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면 나처럼 해"…엔비디아 대항마 만든 이 남자[파워人스토리]

말레이시아계 미국인 탄 CEO
브로드컴, 제2의 엔비디아로 부상
20년 가까이 회사 이끌어 '연봉킹'
M&A로 몸집 키우고 비용 절감 바짝
트럼프 반대로 퀄컴 인수 시도는 불발
  • 등록 2024-12-29 오후 3:01:48

    수정 2024-12-29 오후 7:04:08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깡마른 18세 말레이시아 소년은 미 명문대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장학금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부모는 자녀를 미국 대학으로 보낼 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에 소년에겐 엄청난 기회였다. 소년은 이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이후 펩시코와 제너럴 모터스(GM)에서 재무 고위직을 역임했고 미국 시민권도 획득했다. 그는 한 반도체 회사에 합류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 거물로 거듭났다. 바로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호크 탄 CEO(71)다.

그의 말 한마디에 주가 49%↑

탄 CEO는 지난 12일 실적 발표회에서 “대형 클라우드 기업 3곳과 인공지능(AI) 칩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사명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브로드컴이 언급한 ‘대형 클라우드 기업 3곳’은 페이스북 등의 모기업인 메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로 알려졌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호크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사진=AFP)
월가에선 이를 AI 칩 선두주자인 엔비디아를 위협하는 ‘신흥 AI 시장 강자’의 등장으로 해석했다. 그동안 빅테크 기업들은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의존했지만, 브로드컴의 맞춤형 AI 가속기인 ‘XPU’가 대항마가 부상한 것이다. 브로드컴 주가 목표가를 상향 조정하는 보고서가 줄이었다.

그 결과 최근 한달 브로드컴의 주가는 49% 가까이 올랐다. 같은 기간 대형주 벤치마크인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 미만,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4% 넘게 오르는 데 그쳤다.

“돈 버는 방법은 잘 안다” 자평

이 같은 극적인 주가 흐름은 탄 CEO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탄 CEO는 2006년 싱가포르 반도체 기업 아바고 테크놀로지스의 사장 겸 CEO로 합류했다. 아바고는 휴렛팩커드(HP) 반도체 사업 부문을 모태로 하는 회사로, 아바고는 2015년 통신용 반도체 업체인 브로드컴을 370억 달러에 인수했다. 인수 당시 IT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아바고는 브로드컴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탄 CEO가 줄곧 회사를 이끌었다.

탄 CEO는 과거 한 행사에서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지만 돈 버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공격적인 M&A로 덩치를 키우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반도체, 통신 분야 강자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브로드컴은 2017년 네트워크 장비 기업 브로케이드, 2018년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 CA 테크놀로지스, 2019년 소프트웨어 기업 시만텍의 보안 사업부를 인수했다. 지난해엔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 기업인 VM웨어를 인수하는 계약을 마무리했다.

탄 CEO는 최근 실적 발표회에서도 “10년간 M&A는 이 회사의 핵심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의 일부였다”면서 “우리의 기준에 부합한다면 반도체든 소프트웨어든 훌륭한 자산(인수 대상 기업)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자비 비용 절감도 유명…일부 비난도

아바고의 브로드컴 인수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탄 CEO를 “언론 노출을 꺼리는, 숫자에 강한 사람”(A press-shy numbers guy)이라고 표현했다. WSJ는 그의 과거 동료를 인용해 “그는 좀처럼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며 작은 키와 걸음걸이는 마치 불도그를 연상시키고 그의 성격 또한 그렇다”면서 “직원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이고 마케팅 등에 가능한 적은 돈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평했다.

이밖에도 WSJ는 탄 CEO에 대해 “업무 외에는 거의 시간을 쓰지 않고 결과를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면서 “불확실한 프로젝트에 대한 지출을 억제하고 기존 고객과 수익성이 좋은 분야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탄 CEO를 아바고로 영입했던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관계자는 그에 대해 “대기업을 마치 (경영 효율성과 혁신적인 리더십 측면에서) 중소기업처럼 운영하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그가 마치 사모펀드처럼 기업 인수 후 비용 절감, 혁신 중단 등으로 수익 극대화를 추구한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탄 CEO는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브로드컴에 대한 가장 큰 오해”라면서 “우리는 단순히 수익을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호크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사진=브로드컴)


퀄컴 인수 좌초…트럼프에 뒤통수

물론 그의 지난 20여년 경력에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로드컴은 2018년 퀄컴을 상대로 적대적 인수를 시도했으나 그해 3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내세우며 이를 막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국 기업인 퀄컴이 싱가포르 기업인 브로드컴에 넘어갔다가 중국 화웨이와의 통신 기술 경쟁에서 밀리거나 중국계 기업에 재인수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불과 4개월 전인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 CEO를 초청해 브로드컴이 본사를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로드컴을 “매우 대단한 기업”, 탄 CEO를 “위대한 경영자”라고 치하했다. 그럼에도 국가안보라는 거대한 벽은 넘지 못했고, 탄 CEO는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하고도 원하는 바는 이루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탄 CEO는 FT와 인터뷰에서 퀄컴 인수 실패 원인을 적대적 인수 시도에서 꼽았다. 그는 “당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M&A의 진정하고도 올바른 접근 방식은 우호적이면서 공정한 협상을 통해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흔을 넘긴 그는 최소 2028년까지 브로드컴을 이끌 예정이다. 탄 CEO는 FT와 인터뷰에서 “일하는 것이 무척 즐겁다”며 이처럼 말했다. 미국 자문업체 에퀼라에 따르면 탄 CEO는 지난해 1억6182만달러를 챙겨 미 주요 기업 중 최고 연봉을 챙긴 CEO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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