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의 산업칼럼] '삼성 오적(五賊)'을 생각한다

오적을 제압해야 삼성의 전성시대 지속 가능
현실안주, 반삼성전선, 성악설형 리더, 게임메이커, 자만 등
  • 등록 2013-08-05 오전 11:19:14

    수정 2013-08-05 오전 11:19:14

[이데일리 류성 산업 선임기자] 삼성전자(005930)가 역대 어느 한국기업도 밟지 못한 미지의 땅으로 들어서고 있다. 국내를 뛰어넘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기업으로 거듭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긴가민가하던 국내외 회의론자들까지 이제는 대부분 인정하는 모양새다. 삼성이 세계 최고봉에 오르면서 국내경제에도 여러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삼성에 자극받아 분투하는 한국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은 한국경제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도 고무적이다.

다만 삼성이 세계 최정상을 차지하면서 삼성을 향해 쏟아지는 찬사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삼성 자신도 놓쳐서는 안 될 중대한 현상이다. 샴페인을 터뜨리기보다 삼성의 미래를 염려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는 것은 그만큼 삼성의 성공은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미완성의 한복판에는 바로 ‘삼성 오적(五賊)’ 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 하나가 삼성이 그동안 쌓아올린 금자탑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그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삼성 내부에서 급속히 확산 중인 ‘현실 안주’ 문화다. 특히 스마트폰과 TV를 양대 축으로 세계 최고기업으로 등극한 이후 삼성의 시야는 미래가 아닌 현재에 고정돼 있는 느낌이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2010년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확정한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사업이다. 3년이 지난 지금 그 성과는 차치하고 대부분 포기상태다. 가장 수익을 많이 내던 황금기를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삼성 나름대로 미래를 개척하려는 시도는 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TV 등 주력사업이 잘나가면서 미래 준비를 위한 조직의 절박함과 비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둘째, 글로벌하게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반(反) 삼성전선이다. 타도 삼성을 외치며 권토중래를 노리는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업체를 필두로 애플은 물론 중국의 화웨이, 하이얼, ZTE, 대만의 HTC 등이 삼성을 공공의 적으로 삼고 있다. 가히 기라성같은 세계적 IT업체들이 모두 집결한 반(反)삼성 연합군이다. 삼성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IT 업계의 최고수라지만 구도가 삼성 대 반삼성으로 고착화될 경우 삼성 필패는 불가피하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삼성이 합종연횡의 전략을 본격적으로 구사하며 친삼성 동맹군을 늘려가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다. 삼성 동맹군 없이는 삼성의 미래도 없다.

셋째, 조직 내 갈수록 득세하는 ‘성악설형 리더’들이다. 조직이 단기 실적에 치중하다 보니 그 구성원들을 피폐하게 만들면서 눈앞의 성과에만 집착하는 리더들이 늘고 있다. 이는 삼성 구성원들의 피로도가 위험 수위에 도달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 상황에서 혁신제품을 내놓으며 시장선도자로 우뚝 서겠다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물론 성악설형 리더도 조직에 필요하다. 가물치가 있어야 함께 사는 미꾸라지도 더 통통해지고 건강하게 큰다. 하지만 가물치가 많아지면 나중에 미꾸라지는 씨가 말라 어장은 문을 닫아야 한다.

넷째, ‘보이지 않는 적’이다. 한순간에 등장해 시장의 판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그들이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삼성의 주력인 스마트폰과 TV를 통째로 갈아엎을 수 있는 신제품을 개발하느라 날을 지세우고 있다. 시장의 승자들에게 게임 체인저는 피할 수 없는 적수다. 이는 잘나가던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한순간에 사라져간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삼성으로서는 사주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고 미래에 대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게 최선의 생존책이다.

끝으로 ‘자만’이다. 무너져간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갖고 있던 공통점이기도 하다. 내가 만드는 제품이 최고고, 경쟁자를 언제든 진압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판단은 결국 기업을 몰락으로 이끈다. 삼성의 자만 수치에도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심지어 일부 최고경영진은 “시장은 고객이 만드는 게 아니라 삼성이 만든다”는 오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언컨대 ‘고객보다 잘났다고 뽐내는 회사’치고 장수하는 기업은 없다.

삼성 오적은 사실상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면 예외 없이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불가분의 동반자다. 그것이 최고 기업의 운명이다. 다만 그 대처에 있어 기업마다 정도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삼성 오적의 힘이 약해질수록 삼성의 미래는 밝다는 점이다. 이는 오적의 힘이 강해지면 삼성의 내일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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