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정명수기자] "후세인에게 해야할 질문을 2000번도 넘게 외우고 또 외웠다"
지난 25일 미국의 공중파 방송인 CBS는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다. 이 인터뷰를 성사시킨 CBS의 댄 래더는 자신의 보도가 이라크 정권의 홍보물이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했다고 말했다.
후세인 인터뷰는 미국의 2차 유엔 결의안이 제출된 이후에 이뤄진 것이어서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댄 래더의 위상도 그만큼 올라간 것은 당연하다.
댄 래더는 올해 72세로 ABC의 피터 제닝스, NBC의 톰 브로커와 함께 미국의 3대 앵커로 통한다. 경쟁자인 제닝스와 브로커는 댄 래더의 특종을 "대단한 일"이라 치켜세웠다.
댄 래더는 걸프전 직전에도 후세인과 단독 인터뷰를 했었다. 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의 전언론이 후세인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해 8월 바그다드 호텔에서 노심초사 인터뷰를 기다리던 댄 래더는 대통령궁으로부터 전갈을 받는다. 그는 꾸껴진 셔츠 차림으로 단숨에 달려가 후세인을 만나는데 성공한다.
13년후 후세인은 다시 댄 래더를 선택했다. 이번에 댄 래더는 정장을 입고 그를 만났다. 댄 래더는 후세인에게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으로 운을 뗐다. 후세인은 "13년 전에도 당신은 그런 질문을 했다"며 받아넘겼다.
후세인이 미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는 것은 한스 블릭스가 요구한 알사무드 미사일 폐기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후세인은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했다.
댄 래더는 "후세인이 생존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후세인은 왜 댄 래더를 다시 선택했을까. 한번 만났으니 다시 만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댄 래더의 경력을 보면, 그가 후세인 단독 인터뷰를 따내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영국의 가디언지는 평가했다.
댄 래더는 1950년 기자 생활을 시작, 1962년 CBS로 옮겨온다.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저격사건, 아이젠아워 이후 역대 대통령 인터뷰,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 장례식, 테레사 수녀 장례식, 보스니아 내전 등 수많은 특종 보도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미국의 전설적인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의 뒤를 이어 CBS 이브닝 뉴스의 메인 앵커가 된다. 처음에 그는 방송이 끝날 때마다 "용기를 주소서"하고 기도했다고 한다. 1년후 CBS가 그의 뉴스 시간에 테니스 중계를 임시 편성키로 하자 방송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 6분간 뉴스 방송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댄 래더는 미국이 이라크 공격의 고삐를 조이기 시작할 때부터 부시 행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해왔다. 그는 싸구려 애국주의에 휘둘려 언론이 객관성을 저버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댄 래더는 "애국심이라는 감정에서 시작하는 자기 검열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수행한 전쟁은 크건 작건, 가리지 않고 접근이 제한됐고, 정보도 제한적이었다"며 "언론이 전쟁의 배경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