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지는 5~6월이 산란기다. 알을 낳고 힘 빠진 낙지는 맛도 영양도 떨어진다. 서서히 '정신 차린' 낙지는 가을, 그러니까 10월 이맘때 맛이 들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5~6월 알에서 깬 어린 낙지들도 웬만큼 몸집이 붇는다. 식도락가들이 군침 흘리는 '세발낙지'가 요놈들이다.
박 사장은 "국내산 낙지, 그 중에서도 무안 낙지만이 이 '질(색깔)'이 난다"고 했다. 박 사장은 주방에서 커다란 알루미늄 사발을 가지고 나왔다. 박 사장은 "반찬으로 내는 낙지볶음에 쓰는 중국산 낙지"라고 했다.
중국산은 다리 굵기나 몸집이 무안산의 두 배쯤 됐다. 무안산 낙지는 뻘과 비슷한 회색인 반면, 중국산은 붉은빛이 확연했다. 가장 큰 차이는 생명력이었다. 무안산은 쉴 새 없이 꿈틀댔다. 중국산은 장거리 여행에 피곤이 쌓였는지 몸놀림이 둔하고 느렸다.
박 사장은 "맛 차이도 확연하다"면서 무안산과 중국산 낙지를 잘게 잘라 참기름에 버무렸다. 접시에 철썩 달라붙은 무안 뻘낙지는 떼어내기 버거웠다. '가을낙지 먹으려면 쇠젓가락이 휜다'는 얘기가 빈말이 아니었다.
완강히 저항하던 무안산 뻘낙지는 입에 들어가면 확 달라진다. 부드럽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배 나온다. 중국산은 무안산과 비교하면 질기고 심심하다. 씹으면 약간 비린내가 난다. 하지만 이렇게 둘을 놓고 비교하면서 먹으니 그렇지, 그냥 먹으면 누가 이 차이를 알까 싶다. "서울에서 파는 낙지의 98%는 중국산이라고 보면 돼요."
::: 서울서 낙지 맛있게 하는 곳 (가격은 시세에 따라 바뀜)
● 대방골|무안 뻘낙지만 쓴다. 구하지 못하면 팔지 않는다. 시가로 받는다. 15일 현재 세발낙지 2인분 5만~6만원. '연포탕' 점심 3만2000원, 저녁 3만7000원. 목포가 고향인 주인이 만드는 어리굴젓, 갈치속젓 등 딸려 나오는 20여 가지 반찬만 먹어도 돈이 아깝잖다. 원래 굴비로 명성을 떨치는 집이다. '솔잎찜옛날마른굴비정식' 점심 2만5000원, 저녁 3만원. 부가세 10%가 따로 붙는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맞은편, 진미파라곤 빌딩 지하1층. (02)783-4999
|
● 용궁마당|'낙지바베큐(2만5000원·3만5000원·5만원)'가 특이하다. 중국에서 볶음요리하듯 센 불에 낙지를 빠르게 익혀 불맛이 배어 있다. 식당 인테리어나 밑반찬이 일식당처럼 깔끔하다. 낙지죽, 세발낙지, 낙지볶음, 홍어회, 연포탕, 낙지전, 매생이탕 등으로 구성된 코스메뉴도 있다. A코스 1인 3만원, B코스 2만5000원. 4인분 이상 주문 받는다. 성북구 보문동 효사랑병원 옆. (02)9279-222
● 사랑방|여주인의 어머니는 진도 바닷가 사람인데도 회를 먹지 못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낙지물회(3만8000·5만원)'이다. 큰 사발에 데친 낙지를 매콤새콤달콤한 국물에 잘라 넣고 오이, 배, 양파 따위를 가늘게 썰어 넣었다. 후루룩 마시듯 먹으면 속이 뻥 뚫릴 듯 시원하다. 여기에 소면 사리(3000원)를 말아 먹으면 든든하다. 서울지방경찰청을 보고 왼쪽, 약국과 부동산 사이 골목 안에 있다. (02)737-4351
● 보성식당|원칙을 답답하리만큼 지킨다. '낙지볶음(시가·3만원)'을 주문하면 그제야 낙지는 둘째치고 볶음에 넣을 양파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낙지가 있는지 확인하고 예약해야 하는 건 당연하달까. 이렇게 하는데 맛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너무 달지도 맵지도 않게 낙지 자체의 맛을 살려내는 감각이 탁월하다. '청국장(6000원)', '감자부침(1만원)'도 훌륭하다. 이수역사거리에서 사당역 방향으로 가다가 사당우체국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 왼쪽 가게다. 일요일은 오후 4시까지 연다. (02)523-3637
● 할머니현대낙지집|언뜻 떡볶이를 연상케 하는 양념이지만 매운맛과 단맛의 균형이 절묘하다. '낙지볶음(1인분 2만6000원)'보다 '세발낙지볶음(3만원)'이 낫다. 밥값을 1000원씩 따로 받는다. 첫째·셋째 일요일 휴무. 강남구 신사동, 현대고등학교 맞은편 골목 안. (02)544-8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