 승진이 아닌 특별승진은 우리은행 창립 이후 처음이다. 영업현장을 강조하는 이순우 우리은행장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그는 "정말 잘하는 직원을 알아주는게 조직의 역할이고 최고경영자(CEO)가 해야할 일 아니겠냐"며 "여자라고, 계약직이라고 불이익을 받던 것을 고쳐 영업을 잘하면 누구라도 승진할 수 있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 행장은 지난 3월 취임식에서 직원들에게 '즐거운 일터'를 약속했다.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은행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번 특별승진도 그 일환으로 이뤄졌다. 그는 "행장이 고객중심이라고 밤낮 외쳐도 직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면서 "흥이 나서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