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국제유가 급락이 베테랑 전문 투자자의 발목도 단단히 잡고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의 마스터합작회사(MLP) 아이칸엔터프라이즈의 가치가 3년래 최저점까지 떨어졌다.
9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아이칸엔터프라이즈 가치가 2013년 이후 13.39% 급락했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17.55%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시장 평균도 못 미친 셈이다.
| 아이칸엔터프라이즈와 S&P의 3년래 주가 추이(붉은색:아이칸엔터프라이즈, 푸른색:S&P, 출처:FT, 톰슨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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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아이칸은 명실공히 세계적인 투자자다. 1961년 뉴욕의 드레퓌스 앤 컴퍼니(Dreyfus & Company)에 입사하며 월가에 발을 디딘 그는 저평가된 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비싼 값에 되파는 방식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엔 기업 지분을 사들여 회사를 분할하거나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는 등 행동주의 투자자로 거듭났다.
그러나 그도 유가 하락으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 지난해 3월 그는 유가가 더이상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셰일업체 체사피크에너지 지분을 추가 매입한 바 있다. 현재 그의 지분은 11%에 이른다.
그러나 유가가 연일 배럴당 30달러 아래에서 맴돌며 체사피크 에너지는 경영난에 빠졌다. 게다가 지난 7일에는 파산보호신청을 했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왔다. 체사피크는 파산 신청을 한 적이 없다고 즉각 공시했지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등급을 CCC-로 강등했다. 체사피크로 인해 그가 본 손실은 11억달러에 이른다.
셰니에르에너지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칸은 지난해 여름 셰니에르이 지분을 13.8%까지 확대했지만 현재 셰니에르 주가는 아이칸이 샀던 당시보다 60% 이상 하락했다.
결국 이같은 풍파 속에 9일 아이칸 엔터프라이즈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91% 내린 47.1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3년보다 무려 68% 내린 수준이다. 그나마도 유가와 관계없는 카지노나 자동차부품업체, 철도차량 제조업체 등이 버텨준 결과다.
게다가 유가 하락 전망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8일 사우디아라비아와 베네수엘라의 감산 합의가 불발되며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1.2달러(3.9%) 내린 26.69달러를 기록했다. 감산을 기대하며 유가 반등에 베팅하던 이들도 점점 희망을 거둬들이고 있다. 스위스 악스포 트레이딩의 앤디 솜머 애널리스트는 “OPEC과 러시아가 감산 합의에 돌입하긴 힘들 것이고 이제 시장도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당분간 글로벌 원유시장의 공급과잉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아이칸엔터프라이즈는 이달 중 지난해 실적 등 성과를 투자자들에게 보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