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숙] 갑자가 날씨가 뚝 떨어지면서 단풍도 제철을 맞았지만 부동산 시장은 가을철 성수기도 모른채 이미 겨울이 와 버린 듯 냉기만 감돌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이후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집값은 왠만해선 돌아설 기미 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시장 상황이 이렇게 바닥을 긁고 있는 시점인데 지난 9월초 아는 분으로부터 부담스러운 부탁을 받았습니다. 사업상 급전이 필요해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데, 대신 팔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수도권에 소재한 부동산을 신경써서 팔 수 없는 상황이고 아무래도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뭔가 뾰족한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라 한번 ‘알아보겠다’는 어정쩡한 말로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 부탁을 받을 때만 해도 시장 상황이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안좋을 지 몰랐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고백일 것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저의 집팔기 대작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처분해야 하는 물건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61평 아파트, 분당구 서현동 49평 아파트, 수원 매탄동 상가였습니다.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의 믿을 만한 중개업소에 물건을 내놓았습니다. 여러 곳에 내놓으면 괜히 물건 가격만 떨어뜨리게 되므로 두곳에만 물건 정보를 공개했습니다.
물론 상황이 안좋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터라 쉽게 팔릴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고 제게 부탁을 했던 분께도 미리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부담감은 컸습니다. 자금 사정 때문에 아파트를 팔리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라 중개업자분께는 거래가 성사되면 중개수수료는 알아서 두둑히 챙겨주겠다는 귀뜸도 했습니다. 요즘같이 매물이 넘치는 상황에서 중개업자에 대한 ‘성공보수’ 정도는 마케팅 비용이기 때문입니다.
1주일이 흐르고…
아무 연락없이 1주일이 지났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애타지만 1주일을 그렇게 후딱 지나가 버리더군요. 부탁한 중개업소 한번씩 독촉 전화를 걸었습니다. 시세보다 싸게라도 팔아달라고 채근했습니다. 중개업소에서는 문의 전화도 없다며 한숨입니다. 지난해 생각만 하고 시세 낮추기를 망설이던 매도자를 설득해서 시세보다 2,000만원까지 깎아 협의할 수 있다고 다시 마지노선을 던졌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있는데다 10월중 규제 완화 얘기도 솔솔 나오고 있어 추석전에는 사람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9월중 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매도자에게 통보해 주었습니다. 상황이 이럴수록 냉정해야 하고 파는 사람도 옛날 생각만 해서는 절대 팔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달을 앞두고…
가장 가능성이 높아보였던 분당의 중개업소에서 처음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살려는 의사가 있는 사람이 있는데 얼마까지 가능하겠냐는 얘기였습니다. 이때다 싶어 시세보다 3000만~4000만원 저렴한 가격으로 과감하게 가격을 더 낮췄습니다. 중개업소에서도 이 정도면 싼 금액이라며 잘 해보겠다고 희망을 던져주었습니다.
바로 전화를 줄 것 같던 중개업소에서 연락이 없어 다시 확인해보니 매수자가 남편과 상의하고 내일 결정해주겠다고 했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제가 들은 통보는 예상대로였습니다. 매수자가 대기업에 다니는데 산하 연구소의 자료를 보니 내년 주택가격이 더 떨어진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며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는 전언이었습니다.
참 답답하더군요. 만약 내년에 집값이 5% 하락한다 하더라도 지금 가격은 그 이상 저렴한 가격이라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데 무작정 기다린다니 전문가의 입장에서도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주택가격의 약보합세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수요자들의 수요가 튼튼한 분당의 아파트가 두 자릿수 이상 폭락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한달이 지나고...
매도자는 더욱 초조해졌습니다. 신규 사업 투자 때문에 사업자금이 당장 필요한데 10억원이 넘는 부동산이 손에 있지만 어떤 것 하나도 현금화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중개업소에 독촉전화만 하면서 또 다시 한달을 기다릴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될 것 같습니다. 집 팔기 대작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습니다. 집이 팔리는 날 그 작전이 끝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