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경영)⑤갈등관리 흑묘백묘로는 안된다

공공갈등 예방 및 해결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해야
  • 등록 2006-07-26 오후 1:43:15

    수정 2006-07-27 오후 1:37:20

▲ 박재묵 교수
[이데일리] 1989년 경북 동해안지역에서 시작돼 약 15년간 전국 여러 지역에서 강도 높은 갈등을 유발해온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입지 선정이 드디어 작년에 매듭지어졌다.

정부가 논란의 핵심 요소로 작용해온 고준위폐기물, 즉 사용후 핵연료를 처분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주민투표 등의 새로운 입지 선정 절차를 도입한 것이 주민의 수용도를 높이는 데 주효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역시 오래 끌어온 새만금간척사업 및 경부고속철도 천성산구간 터널공사를 둘러싼 갈등도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주민과 환경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로써 2003년 대통령이 직접 조계종 종정을 방문해 양해를 구함으로써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한산구간 터널공사를 둘러싼 갈등이 해결된 후, 남아 있던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환경갈등의 상당수가 진정 국면에 들어가게 됐다. 물론 한탄강댐 갈등이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고, 국책사업 관련 갈등은 아니지만 평택미군기지 이전과 한미 FTA협상을 둘러싼 갈등이 새롭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말이다.

대형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대부분이 정부 측이 바라는 방향으로 귀결됨에 따라 환경단체들은 깊은 좌절감에 빠졌지만, 또 다른 갈등 당사자인 정부 부처는 안도감과 함께 해방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부처에서는 갈등 해결에 공로가 있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포상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 사정이 다르긴 해도 아직은 정부가 샴페인을 터뜨릴 단계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특히 갈등관리자로서의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이들 갈등이 비록 진정 내지 해결 국면에 들어갔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국책사업 수행방식이나 갈등관리방식의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점에서 이럭저럭 버티다 보니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muddle through) 형국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의 경우에는 그나마 입지 선정 정책의 변화가 갈등 해결에 일정 수준 기여했다고 볼 수 있지만,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갈등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다른 두 가지 갈등의 경우에는 사실상 갈등이 자연 수명을 다한 후에 퇴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러한 사정은 앞으로 동일한 사안을 둘러싼 갈등이 재발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유사한 쟁점을 둘러싼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서둘러야 할 일은 갈등관리자의 입장에서 공공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지속위와 국무조정실이 공공갈등관리시스템 구축 작업을 강도 높게 추진해 왔으나 올해 들어서는 눈에 띄는 활동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부로서는 국회에 제출해 놓은 `공공기관의 갈등관리를 위한 법률(안)`이 제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지만,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국회 설득에 나서지 않는 한 다가오는 정기국회에서도 법안이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법률 제정 없이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부처들이 갈등 완화를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관련 공무원을 교육하는 데 나서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 노력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라도 역시 법적 근거 확보가 필요하다.

아울러 공공갈등관리시스템 구축에 있어 예방 절차를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대형국책사업과 관련해 기왕 도입된 예비타당성조사와 전략환경평가가 보다 철저히 이뤄지도록 하고 갈등영향분석과 참여적 의사결정 방법이 새롭게 도입돼야 한다.

한 마디로 대형국책사업 수행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책입안단계를 간략하게 거치고 그 대가로 시행단계에서 장기간 갈등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반대로 정책입안단계를 길게 가져감으로써 시행단계에서의 논란을 줄이는 방식으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혹자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기만하면 하면 되듯 `어떻게든 갈등이 해결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낸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망각한 데서 나온 발상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1990년의 안면도와 2003년의 부안을 상기한다면, 그리고 2005년 지율의 단식을 생각한다면, 골치 아픈 갈등이 일단 해결됐다고 해서 갈등관리를 위한 제도 구축을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갈등 해결 전문가로 일해 온 듀크스(Frank Dukes)는 공공갈등의 해결과 관련해 `변혁적 접근(transformative approach)`을 주창한 바 있다.

이 접근의 요점은 공공갈등의 해결이 단지 개별 갈등 사안을 해소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 갈등 해결을 통해 전체 사회 및 사적·공적 기관의 체계가 향상돼야 한다는 데 있다.

현 단계에서 정부가 갈등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야 말로 지나간 국책사업 관련 갈등이 빚은 사회적 비용에 답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체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이다.

박재묵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jmpark@cnu.ac.kr)

-現 KDI 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자문위원
-現 갈등 예방과 해결을 위한 정책포럼 상임대표
-前 환경운동연합 조직위원장 및 정책위원장
-前 한국NGO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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