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전설리특파원] "주식투자는 간단하다. 뛰어난 기업의 주식을 그 기업의 내재적 가치보다 적은 대가를 치르고 사기만 하면 된다. 그런 다음 그 주식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다"(포브스 1990년 8월6일)
| ▲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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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귀재`, `가치투자의 대가`라는 수식어로 더 익숙한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78)의 투자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로 `가치투자`와 함께 가치투자를 기반으로 한 버핏의 투자방식인 `버핏톨로지`에 대한 신뢰도 극심하게 흔들렸다.
`미국 경제의 리트머스지`라 일컬어질만큼 경기에 민감한 버크셔 해서웨이의 실적은 경기와 함께 고꾸라졌다.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이로 인한 손실로 버핏은 `세계 최고의 갑부`라는 타이틀을 내놔야 했다. 버크셔는 최고등급인 `AAA`를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연례서한을 통해 스스로 실수를 인정한 버핏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차가웠다. 언론들은 `버핏의 실수`, `버핏의 추락`을 연일 보도했다. 비즈니스위크는 "가치투자가 증시의 변동성이 높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위기시 버핏식 가치투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심지어 월가에서는 "노령으로 안목이 흐려졌다"는 비판마저 나돌았다.
| ▲ 2일(현지시간)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가 열린 퀘스트센터. 사상 최대 규모인 3만5000명의 주주와 투자자들이 참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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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지난 주말 버핏의 고향인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개최된 버크셔의 연례 주주총회 분위기도 예년만큼 뜨겁지 못했다. 주주들은 예상대로 최고 신용등급 박탈과 파생상품 투자손실, 주가 급락 등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냈다. 게다가 버핏은 영업이익이 11% 급감한 1분기 실적을 공개해 투자자들에게 다시 한번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러나 주주총회 행사장을 돌며 만난 주주들은 버핏에게 변함없는 신뢰와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실적 악화와 주가 급락은 `단기적`인 것이라며 버핏의 `장기적인 안목`을 믿는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시시피에서 왔다는 존 존스(40, 건축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현재의 주가흐름은 단기적인 것으로 장기적으로 회사의 미래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버핏톨로지를 전적으로 믿는다(I don't have any doubt)"고 말했다.
| ▲ 버크셔 주주총회 행사장에서 만난 주주 존 존스와 그의 어머니 케롤라인 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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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버핏은 지금 기회를 갖게 됐다"며 버핏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것`으로 기대했다. B주 70주를 보유하고 있다는 존스는 "몇 년 전에 주가가 하락했을 때 처음으로 버핏 주식을 매입했고, 나머지 대부분은 지난 3개월간 사들였다"고 말했다. 그와 동행한 어머니 케롤라인 존스는 "존스가 친척들에게까지 지금 (버크셔 주식을) 사라고 권유하고 있다"며 거들었다.
뉴욕에서 오마하로 향하는 비행기에 만난 벤 스타인(23, 투자펀드사 사장)도 "단기적인 주가의 움직임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국 경제에 베팅하고 있는 버핏의 투자관에 동의한다"고 지지했다. 아울러 "(실적 악화와 주가 급락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맨해튼에서 투자펀드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버핏과 그의 스승인 벤자민 그레이엄의 투자방식을 따라 투자펀드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흥분된다"고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 ▲ 뉴욕에서 오마하로 향하는 비행기에 만난 벤 스타인. 어머니가 버크셔의 주주이며 자신은 뉴욕에서 투자펀드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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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가 과도한 레버리지로 수익을 부풀려 보너스 잔치를 벌이다 `황금탑`에서 `탐욕(greed)의 온상지`로 전락하면서 `자본주의의 메카`로 군림하던 미국의 위상도 함께 추락했다.
그러나 단기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솔직하게 실수를 인정한 버핏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는 버크셔의 주주들을 보면서 `자본주의 메카`의 저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버핏이 세계적인 투자가로 발돋움한 배경에는 이처럼 선진적인 투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장기적으로 버핏은 주가 폭락기에 주식 비중을 늘리고, 주가 급등기에 매도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의 위기감이 극도로 팽배했던 지난해 10월. 그 누구도 공격적으로 주식을 사라고 말할 수 없었던 그때 버핏은 대규모 주식 쇼핑에 나섰다.
그리고 7개월 뒤인 지금. 글로벌 경제가 바닥을 통과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주식시장도 상당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뉴욕 증시는 지난 2개월간 35년만에 최대폭으로 뛰었다.
이번에도 버핏식 가치투자 전략이 적중할까. 경제와 증시가 바닥을 지났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버핏식 가치투자의 성패는 5년뒤, 10년뒤에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주총회장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의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버크셔 주식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는 거야. 젊은 기자분도 노후를 위해 이참에 사두는 게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