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④백경호 주은투신 사장(상)

  • 등록 2001-03-30 오후 1:29:31

    수정 2001-03-30 오후 1:29:31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백경호 주은투신운용 사장이다. 백 사장은 금융계에 몇안되는 실무형 CEO다.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폐쇄적인 채권시장을 보다 개방적으로 만들어 “우리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주장한다. 백 사장은 이론과 실무에 모두 능하다. 주택은행에서 채권운용을 담당했을 때는 농협, 국민은행 등 채권시장의 전통적인 “큰 손”들과 자웅을 겨뤘다. 99년 대우사태가 터져 금융시장이 엄청난 혼란을 빠져들었을 때 정부는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기금”을 만들었다. 이 기금의 운용을 진두지휘한 것이 바로 백 사장이다. 당시 백 사장은 절묘하게 시장과 대결, 채권시장이 기능을 회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은행권 최초로 30대에 이사로 승진했고 지난해에는 주은투신사장으로 옮겨 가장 젊은 투신사 CEO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백 사장은 학맥이나 인맥이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다. 88년 부산대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한신증권(현 동원증권)에 입사, 채권과 인연을 맺었고 SK증권을 거치면서 채권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어느날 채권 수도결제를 하려구 외국계 은행에 갔는데 지금은 일반화된 채권딜링이라는 것을 하구 있더라구요. 당시는 채권을 만기전에 사고 팔아서 돈이 된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어요.” 백 사장은 증권사 재직 시절 정부가 추진했던 채권시장 선진화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미국, 일본 등 선진시장을 둘러본 후 지금의 인터딜러브로커(IDB)를 만들어보려고 시도하기도했다. “미국, 일본을 보니까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채권호가를 집중할 수 있는 IDB를 도입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죠. 실제로 그런 것을 만들기도 했어요.” 지금은 딜링에서 손을 놓고 CEO로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지만 백 사장의 채권운용전략이나 시장을 바라보는 눈은 아직도 독특하다. “우리 채권시장은 듀레이션 조정을 통해서만 이익을 취하려는 단순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은투신은 펀드매니저를 평가할 때 채권인덱스를 활용할 겁니다. 인덱스를 초과달성하기 위해서는 펀드매니저들이 모두 신용리스크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합니다.” 백 사장이 채권시장 선진화 프로젝트를 할 때 고안했던 시장제도가 거의 그대로 정책으로 입안돼 실행되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회사채를 비롯한 신용리스크 투자가 들어있는 모양이다. 국고채에만 매달리는 시장구조를 돌파하려는 전략인 셈이다. 백 사장이 어느날 운좋게 주택은행의 김정태 행장에게 발탁되서 채권시장의 선두주자로 성장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의 채권운용 철학과 채안기금 시절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을 들어봤다.(약력은 인터뷰 하편 기사하단 참조) -바쁘시니까 여유시간도 별로 없겠습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바쁘냐고 많이 묻는 편인데 저는 항상 이렇게 답합니다. “마음은 무척 바쁜데 몸은 편하다” 고. 제가 이쪽 계통에서 일하면서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 한 분 계시는데, 주은투신 사장으로 간다고 하니까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다른건 몰라도 거기 가서 이거 하나만 명심해라. 실무형 사장이 범하기 쉬운 오류가 뭔지 아느냐? 그건 바로 자기가 일을 해봤기 때문에 문제가 눈에 너무 잘 보이니까 부하직원 일에 미주알고주알 개입하게 되는거다. 그러다보면 조직이 안 돌아가니까 가서 뭔가 문제가 있으면 참고, 또 참고, 그래서 이제는 정말 못 참겠다 싶을 때도 또 참아라. 그리고 그 다음 번에 문제를 지적해라.” 라고. 그분 말씀을 따라 행동하다 보니 마음은 무척 바쁜데 몸은 바쁘지 않습니다. 하하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 하지 않으세요? 금리가 급변할 때는 애널리스트들에게 직접 전화로 의견을 물어보신다면서요. ▲저는 사장이니까 운용에 관여할 수는 없고 그래서 여기저기 애널리스트나 이코노미스트들의 의견을 묻습니다. 그러다가 제 생각과 비슷한 의견을 말하면 직원들에게 “누구누구 불러서 세미나 한 번 하자” 이럽니다. 펀드매니저들이 의식하지 않게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 거죠. "시장에서 한 걸음 물러서있을 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세련된 기법을 쓰시네요. ▲한국사람들이 잘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책임과 권한에 대한 확실한 구분” 입니다. 이게 정말 제대로 안 돼있어요. 특히 운용회사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가 뭐냐면 각 매니저들에게 권한만 모두 넘겨준 상태라는 거죠. 운용에 관한 사항은 CIO가 책임을 지고 그 밑으로는 또 펀드매니저가 책임을 지고. 물론 회사의 전체적인 성과문제에 관해서는 CE0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해요. 그러나 제 주위의 CE0들을 봐도 ‘이러한 성과문제에 CE0가 개입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무엇인가’ 를 많이 고민하는 것 같더군요. 저도 최근까지 시장과 접촉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직원들에게 “이 방향으로 가라” 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최종적인 판단은 그들이 하고 그에 따라 그들의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 문제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시장이라는 건 그렇습니다. 저도 시장에 몸담아봐서 알지만 때로는 한 걸음 뒤에서 물러서있을 때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런 순간일 때 저는 저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직원들을 불러서 그들이 어떻게,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곤 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정교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제 나름대로 한번 더 보는거죠. - CE0로 1년을 지내보시니 어떤가요. ▲주택은행에서 자금시장본부장을 하다가 이리로 왔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하는 일의 전체적인 흐름은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가야할 길이 무척 험난하다” 는 생각뿐이죠. 우리가 채권쪽에 많이 집중된 회사다보니 채권시장이 발전해야 우리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채권시장과 같이 발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많이 좋아지긴 했어요. -주은투신의 자체적 시스템문제를 고민하신다는 건가요 아니면 시장전체를 말하는 겁니까? ▲시장전체야 아직 너무 광범위한 문제죠. 하지만 우리 채권시장의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두 듀레이션 베팅에만 관심을 집중한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봐요. 빨리 그런 구조에서 탈피해야 하지않겠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장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크레딧쪽으로 중심이 이동해야 한다” -듀레이션에만 치중하는 운용이라.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이제는 채권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법이 많이 개발돼야죠.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로 선수라고 표현하는데, 듀레이션 이외의 것으로 채권시장을 바라볼 수 있는 전문가들이 많이 생겨야한다는 게 제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특히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이 많이 보강되어야 시장의 선진화가 이뤄질 거라고 믿습니다. 이제 이코노미스트들은 채권시장의 한 축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고 봐요. 씨티은행의 오석태부장이나 모건스탠리의 이진수박사 같은 분들 말이죠. 또다른 한 축으로 삼성투신의 박성진씨 같은 스트레티지스트들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아직 대부분 사람들이 듀레이션 베팅의 영역에 많이 치우쳐있다는 것이죠. 시장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이제 크레딧쪽으로 중심이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작년 한해 채권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와요. 그런데 작년한해의 성과를 인덱스 기준으로 분석해보면 그 인덱스를 넘어선 펀드가 거의 없습니다. 계속 사고팔고를 거듭하다보니 벌기야 많이 벌었지만 인덱스 개념을 도입해서 비교해보면 잘하지 못한 쪽이 많거든요. 그러나 사람들에게 인덱스 개념이 없어서 외형적으로 연간수익율이 11% 나왔다고 하면 무조건 운용을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주식시장에서는 옛날부터 인덱스펀드가 이슈화됐었죠. 물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런걸 감안하면 도입해도 적응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이제는 채권시장도 그 쪽으로 가야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듭니다. -크레딧 애널리스트가 필요하다는 건 회사채 투자에도 주식처럼 분석해서 투자하는 방법을 사용해야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그런 기능들이 채권시장에서 중요하게 작용하겠죠. 사실 지금까지 채권을 해서 수익을 얻는 방법은 하나였어요. 금리가 오를 것이냐 내릴 것이냐를 예측해서 자본이득을 얻는 것. 그러나 앞으로는 신용분석을 잘해서 현재 BBB인 채권이 언제 A가 될 것이냐를 예측하는 사람이 시장을 지배할 겁니다. -주은투신은 회사채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요. ▲자산운용의 특징상, 우리회사가 고객들로부터 받는 자금의 성격이 회사채에 맞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펀드라는 것이 처음에 시작할 때 고객들에게 이러저러하게 운용하겠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시작하잖아요. 그대로 운용을 해줘야만 하고. 주은투신의 경우 상품판매시 주택은행과 현대증권 창구를 주로 사용해요. 요즘 들어 주택은행을 통한 판매가 많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인데, 잘 아시겠지만 주택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성향자체가 위험보다는 안정적인 운용을 선호하시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회사채로 운용해보고 싶은 생각이야 많지만 그러한 자금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요. 그 부분이 다음 단계에서 우리 주은투신이 해결해야 할 중요 과제이기도 합니다. “초창기 채권시장을 보면서 시장을 조직화 체계화하고 싶었다” -사회생활 시작무렵으로 돌아가보죠. 동원증권에 입사해서 바로 채권을 하신 건 아니죠? ▲처음에는 법인영업부에 발령을 받았어요. 법인영업부가 뭐하는 곳이냐면 주식, 채권을 가지고 대 기관영업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무렵 채권시장의 비화를 하나 말씀드릴께요. 86년 우리나라가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면서 통안증권을 대량으로 발행했는데 그 무렵이었어요. 정부는 시중금리 15-16%가 되면 통안증권을 기관에 강제로 배정했어요. 그럼 적어도 2-3%의 갭이 벌어지게 되는 상황인거죠. 그런데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다보니까 증권회사나 은행들이 자금부담 때문에 손해를 봐가면서도 그냥 매각했단 말입니다. 채권을 처음 접한 건 채권 딜리버리(수도결제)를 맡고 나서였습니다. 그 때는 실물결제를 할 때라 채권시장이 3-4시에 끝나면 예탁원으로 직접가서 채권실물을 찾아서 그 기관에 가져다주고 수표를 받아 입금했어요. 반대의 경우 수표를 끊어주고 실물을 회사에 가져와서 입고하고, 뭐 그런 일들을 수행했습니다. 채권시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이거에요. 당시 서울은행이 3대투신의 수탁을 맡고 있어서 모든 결제가 서울은행에서 이뤄졌습니다. 오후 5시 넘어서 가보면 시장처럼 북적북적했습니다. 증권사, 종금사, 단자사 직원들이 총출동을 한거죠. 명동에서 5시 넘어서 조그만 가방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는 사람들은 다 결제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마지막 마무리가 일어나는 곳이 명동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아 저것이 바로 한국 금융시장의 마무리 과정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참 재미있게 보이더군요. 그래서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좀더 조직화, 체계화시키고 싶었어요. 한번 외국은행에 수도하러 나간 적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채권을 산 쪽이었는데 가니까 좀 기다리라고 하는 거에요. 가만히보니 그 외국은행이 원래 가지고 있던 채권을 우리한테 판 것이 아니라 제3의 증권사에서 채권을 사서 바로 우리한테 넘기는 식이었죠. 그때는 중개의 개념이 전혀 없어서 ‘이것봐라? 뭐 이상한 거 하네’ 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도를 하러 온 다른 증권회사 직원을 차나 한 잔하자고 붙잡고 물었습니다. 저게 뭐냐고. 그 친구랑 얘기를 하다보니 저랑 산 가격도 달랐어요. 자그마치 가격갭이 40bp나 벌어지더군요. 그 때 ‘시장에 뭐 이렇게 어리숙한 구석이 있나’ 싶어 시장구조나 시스템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습니다. -그게 87년인가요. ▲87-88년입니다. 우리나라 시장에 나름대로 채권의 중개란 개념을 제일 먼저 도입한 곳은 제일증권, 지금의 한화증권이에요. 제일증권이 88년 채권중개팀을 만든 것이 효시입니다. -그 전까지는 아예 그런 개념조차 없었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증권회사에 전화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사는 정도였죠. 물론 이전에도 부분적으로 중개를 하는 곳은 있었습니다만 영업마인드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어요. (인터뷰 중편, 하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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