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 제15회 추모 기념식

12일 오전 10시, 서울대학교 스코필드홀에서 열려
  • 등록 2017-04-11 오전 9:19:01

    수정 2017-04-11 오전 9:19:01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사진=이데일리 DB]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외국인 독립운동가로서 3·1운동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서거 47주기를 기념하는 제15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 기념식이 12일 오전 10시 서울대학교 스코필드홀에서 개최된다.

서울대학교가 주최하고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이 주관하는 이 날 행사에는 에릭 월쉬(Eric Walsh) 주한캐나다 대사, 윤종오 서울남부보훈지청장 등을 비롯한 각계인사, 회원,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이날 행사는 장학증서 수여, 내빈 축사, 특별강연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이름도 갖고 있는 스코필드 박사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1907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1911년 토론토 대학교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14년부터 모교에서 세균학 강사로 취임했다.

하지만 1916년 캐나다장로회 선교사로서 내한해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 세균학 강의를 맡게 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다.

한국인을 동포처럼 사랑했던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 현장을 직접 카메라에 담고 독립운동의 실상을 기록했다. ‘제암리 학살 사건’(1919. 4. 15.)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 선교사 대표로 극동지구 선교사 전체회의에서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영자신문 ‘서울프레스’가 일제의 정책을 옹호하자 이를 비판하는 등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1920년 캐나다로 귀국한 박사는 캐나다와 미국 각지에서 강연과 기고 등을 통해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일제의 만행을 비판했다.

박사의 한국에 대한 사랑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됐다. 1958년 8월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병리학 교수로 있으면서 보육원을 후원하고 직업학교를 돕는 등 사회 봉사활동에 헌신했다. 1968년에는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1969년 초부터 심장성 천식이 발작해 치료를 받다가 1970년 4월 1일 81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그의 장례는 4월 16일 광복회 주최의 사회장으로 거행됐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96호)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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