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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가릴 것 없이 고인 애도
정치권에서는 고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애도 표시가 이어졌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김 전 의원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헌신해왔다”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21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박 의원은 “고인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동지였다”며 “유지를 받들어서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관계 개선, 햇볕정책을 계승·발전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하겠다“고 애도를 표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 세대가 겪었던 ‘야만의 시대’를 다시 돌아본다”면서 “시대는 변화했지만, 그 변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남겨진 상흔은 깊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야권도 추모에 나섰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김 전 의원의 국가를 위한 애국심과 생전 의정활동에 대해 알고 계시는 많은 국민들이 크게 안타까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김 전 의원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목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의 역경과 고난을 함께 한 분”이라며 애도했다.
이밖에 고인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이낙연 국무총리, 문희상 국회의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 씨,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를 비롯한 전현직 정치인 등이 빈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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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삶은 ‘굴곡’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된다. 김 전 의원은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남 목포·신안갑 당선을 시작으로 내리 3선을 했다. 다만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고인은 1974년 8월 15일 김구 선생의 경호실장 윤경빈씨의 딸 혜라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야당 지도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마흔이 넘도록 변변한 직업조차 가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에는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1억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유죄를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 전 의원은 2007년 2월에 특별사면 됐지만 이후 공식 석상에서는 거의 나서지 않았다.
이후 김 전 의원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빈소를 찾았을 때다. 병세가 짙어진 김 전 의원은 몰라보게 수척해졌으며 휠체어를 탄 채 힘겹게 조문객을 맞았다.
김 전 의원은 2001년 펴낸 자전적 에세이집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고인은 “대통령 아들은 영광이 아니라 멍에요, 행복이라기보다는 불행”이라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