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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우리는 아직도 그날(혁명)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다(And still we wait to see the day begin)~♬’
14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식당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출입기자단 송년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내년부터 3개월간 이 노래를 컬러링으로 바꿀 예정이다. 이 노래로 인사말을 대신하려고 한다”며 갑자기 본인의 핸드폰으로 팝송을 틀었다. 김 위원장은 본인의 심리 상태를 컬러링을 통해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정거래위원장이 된 이후로는 그의 개혁의지를 엿볼 수 있는 ‘힌트’이기도 하다.
100여명이 모인 홀에 알 스튜어트의 <베르사이유 궁전(Al Stewart-The Palace of Versailles)>의 멜로디가 조용히 흘렀다. 국내에서는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로 번안하면서 멜로디가 익숙하다. 하지만 이 노래는 1789년 프랑스혁명의 덧없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곡이기도 하다.
1절에서 프랑스 혁명을 묘사하던 이 노래는 후반부에서도 비슷한 대목이 반복된다. 다만 ‘아직도’는 ‘그럼에도’ ‘너는 왜’로 의미가 조금씩 바뀌어 흘렀다.
‘우리는 그날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While we wait to see thd day begin)~♬’
‘왜 당신은 그날이 시작되기를 고대하는가(why do you wait to see the day begin)~♬’
김 위원장이 이 노래를 들려준 이유를 뭘까. 재벌개혁이 더디다는 국민의 요구에 그는 노랫말로 답을 대신했다. 단기간의 개혁이 아닌 지속가능하고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개혁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우리 사회를 바꾸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혁명이 아닌 진화가 돼야 합니다. 혁명으로는 하루 아침에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남은 2년 6개월동안 지속가능하고 예측가능하게 세상을 조금씩 후퇴하지않고 누적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취임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재벌 저격수’라는 본인의 별명과 달리 재벌 그룹에 대한 개혁은 아직 가시화된 게 없는 게 사실이다. 4대·5대그룹 최고경영자(CEO)를 연이어 만났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압박만 할 뿐, 공정위가 보유한 ‘칼(행정력)’을 꺼내들지는 않았다. 4대·5대그룹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을의 눈물’을 닦겠다며 가맹·유통분야의 갑질차단에 좀더 방점을 뒀다. 일각에서는 그의 개혁 의지를 의심하기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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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룹 불태우지 않을 것..적절하게 혁신 유도”
하지만 재차 4대그룹 개혁방식이 모호하다는 질의가 이어지자 그도 입을 열었다. ‘대저택 4곳(4대그룹)’ 중 어디를 가장 빨리 불을 지를 것이냐는 지적에 “저는 4개 저택을 불태우지 않을 것”이라며 “적절하게 레노베이션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김 위원장은 “4대그룹은 어떤 방식으로 개혁을 해야하냐고 답답해할 수는 있겠지만, 각 그룹마다 해결해야할 현안과 구조적 문제가 다 다른 만큼 제가 얘기할 수 없다”면서 “이미 각 그룹에서 문제점과 해결책은 다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다시 4대그룹에 메시지를 던졌다. 김 위원장은 “ 제가 2년반 동안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계속 있을 테니 당장 변화의 끝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을 보여달라는 얘기다”면서 “이미 해결방법은 다 알고 있으니 그 방법을 실행할 수 잇는 결정을 빨리 해달라는 취지”라고 뜻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밝혔듯 4대그룹 개혁은 단기적으로 속도전을 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취임 초기에 팔 비틀어 하는 개혁은 조금만 시간지나면 실패하는 길로 들어선다”면서 “다시한번 말씀드린다. 6개월이내 개혁 완수해야한다는 발상으로 지난 30년간 개혁이 실패했다. 저 절대로 그렇게 가지 않을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술을 잘 마시는 체질이지만,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던 김 위원장이 던진 건배사도 그의 개혁의지가 스며들어 있었다. “저의 건배사는 언제나 하나입니다. 우보천리. 우리 모두 소의 걸음처럼 뚜벅뚜벅 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