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4G(세대) 이동통신 롱텀에볼루션(LTE) 망이 읍면까지 깔리고,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연말로 다가왔지만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혁신의 수혜를 온전히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35만 농아인(聾人·청각장애인)들이다.
농아인 권익보호 활동을 활발히 펼쳐 온 변승일(55) 한국농아인협회 회장은 지난 16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정보통신 기술 발전의 수혜를 장애인들도 똑같이 받아야 하지만 아직 미흡하다”며 “국민이자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에 관련 정책 개정을 지속적으로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최한 정책고객 대표자회의에도 참석해 이계철 방통위원장에게 “듣고 말하지 못하는 농아인들에게 방송통신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며 애로사항을 토로한 바 있다.
주로 영상통화를 통해 수화로 대화하는 농아인들은 비싼 통신요금에 신음하고 있다. 농아인 전용 요금제가 있지만 ‘월3만4000원에 영상통화 110분’ 정도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3G 영상통화는 화질이 좋지 않아 손동작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 선명한 화질로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LTE의 경우 장애인 요금제가 아예 없다.
“문자로 소통이 되지 않느냐”라고 조심스레 묻자 변 회장의 수화 동작이 빨라졌다. “나는 카카오톡을 쓴다. 그런데 농아인 대부분은 수화를 ‘제1 언어’로 배워 문자 해독이 쉽지 않다. 듣고 말해야 해독력도 느는데 읽기 교육을 받은 젊은 농아인들 말고는 대개 수화가 더 익숙하다.”
변 회장은 요즘 인기 드라마 ‘각시탈’을 챙겨 보기 전에 대본을 미리 인터넷에서 내려받는다. 스토리를 미리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막방송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방송사 외주업체에서 자막을 실시간으로 타이핑해 제공하는데 대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일이 많고, 주말 재방송의 경우에는 아예 자막이 없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 우측 하단에 나오는 수화통역 박스는 화면의 1/16 비율로 크기가 작아 눈이 좋지 않은 농아인들은 해독이 어렵다. 그는 “자막 방송의 경우 농아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청력이 떨어지는 노인 모두를 위한 배려”라고 강조했다. (수화통역 : 이현화 한국농아인협회 수화정책부 수화통역사)
■변승일 회장은 1958년생으로 1974년 전북 농아학교를 졸업하고 전주에서 표구화랑을 운영했다. 1989년 한국농아복지회 전북지부장을 지냈으며 2005년 한국농아인협회 회장에 당선됐다. 공예에 일가견이 있어 여러 차례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