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호의 Intuition]경기부양의 부메랑

  • 등록 2012-09-11 오전 11:39:33

    수정 2012-09-11 오후 2:03:59

경기 침체기, 특히 리더십교체를 전후한 민감한 시기에 도입되는 각종 부양책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재단된 선심성 정책일 가능성이 높다. 여야가 비교적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한국의 정치현실에선 어느 한쪽이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정책을 제시하기란 더욱 어렵다. 비단 한국만의 현실은 아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2008년 집권후 몇개월간 경기부양 패키지의 3분의 1이상을 경제의 효율과는 관계없는 1회성 세금감면으로 채웠다는 게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대선을 앞둔 한국경제가 다시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각종 단기부양책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불과 3개월새 국내총생산(GDP)의 1%(13조원)에 달하는 돈이 경기살리기에 투입된다. 절대금액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추가경정예산때 들어갔던 28조원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뒷걸음질치던 당시에 비해 미미하게나마 성장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선 결코 적은 규모는 아닌듯 하다.

문제는 전 세계적인 경기하강기에 부양카드를 무리하게 밀어붙일 경우 그 폐해의 골은 예상보다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해인 2002년이 그랬다. 당시 정부는 내수진작을 위해 신용카드 버블을 조장하며 전 세계 평균의 3배에 달하는 7.2%까지 성장률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버블붕괴 후 극심한 내수침체의 한파가 몰아치며 한국경제는 그 다음해엔 2%대의 저조한 성적표로 한순간에 고꾸라졌다. 한국은행의 한 임원은 “당시 7%대의 성장중 4%는 무리한 부양책에 따른 버블의 힘이었다”고 토로했다. 경제의 빗장이 이미 활짝 풀려 있는 상태에선 구조적으로 글로벌 경기흐름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재정지출은 속성상 비대칭적이다. 어려울때 돈 풀기는 쉬워도 좋을때 되돌리기는 어렵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이 난무하면서 재정건전성은 이미 위협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부양은 그래서 잠재능력 수준에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특정계층을 명확히 설정하고(targeted), 시의적절하게(timely), 한시적으로(temporary)만 돈을 풀어야 한다는 재정정책의 ‘3T원칙’은 그래서 나왔다. 전도유망한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은 무분별한 경기부양의 폐해를 이렇게 경고한다. “(경기부양은) 마약과도 같다. 혜택은 지금 이 순간 톡톡히 누릴 수 있지만 그 비용과 후유증은 미래에 교묘히 전가된다.” 표심에 눈이 먼 근시안적인 정치인과 관료에겐 불편한 진실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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