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무 하나로텔레콤(033630) 사장이 모처럼 쓴소리를 했다. 통신산업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규제는 불가피하지만, 지금은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다.
규제대상인 통신사업자가 정부 등 각종 규제기관을 향해 심정을 토로하는 것은 그리 흔치 않다. 박 사장의 호소는 그만큼 지금의 규제환경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사장이 규제문제를 거론한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IPTV와 관련있다.
국무총리 자문기구인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이하 융추위)가 IPTV를 방송으로 규정하면서 IPTV와 유사한 '하나TV'도 방송의 테두리에 묶일 가능성이 커졌다. 통신산업 주무부처인 정통부도 모자라 이제는 방송위라는 또 한명의 시어머니를 모실 처지에 몰린 것.
이들이 한목소리를 내면 그나마 걱정이 덜하겠지만, 정통부와 방송위가 IPTV를 놓고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어 사업자로선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과거 정통부와 상의해 요금을 조절했다가 뒤늦게 공정위로부터 담합이라는 판정을 받았던 통신사업자로선 규제기관마다 다른 입장이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박 사장은 "규제를 하더라도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박 사장이 통신산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불과 한두해 전이다.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M&A 등을 다루는 전문 변호사로 활약하던 그는 어느날 엔터테인먼트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가문의 영광', '엽기적인 그녀' 등의 대박을 터뜨리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뉴브리지캐피탈 코리아를 거쳐 지난해 3월 하나로텔레콤 사장으로 취임했다.
통신업체 몸 담은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경영에는 탁월한 수완을 지닌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고 있다.
박 사장이 규제문제를 꺼낸 것도 '능력껏 실력을 발휘하게 해 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 박 사장은 실적과 관련해 "지난해 4분기가 바닥이었다"며 "올해부터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개선속도가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 = 김수헌 산업부 부장]
◇"'하나TV' 세계기록 세웠다"
-하나로텔레콤은 '하나TV'를 주력상품 중 하나로 키우고 있다. 출시 후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하나TV를 직접 한번 봐라. 지난해 7월 상용화 한 이후 쉼없이 업그레이드 했다. 100점이라고 할 순 없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 얼마전 서울 모 대학교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나TV'에 대해 질문했다.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서비스 내용 확대와 개통이 관건이다.
초기엔 주문형비디오(VOD) 위주로 동영상 서비스를 했지만, 지난 2월부터는 홈쇼핑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는 네트워크 게임이나 노래방, 앨범, 타임머신TV 기능 등을 '하나TV'에 실을 예정이다.
풍부한 컨텐트와 기능에 비해 소비자들이 이를 100%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이를 감안해 '하나TV'에 검색기능을 갖출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인터넷검색까지 가능토록 할 생각이다.
-'하나TV' 가입자 목표는
▲지난달 말 30만명을 훨씬 넘었다. 연내 100만명 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통과 설치일정 등을 감안하면 100만명 부근까지 간다면 상당히 의미있는 성과가 될 것이다.
이에 비해 '하나TV'는 서비스 개시 후 8개월만에 3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가입자 증가세로 보면 세계기록이다. 얼마전 하나로텔레콤을 방문한 EU 집행위원들도 놀라움을 나타냈다.
◇"규제도 원칙 있어야"
-방송위는 물론 국무총리 산하 융추위도 IPTV를 방송으로 분류했는데, '하나TV'에 미칠 영향은
▲IPTV에서 방송 영역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나TV' 셋톱박스에는 각종 칩이나 하드웨어가 들어있어 화상전화와 인터넷서비스, 각종 네트워크 기술을 선보일 수 있다. 이를 방송이라는 획일적 틀로 규제해선 안된다.
융추위와 방송위 등은 실시간 방송뿐 아니라 VOD도 규제하겠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당장 포털사이트에서 자유롭게 동영상을 보던 것을 어느날 갑자기 규제하겠다는 건데, 그렇게 해선 안된다.
EU 집행위원에 따르면 유럽은 실시간 방송은 각국 사정에 따라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IPTV 기능은 자유롭게 한다더라. 규제를 하더라도 꼭 필요한 부분만 하고 나머지는 유럽처럼 풀어줘야 한다.
-피규제기관으로서 규제당국에 바라는 점은
▲규제하더라도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IPTV를 예로 들면 우선 규제대상과 피규제대상을 분명히 해야한다.
전달도구만 보고 방송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디빅스(DivX)나 타임머신TV, 인터넷포털의 동영상 상영 등을 생각해보라. 어디까지가 방송이고 어디까지가 통신인가. 컨버전스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모호한 규정이 사업자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IPTV 법안도 만드는 목적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법안의 목적이 IPTV 시행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면허제와 자회사분리 등 사실상 통신사업자들이 IPTV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도 사업자들은 정보통신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규제로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헷갈릴 때가 많다. 더 옭아매는 것은 적절치 않다.
◇"결합상품 경쟁력 있다"
-정통부는 지난달 통신규제 로드맵에서 지배적 사업자에 대해서도 결합상품을 허용했다. 하나로텔레콤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고 있나
▲우리 입장에선 나쁠게 없다. 우선 가격 경쟁력이 있다. 지난 1월 업계 최초로 초고속인터넷과 IPTV, 유선전화를 묶은 결합상품 '하나세트'를 내놓았다. 각각의 서비스를 따로 가입할 때보다 요금이 최대 20% 정도 싸다. 반면 KT 등 지배적 사업자는 요금할인폭이 10% 이내로 제한된다.
또 KT는 경쟁사에게 동등접속권을 보장해야 한다. 의미있는 조치로 받아들인다.
-3G 무선 재판매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추진일정을 말해달라
▲올해 하반기 내 3G 재판매 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선 재판매는 허가가 아닌 신고사항이기 때문에 문제 없이 사업권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사업자와 파트너 관계를 맺을 것이다. 현재 태스크포스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곳에서 면밀한 검토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상품은
▲소비자 시장은 '하나TV'를 계속 발전시킬 것이다. 기업고객 시장에선 통합솔루션 제공을 통해 의미있는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이미 솔루션사업부를 신설해 기업고객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더 필요한 부분은 해당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와 제휴해 제공하면 된다.
◇"작년 4분기가 바닥"
-작년에 비해 주가가 많이 올랐다. 이유를 찾는다면
▲실적개선 기대감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4분기가 바닥이었다. 올해 1분기부터 실적 개선속도가 빠르다. 월별로 매출이 늘어나고 영업이익률과 순이익도 큰 폭 개선될 것이다. 2분기와 3분기에도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이다.
초고속인터넷사업이 정체됐어도 전화매출이 매년 20% 정도 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유선전화 사업은 성장가능성이 높은 '블루오션'이다. 기업영업도 20% 이상 성장하고 '하나TV'도 매출이 늘고 있다. 또 비용이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는 점도 실적개선 요인이다.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끊이지 않는다. 논의 중인 곳 있나
▲벌써 4년째 그런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셀런TV 인수나 감자가 있었을 때도 M&A 얘기가 나왔다. 사겠다는 곳이 있으면 (지분을) 팔 가능성이 있지만, 당장은 회사 턴어라운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톡옵션 발행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임직원의 이해관계와 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대표적인 곳이 하나로텔레콤이다. 기업가치가 오르면 주주도 좋고 직원도 좋다. 기업가치 제고 차원에서 의미있는 보상수단으로 보고 있다.
◇"컨버전스 시대 리더될 것"
-IPTV가 본격 도입되면 KT와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걱정스러운 면은 없나
▲IPTV 시장은 초기단계에 불과하다. 경쟁보다는 시장을 키우는 것이 먼저다. KT 진입으로 시장규모가 커질 수 있어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KT와 경쟁이 붙을 수 있지만, 나를 비롯해 임직원들은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1년반 이상 앞서 시작한 노하우가 있고 그동안 축적해놓은 컨텐트도 풍부하다. 과거 ADSL에서처럼 우리보다 늦게 시작한 KT에 시장을 빼앗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컨버전스 시대엔 망제공업체가 아닌 서비스 업체가 돼야한다. 작년부터 서비스 중심 회사로 가자고 주창했고,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통신업계 2년차 최고경영자로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통신시장은 다른 부분에 비해 과도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규제기준도 각 기관별로 달라 예측하기 어렵다.
과도한 경쟁으로 소비자 민원이 제기되고 다른 한쪽에선 정통부, 공정위, 방송위 등 규제기구마다 기준이 달라 사업자들이 혼란을 느끼는 상황이다. 규제를 하더라도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 규제가 너무 많아 사업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를 정도다.
하나로텔레콤만 놓고 보면 컨버전스 시대엔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미국의 AT&T나 영국의 BT 등이 지난 2002년까지 매출이 줄다가 2003년, 2004년부터 다시 회복되고 있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은 IPTV와 인터넷전화 등 통합적 서비스를 원하고 있다. 그 기반이 되는게 유선이다. 한마디로 컨버전스 시대의 총화라 할 수 있다.
◆박병무 하나로텔레콤 사장 약력
- 경북 경산 출생(`61)
- 대일고 졸업(`80)
- 서울대 법학과 입학(`80)
- 사법고시 합격(`82)
- 서울대학교 법학과 학사(`84)
- 연세대 MBA 과정 졸업(`88)
- 김&장 법률사무소(`88)
-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주) 대표이사(`00)
- 뉴브리지캐피탈 코리아 사장(`03)
- 하나로텔레콤 경영위원회 의장(`05)
- 하나로텔레콤 대표이사 사장(`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