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Cafe)나의 주식브로커는 하나님

  • 등록 2005-08-19 오후 3:52:34

    수정 2005-08-19 오후 3:52:34

[이데일리 김대환 칼럼니스트] 여름 휴가철이 다 끝나기는 했지만, 혹 늦은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해변가에 누워서 가볍게 읽을 만한 소설 두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 하바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였던 케네스 갈브레이드가 쓴 ‘테뉴어 받은 교수’라는 소설은주식시장의 비밀을 찾아낸 한 교수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에 나오는 ‘테뉴어’라는 말은 정기적으로 재임용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는 교수직을 일컫는 말이다. 대학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게 조교수나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되고 나면 더 이상의 재임용 심사 없이 평생 고용이 보장되곤 한다.

테뉴어를 받고 나서야 교수들은 연구실적에 대한 부담 없이 자신들이 정말로 원하는 연구에 모든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갈브레이드의 소설 속 주인공은 테뉴어를 받기 전까지는 냉장고 가격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다가, 테뉴어를 받은 후 여유가 좀 생기고 나서는 냉장고 가격에 관한 이론을 주식시장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연구 후 이 교수는 냉장고 가격에 관한 이론을 조금 수정하면 주가를 예측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교수가 주가 예측 이론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다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이 교수의 투자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 교수가 주식 A를 사면 많은 투자자들도 주식 A를 사 들였고, 이 교수가 주식 B를 팔면 많은 투자자들이 좇아서 주식 B를 팔아 치웠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상황에서는 주가 예측 이론이 맞건 틀리건 상관없이 이 교수는 ‘투자의 귀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교수가 주식 A를 사자마자 주식 A에 대한 매도가 갑자기 늘어나기 때문에 A의 주가는 치솟게 되고, 이 교수가 주식 B를 팔자마자 주식 B에 대한 매수가 갑자기 늘어나 B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게 된다. 즉 이 교수는 항상 낮게 사서 높게 파는 ‘천재성’을 지니게 된 거다.

교수가 엄청난 투자 수익을 올리자 미 정부의 증권거래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했고, 결국 교수에게 주가 조작 혐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가가 오를 것이란 걸 알고 남들보다 먼저 사고, 주가가 내릴 것이란 걸 알고 남들보다 먼저 팔았다는 혐의다. 증권가에서 쓰이는 용어로 이 교수는 ‘프런트 런닝’을 한 것에 해당된다.

소설은 교수가 투자이익금을 전부 사회에 환원하고 주식투자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정부와 합의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경제학자가 쓴 소설이라 그런지 결말이 좀 밋밋하기는 하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컬럼니스트인 크리스토퍼 버클리와 존 티어니가 쓴 ‘나의 주식브로커는 하나님’은 수도승이 된 주식브로커의 이야기다.

고객의 돈을 마음대로 투자하다가 주가 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고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 주인공은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된다. 그런데 수도원은 기부금이 줄어들어 큰 재정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전직 주식브로커인 주인공은 수도원의 재정상태를 개선시킬 것을 주문 받는다.

이 때 수도승의 규율을 따라 성경을 읽던 주인공은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사실은 신이 내려 준 주식 힌트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가령 사과가 떨어진다는 구절이 나오면 애플 컴퓨터의 주가가 떨어지는 식이다.

성경에서 얻은 주식 힌트로 주인공은 큰 돈을 벌게 되고 수도원도 부유해진다. 하지만 자금이 넘치던 수도원은 와인 판매라는 무리한 투자를 하다가 다시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되고, 하늘에서 내려준 주식 힌트는 더 이상 작용하지 않게 된다. 신의 저주를 받은 것이다.

이 소설은 수도원이 와인 사업을 접고 수도원의 성격에 보다 부합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끝난다. 수도원의 새로운 사업은 일종의 ‘최고경영자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재무관리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이 두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써 오라고 했더니 반응이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학생들은 좀 `오버`해서 이 소설을 읽고 주식시장의 작동에 관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종교적인 학생들은 신에 대한 불경이라며 읽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그냥 재미있는 책 소개해 줘서 잘 읽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어쨌든 휴가지에서도 주식시장으로부터 마음을 뗄 수 없는 ‘중독성 투자자’들은 해변가에 누워 휴대폰으로 주가를 확인하는 대신에 소설이라도 읽으며 마음을 좀 식히는 것이 휴가의 본래 취지에도 맞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그냥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며 잠깐 낮잠을 자는 것도 아주 나쁘지는 않을 듯 싶다.

[김대환 불가리아 아메리칸대학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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