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Crisis)④`다극화`로 재편되는 세계 질서

<1부> 몰아치는 변화의 물결
미국 중심에서 다극화로, 선진국 중심에서 이머징으로
신흥시장, 미국 뒤 줄서기 멈추고 `독자 행보` 나서
IMF·G7 등 기존 위기 시점에서 한계 노출
  • 등록 2009-09-08 오후 2:00:03

    수정 2009-09-08 오후 1:54:58

[이데일리 김혜미기자] `리먼`으로 촉발된 경제위기를 계기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질서에서 다극화로, 선진국 중심에서 이머징으로 경제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 
 
올 들어 각 국 경제지표가 속속 회복세를 나타내기 시작한 가운데 인도와 브라질 등 신흥시장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신흥시장이 글로벌 경제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엔 이들에게 아직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 미국 대신할 새로운 `주체`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국제금융기관의 위상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IMF(국제통화기금)의 위상 변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질서를 지휘했던 IMF는 금융위기를 거치며 한계를 노출했다. 선진국 위주의 의사 결정구조, 경제위기 당시의 감독 부재 등이 `위기 이후` IMF가 개혁돼야 한다는 주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실탄`을 늘리는 과정에서 위상 변화를 뚜렷이 볼 수 있다.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IMF의 긴급구제금융 대출기능을 강화하고 현재 2500억달러 수준인 IMF 재원을 5000억달러로 늘리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유력 신흥국은 이 기회에 IMF의 `서방 편향적` 의사결정 구조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과 멕시코, 브라질 등은 자국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IMF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기존 선진 7개국(G7) 중심의 세계 질서는 보다 광범위한 G20 회의까지 확대재편되고 있다. 헤게모니를 어느 한 쪽에서 쥐기 보다는 `다극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G20은 금융위기 초기에 형식적인 공조형식을 취하는데 그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 등 신흥국들은 G20을 계기로 국제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G7을 밀어내고 이를 대체할 기구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 경기침체를 계기로, 신흥시장 국가들은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를 부정하고 각 자의 길로 나서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국의 영향력을 인정하지만 앞으로는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거나 독자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신호다.
 
이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달러 위주의 세계 경제질서가 아닌, 제 2의 기축통화 구축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3월 저우 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외환보유 통화로서의 달러를 떠나겠다고 공언했다. 러시아도 점진적인 외환보유고 다각화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위 그림 참조)

◇ 고속 성장 가능한 이유, `非동조화` 
 
전세계 투자자들이 미국과 유럽의 경제회복 가능성에 주목할 때 신흥시장은 하나 둘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 인도는 지난 1분기 5.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2분기에도 6.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내수 위주의 소비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브라질 경제는 지난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이후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귀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브라질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미 일자리가 늘고 있고, 내년에는 5% 정도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지난 8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2.2로 상승, 경기 확장국면을 나타내면서 경제회복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또 최근 국제유가와 원자재가격이 오른 점도 러시아 경제전망을 밝게하고 있다. 알렉세이 쿠드린 러시아 재무장관은 "러시아 경제는 3분기부터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공언했다.

신흥시장의 빠른 성장세는 선진국들과 다르게 움직이는 이른바 `비동조화`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신흥시장이 지금까지 선진국 경제에 크게 의존한 것과 달리 앞으로는 국내 수요를 발굴하고 경제구조를 바꿀 것이란 전망이다. 또 선진국들에 비해 앞으로 투자하고 성장할 공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도 신흥시장의 장밋빛 미래를 예상케 한다.

마이클 왕 모간스탠리 스트래티지스트는 "이전에 신흥시장은 높은 수출의존도 때문에 선진국들에 상당부분 의존해 왔지만 이번엔 다르다"면서 "신흥시장은 선진국들이 가졌던 금융산업의 펀더멘털적인 문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출과 신용시장은 빠르게 회복될 것이고, 이것이 성장률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신흥시장의 경제 회복세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힘입은 만큼, 그에 따른 효과가 감소하는 시점에서는 또 한번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또 신흥시장에서 최근 기업공개(IPO)가 활발해지는 등 닷컴 붐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거품 우려도 남아있다. 

신흥시장이 장기 성장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과도한 경기부양책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잠재우는 등의 당면과제는 물론, 장기적으로 국내 수요를 촉진시킬 수 있는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국 통화가치의 재평가가 필요하고, 인적자원을 고부가가치 서비스에 맞게 육성해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보다 조심스런 접근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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