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파인만(1918~1988) 박사는 전자기장과 전자의 상호작용을 양자역학으로 설명한 양자전기역학(QED) 이론을 완성한 공로로 지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1959년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는 제목의 강연에서 처음으로 나노기술의 가능성을 제시했죠. 파인만 박사는 여러 대중적 물리학 저서를 저술했는데 국내에는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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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은 작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작은 것을 이루고 있는 더 작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계속 반복돼 우리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작은 세상이 나타납니다.하지만 현미경의 발전으로 이렇듯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사람들이 보고, 더 나아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작하기도 합니다. 물건을 점점 더 작게 만들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성질의 물건까지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바로 나노기술이 가져다준 놀라운 세계의 단면입니다.
먼저 나노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기원한 말입니다. 그만큼 작다는 의미로 실제 나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준의 기술을 가리킵니다. 1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미터(m)로 머리카락 굵기의 8만분의 1 크기에 해당합니다. 만약 지구 크기를 1미터라고 한다면 축구공을 나노미터 크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노기술은 10억분의 1 수준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극미세가공 과학기술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최소의 원료로 최고 성능을 지닌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입니다. 나노기술을 이용하면 특별한 기능을 가진 신물질과 첨단제품의 생산이 가능합니다.
나노융합 소재가 전기·전자, 자동차, 항공, 섬유, 정보통신(IT), 디스플레이, 에너지, 인공지능(AI), 의료·바이오, 3D 프린팅, 로봇 등 다양한 산업과 접목되면 이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기대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개척해 가고 있는 ‘21세기의 연금술’로 불리는 나노기술은 단연 21세기를 선도하는 기술로 꼽힙니다. 20세기를 마이크로 시대라고 한다면 21세기는 나노의 시대인 것입니다.
원자 배열 조작하면 연필심도 다이아몬드로…나노 크기에선 전혀 다른 구조·특성 나타나
나노기술이 발전하면 연필심(흑연)을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연필심과 다이아몬드는 같은 탄소원자(C)들로 구성돼 있지만 원자의 배열이 다를 뿐입니다. 연필심의 탄소 원자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면 연필심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입자가 작아질수록 표면적이 증가하게 돼 반응속도가 빨라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아주 적은 양의 은으로도 살균효과를 크게 할 수 있다거나 전지 용량을 늘리는 것은 이를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구체적으로 은나노 세탁기나 공기청정기를 예로 들면 살균력의 특성이 있는 은을 나노 크기로 만들면 세탁시 살균 기능이 극대화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은나노 입자는 약 650여종의 세균을 살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STM개발 후 풀러렌,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등 연이어 발견…나노기술 연구 붐
나노기술은 지난 1959년 미국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 교수가 미국 물리학회에서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는 제목의 강연에서 처음 제시했습니다.
이 강연에서 파인만은 브리태니커 사전 24권에 들어 있는 모든 내용을 하나의 여자 머리핀 머리에 담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엔 한낱 꿈 같은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현실이 되었죠.
1981년 스위스 IBM연구소 소속 물리학자 게르트 비니히와 하인리히 로러가 원자와 원자의 결합상태를 볼 수 있는 주사형터널링현미경(STM)을 개발하면서 물질의 근본을 이루는 나노 세계에 대한 이해가 가속화됐습니다. STM이 비로소 나노기술의 출발점을 연 셈입니다. STM 개발로 강철같은 섬유, 분자크기의 컴퓨터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며 세계적으로 나노기술 연구 붐을 일어났습니다.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풀러렌(1985), 탄소나노튜브(1991), 그래핀(2004) 같은 탄소 나노소재가 연이어 발견됩니다.
1991년 일본전기회사(NEC) 부설 연구소의 이지마 스미오 박사는 지름이 1나노미터 정도로 가늘지만 강도가 강철의 100배 이상일 만큼 견고하고 구리와 전기 전도율이 비슷하며 열 전도율은 자연계에서 가장 뛰어난 다이아몬드와 같은 ‘탄소나노튜브(CNT·Carbon Nanotube)’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뛰어난 물성 덕분에 ‘꿈의 신소재’라 불리며 반도체에서부터 2차전지, 자동차, 항공기 동체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주로 반도체 제조공정의 미세화 한계를 극복하고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배터리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활용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집중됐으나 최근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태양전지는 물론 의료, 선박 등 점차 그 활용 가능성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그래핀 제조산업은 세계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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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미국이 선도적으로 국가나노기술발전계획(NNI)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에서 나노기술에 대한 투자를 촉발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듬해인 2001년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해 세계 5대 나노기술 대국을 목표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정부는 나노기술분야 연구개발(R&D)에 전체 정부 R&D 투자액 대비 3.0%인 5862억 원을 투입했습니다. ‘2019년도 나노기술발전시행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5년엔 전체 정부 R&D 투자 대비 4%인 8800억 원을 나노기술 분야에 투자할 목표를 잡고 있습니다. 나노기술의 가장 큰 시장은 바로 반도체산업으로 반도체 소자의 최소 선폭은 현재 7나노미터 수준까지 도달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최고 기술국 미국 대비 84%로 추정되는 나노과학기술수준을 오는 2025년 92%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 도래,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소재·부품·장비 기술 자립화 추진에 따라 나노기술의 역할과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4위 수준의 나노기술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나노산업이 국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에 불과하고 시장점유율은 세계 7위 수준에 그치고 있는 등 시장은 정작 그에 따라가지 못한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의 나노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나노기술력과 시장 기여도 간 미스매치 타개를 위한 전부문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홍순국 LG전자 사장은 지난 7월 세계 3대 나노기술 행사인 ‘나노코리아 2019’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서 “다양한 산업 분야의 상호협력 강화 및 시너지 제고를 통해 인적·물적 한계를 뛰어넘는 나노 산업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며 “국가 나노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소재, 부품, 공법, 장비, 생산 등 기술 기반으로 산·학·연·관이 협력하는 에코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나노기술은 기존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 동력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기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기존에 인쇄는 신문이나 전단지 등과 같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사용하는 기술로만 인식됐으나 최근에는 전자제품도 인쇄로 제조할 수 있는 ‘인쇄전자’라는 분야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도성을 나타내는 금, 은, 구리, 알루미늄 등과 같은 소재를 나노미터 크기로 만들면 매우 낮은 온도에서 녹기 때문에 이들 소재를 포함하는 나노잉크를 사용해 전자회로를 인쇄함으로써 소자를 만드는 산업이 태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 나노입자는 특정한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 등과의 반응에 의해 질병을 조기진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을 질병의 원인균에 직접 전달하는 기술 개발 등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 나노 기술도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기술들과 융·복합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연평균 50%에 육박하는 매우 빠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나노산업 세계 시장 규모는 내년 약 3조달러 규모로 예측되고 있어 그 파괴력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