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돈내코… 외로운 15년을 끝내고, 첫 봄을 맞다

  • 등록 2010-03-11 오후 12:00:00

    수정 2010-03-11 오후 12:00:00

[조선일보 제공] 15년간 길이 막혔던 한라산 돈내코 탐방로가 개방된 건 작년 12월의 일이다. 다녀온 이들은 모두 이국적인 설경에 숨이 막혔다고 했다. 그러나 좀 더 기다렸다. 눈 없는, 돈내코의 온전한 풍경을 보고 싶었다. 2월 마지막 주, 마침내 폭우로 산을 하얗게 뒤덮었던 눈이 녹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짐을 꾸렸다.

4일 새벽 제주도에서 눈을 떴다. 오르기로 작정했으되 걱정이 앞선 등산길이었다. 지난 한달간 네번 돈내코를 올랐던 동행인은 남벽을 본 적이 딱 한 번, 그것도 1분을 넘기지 못했다고 했다. 해발 1500m를 넘는 고지에서 백록담 남벽은 늘 구름 뒤로 몸을 숨겼다. 이 코스는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오르지 못하는 코스다. 대신 이 길 위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남벽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취하는 코스다. 그러나 제주에 도착한 3일부터 섬은 짙은 운무에 몸을 묻고 있었다. 남벽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조바심을 안고 길에 올랐다.

돈내코는 돗(돼지)과 내(하천)·코(입구)가 합쳐진 말이다. 야생 멧돼지가 물을 마시러 내려오는 계곡이란 뜻이다. 이 물길을 거꾸로 오르는 길은 백록담까지 완만하다. 탐방안내소(해발 500m)에서 남벽분기점(해발 1600m)까지 고도차 1㎞를 총 7㎞의 탐방로를 통해 오른다.

▲ 한라산 백록담 남벽 아래, 진초록 구상나무 사이로 가지 끝이 붉은 좀고채목이 하얗게 빛나고 제주조릿대가 살랑거린다.


그 완만한 길 위에서 처음 마주치는 풍경은 나무들의 생이 빼곡히 기록된 밀림이다. 산이 품는 비린 습기 속, 눈을 벗은 나무는 대신 짙푸른 지의류를 몸에 둘렀다. 어떤 나무는 기둥 중간에 혹으로 몸을 꼬았고, 다른 나무는 안부터 썩어 부러졌다. 15년간 자생한 나무들의 생이 공기 속으로 번져 아득했다.

돈내코의 두 번째 풍경은 살채기도에서 펼쳐진다. 돈내코 코스에서 가장 가파른 지점이 여기부터 평궤대피소까지다. 그 가파른 길 위로 밀림의 느낌은 사라진다. 대신 적송이 호위 무사처럼 서 있다. 2.57㎞ 지점에 적송 지대란 표지판이 있지만 적송이 많이 보이는 건 이 길 위에서다.

적송은 팔을 길게 뻗는 대신 위로 솟구친다. 정적이되 속도가 느껴지는 그 수직의 힘이 숨 막힌다. 수직의 힘이 가시화된 적송 기둥 중간중간엔 수평의 힘으로 딱딱한 나무껍질을 뚫는 가지가 아프게 나 있다. 적송 뒤로 자작나뭇과인 좀고채목이 하얗게 빛나고, 바닥을 덮은 제주조릿대가 앙증맞다.

이 길을 지나 만나는 평궤대피소는 해발 1450m 지대에 있다. 이곳 즈음에서 등산 전의 걱정은 기우가 됐다. 제주를 뒤덮은 구름은 이 고지를 넘지 못해 등 뒤 능선에 걸렸다. 넘지 못한 구름 위로 하늘은 파랗고, 나무들 틈새로 백록담 화구벽 남벽이 또렷하게 보였다.

대피소에서 남벽분기점까지 길이는 1.7㎞지만 높이 차는 불과 150m다. 숲에 가려 제한됐던 시야는 갑자기 넓어지고 발걸음은 절로 빨라진다. 남벽분기점에 가까워질수록 표고차 200m의 남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적어도 10만년 전, 점성이 강해 가파르게 흘러내린 용암은 진회색 조면암으로 굳었고, 굳으며 형성된 주상절리는 10만년간의 풍화에 휩쓸려 제각기 다른 모양의 기암괴석으로 남았다.

돈내코 코스의 세번째 풍경을 구성하는 건 남벽뿐 아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는 오름을 덮은 구상나무·좀고채목과 고산 평원 위로 진군해 오는 구름이 풍경을 완성한다. 등산 3시간30분째, 가벼운 발걸음이 절경에 자꾸만 멈칫한다.

한라산을 오르는 길은 총 다섯 코스다. 이중 관음사 탐방로(8.7㎞·5시간)와 성판악 탐방로(9.6㎞·4시간30분)가 백록담까지 올라가는 코스로, 나머지 세 코스는 백록담을 오르지 못한다. 오르지 못한 정상 대신 백록담 화구벽의 조망을 탐한다.

15년간 식생 보호를 위해 길을 폐쇄했다 작년 12월 개방한 돈내코 탐방로(7㎞·3시간30분)는 서귀포시에서 한라산을 오르는 유일한 등산로이자 남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길이 완만해 가족과 함께하기 좋다. 용천수가 없으니 식수를 넉넉하게 챙겨야 한다.

돈내코 탐방로로 올랐다면 남벽분기점에서 윗세오름을 거쳐 영실 탐방로(5.8㎞·2시간30분)나 어리목 탐방로(6.8㎞·3시간)로 내려오자. 특히 영실 탐방로의 경우 가파르긴 하지만 기암괴석이 늘어선 능선을 옆에 끼고 걸을 수 있다. 돈내코 탐방로는 오전 10시 30분부터 등산을 통제한다. 날씨에 따라 등산이 어려울 수 있으니 날씨 확인도 필수. (064)710-69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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