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오바마 시대)오바마노믹스를 말한다

오바마노믹스 `급진적` 인식은 편견
실용주의 노선 + 시장주의도 중시
과거 클린턴정책 + 저소득층 지원 강화
FTA 반대..재정적자 확대 불가피
  • 등록 2008-11-05 오후 1:28:00

    수정 2008-11-05 오후 2:07:08

[뉴욕=이데일리 김기성특파원] 미국 건국 232년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는 급진적(radical)일까.

오바마의 경제정책 `오바마노믹스`를 이해하는 첫 걸음은 이같은 물음에서 출발하는 게 효과적이다. 비주류의 젊고 똑똑한 흑인이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의 대변혁이 예고돼 있다는 막연한 인식이 적지 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매케인 후보가 오바마의 세금정책을 두고 부의 재분배를 추진하려는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거듭 비난해 온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오바마의 경제정책 대부분은 결코 급진적이지 않다.

부시 대통령이 8년간 계승해온 `탈규제-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레이거노믹스` 경제시스템이 파탄을 맞은 만큼 대수술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바마가 급진적이라는 생각은 편견이고 오해다.

오바마는 중산층, 노동자, 소외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주당에서 가장 왼쪽에 위치한 자유주의파(liberal)로 분류되지 않는다. 오히려 온건주의 성향이 강한 측면도 꽤 있다.

종합해 보면 오바마는 과거 클린턴 대통령 처럼 실용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오바마의 경제관이 일관성이 부족하고 다소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의 정책은 일반의 예상 보다 상대적으로 왼쪽에 있거나 오른쪽에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오바마노믹스`의 주요축중 하나가 예상보다 강력한 시장중심적 사고라는 것이다.

◇`오바마는 실용주의자`..`라이시냐 루빈이냐` 클린턴과 닮은꼴?

민주당내 경제정책의 갈등은 클린턴 행정부 때를 보면 뚜렷해진다.

한쪽 끝에는 정통적 민주당 정책을 주창한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가 있었다. 그 당시 노동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클린턴의 절친한 친구인 그는 경기 부양과 중산층 지원을 위해 도로, 다리 등 사회간접자본(SOC) 및 직업 훈련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반대 편에는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인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이 위치해 있었다. 클린턴은 루빈의 정책을 중용해 기존 민주당 정책과 거리가 있는 자유무역과 균형재정을 특징으로 하는 `루비노믹스`를 만들어냈고, 최근 30년래 최대 호황을 구가했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어느쪽일까. 부분적으로 둘다 맞다고 보고 있다.

클린턴이 루빈에게 잔뜩 무게를 실었다면 오바마는 균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오바마는 클린턴 행정부의 과업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라이시` 해법에도 매우 개방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1993년과 2008년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에서도 비롯된다. 특히 계층간 불균형 문제가 매우 심화됐다.

루빈 전 장관도 "재분배 이슈와 관련해선 1993년보다 지금이 명백하게 심각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의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인상이 재정적자 축소를 겨냥했던 것과는 달리 오바마의 경우는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목적이 있다. 오바마는 라이시 방식의 대체 에너지와 SOC 투자 등을 통해 중산층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구온난화의 장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바마가 이라크 철군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재정적자에 대해 너무 연연해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오바마는 소득 2만5000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인상과 중산층 및 저소득자를 위한 재정지출 확대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부시 대통령의 임시 감세조치중 중산층 및 저소득자를 위한 일부 조항만 영구화하고, 상위 2개 등급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은 현행 33%와 35%에서 각각 36%와 39.6%로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세금정책센터(Tax Policy Center)의 분석에 따르면 오바마의 조세정책이 시행될 경우 내년 소득순위 상위 1%의 세후소득은 7.0%(9만3709달러) 감소하는 반면 하위 20%의 경우 5.5%(567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는 시장주의자`..금융감독은 원칙주의

오바마가 지난 7월 중순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루비노믹스`의 강력한 지지자인 하버드대 출신의 소장파 경제학자 제이슨 퍼먼(Jason Furman)을 경제자문관으로 기용했다. 오바마가 시장의 원칙과 힘을 중요시하는 시장주의자라는 사실을 부각시킨 대표적인 사례였다.

오바마는 19990년 초반부터 12년동안 시카고대학에서 헌법학을 강의했을 당시 시장경제 신봉자인 시카고경제학파에 속한 지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시카고대학은 미국 현대 경제학사에서 자유방임주의(불간섭주의) 경제학의 태두인 밀턴 프리드먼의 시카고학파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시카고학파는 정부의 관리경제 보다 개별 경제주체간 개별적인 의사결정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오바마는 월가의 붕괴라는 결과를 가져온 신자유주의를 수정해야 한다는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를 태동시킨 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성장` 철학 마저 부분적으로 수용한다. `레이거노믹스`는 `경제 파이를 나누는 것 보다 경제 파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에서 출발, 탈규제-작은정부-시장지상주의라는 신자유주의를 잉태했다.

그러나 지금의 금융위기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시장 지상주의가 최대선이 아닌 것도 수십년간 여러 차례의 시장실패를 통해 증명됐다. 오바마는 시장실패를 막기 위한 정부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면서 그 조치내에서 시장의 힘이 작동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 그를 민주당내 온건주의자(보수주의자)로 꼽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의료개혁과 관련,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처럼 전국민의 강제적인 의료보험 혜택을 주장하지 않는다. 정부가 보험가격 인하와 관련된 지원 등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가입 결정은 개개인이 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권을 기업들에게 입찰방식으로 판매하겠다는 구상도 이런 맥락이다.

오바마는 하지만 "시장이 자동적으로 정상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는 판단도 갖고 있다. 그가 시장 규제 등을 강화하려는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오바마는 금융감독의 필요성과 관련, 대출 사기 처벌 및 월가 감독 강화 등을 주장하는 당내 강경파 자유주의파들과 의견을 같이 한다. 오바마는 과도한 규제 보다는 너무 적은 규제가 시장자본주의 위험을 만들어냈다고 판단하고 있다.

오바마가 최근 가진 CNN과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금융시스템 안정화를 통한 경제 회생을 제1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금융감독체계 개편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오스탠 굴스비 수석 경제보좌관(시카고대 경제학교수)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감독 권한을 강화하는 6가지 금융감독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연준 대출 수혜 금융기관에 대한 연준의 감독 의무화 ▲적정자본금요건 강화 등 규제강화 ▲중복 규제 조정 ▲금융기관의 형태가 아닌 실질적인 업무를 기준으로 규제 ▲불법적 시장조작 단속 ▲금융시장 불안을 사전에 인지해 금융감독당국에 정보를 제공할 금융감독위원회(Financial Oversight Commission) 설립 등이다.

◇통상문제는 정통 민주당 성향..한미 FTA 험난 예고

오바마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국내 일자리 감소 등의 원인이 FTA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혀 왔다. 한국, 콜롬비아, 파나마의 FTA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 FTA 협상 비준은 진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바마는 후보시절 "한국은 수십만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반면 미국이 한국에 파는 자동차는 고작 4000~5000대도 안된다"며 한미 FTA 수정을 요구해 왔다. 오바마가 후보시절 표를 얻기 위한 선거전략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에서 노동자와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행정부가 FTA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 특유의 보호주의 무역 성향이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무역보복의 대명사인 `슈퍼 301조`를 클린턴 행정부가 부활시킨 사례는 민주당의 보호주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세계적으로 개방과 자유무역이 대세인 만큼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큰 정부` 지향..재정적자 확대 불가피

오바마는 금융위기 타개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면에서 원칙적으로 `큰 정부`를 지향한다.

또 경기후퇴 국면에 이미 진입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미국의 경제를 고려할 때 추가 경기부양책 등 재정정책을 펼수 밖에 없고, SOC사업에 관심을 둘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오는 2011년 베이비 붐세대가 65세가 되면서 정부의 의료 및 사회보장 비용 부담이 대폭 확대된다.

아울러 오바마는 주택차압 억제를 위해 100억달러 규모의 주택차압방지기금을 설치하고, 부실자산구제계획(TARP) 참가 금융기관에 대한 90일간의 주택압류 금지 조치를 추진해 나간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 연금 조기 인출에 대한 위약금 면제, 중소기업 대출 확대 등 600억달러 규모의 대책을 통해 가계 및 기업의 신용경색을 완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주변 환경을 감안할 경우 미국의 재정적자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는 이라크 철군을 통해 재정적자 확대를 막겠다는 구상이지만 재정적자가 축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금정책센터(Tax Policy Center)가 오바마 집권을 가정해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내년 재정적자는 4480억달러를 기록한 뒤 2010년 5170달러, 2015년 6150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오마바가 미국이 장기간에 걸쳐 직면해 왔던 심각한 문제의 조합을 물려받는 어려운 시기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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