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 정윤기(홍보대행사 인트렌드 대표)씨는 '악어의 부활'을 이렇게 정의했다. '동물보호' 주장을 비웃듯, 패션 월드에서는 '악어'가 최고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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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솟은 등뼈가 웬말…평평한 뱃가죽
1980년대만 해도 악어가죽은 모름지기 '대칭형태'여야 '물건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산처럼 우뚝 솟은 등뼈를 중심으로 양쪽 가죽이 마치 접어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가죽 말이다. 한데 몇 년 전부터는 팽팽하고 평평해서 '바둑판'을 연상시키는 제품이 인기다.
가죽색깔에 힘을 주는 것도 올 가을 특징. 이탈리아 브랜드 '로메오 산타마리아'의 멀티 칼라 백은 몸판·뚜껑·바닥·주머니·손잡이 버클·지퍼 끝부분까지 총 23가지 색깔의 가죽을 사용했다. '악어 퀼트'다. '콜롬보 비아 델라스피가'는 가죽을 천연염료로 염색해 에나멜처럼 윤기가 흐르는 총천연색 미니 토트백을 선보였다. 인기색은 핑크, 오렌지.
■ 실리콘 주사 맞은 악어가방까지
이탈리아의 피부과 의사였던 마로 오리티 카렐라(Carela)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납작한 악어가방만 있으란 법 있어? 동그랗게 빵빵 부풀린 백도 있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게다가 소가죽에 무늬 찍는 것보다 악어가죽을 부풀리는 게 더 고급스럽잖아."
■ 가방만 악어 쓰냐… 액자·함 단자도 악어시대
한국에서 악어가죽은 아저씨들도 선호하는 아이템이다. 재운(財運)을 가져온다는 속설 덕분에 붉은색 악어가죽 지갑은 해마다 없어서 못 팔 정도. 콜롬보가 작년 혼수용품으로 쓰기 좋은 악어가죽 함을 내놓은 데 이어, 악어가죽 액자와 안경케이스까지 내놓는 '한국식 마케팅'을 선보인 것도 '아저씨' 고객들을 겨냥한 마케팅의 결과. 구두브랜드 '탠디'도 "악어 가죽 신발을 신고 미팅을 나가면 일이 잘 된다"며 악어가죽 신발을 100만원대에 내놨다.
■ 송아지도, 양도 "악어"라 하네
최근엔 소가죽, 양가죽 가방에 악어무늬를 찍은 제품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작년 샤넬이 천 가방에 악어가죽 모양으로 스티치를 박아넣은 일명 '페이크 백(fake bag·가짜 가방)'을 선보인 것을 시작, 올해도 마이클 코어스, 앤클라인, 타임, 안지크 등 수많은 브랜드가 송아지나 양가죽에 악어무늬를 찍은 '모크 크로크(Mock Crock·모조 악어가죽)'백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