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얼마 전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CB인사이트가 발표한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 기업 인수 동향 보고서에 의하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인공지능 관련 기업을 가장 많이 인수한 회사는 애플로 총 20개 회사를 인수했고, 그 뒤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이 따르고 있다.
이런 조사에 늘 등장하는 테크 자이언트들이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인공지능 관련 기업을 가장 많이 인수한 기업 톱 5가 전 세계 시가총액 순위에서 애플과 1, 2위를 다투고 있는 아람코를 제외한 톱 5 기업과 순서만 조금 다를 뿐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업 인수와 시총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시총이 높으니 돈이 많아 많이 인수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들 테크 자이언트가 10년간 인공지능 기업을 인수하는 데 들어간 총 투자액은 구글만이 4조 원 이상이고 나머지는 모두 2조 원 내외여서 그 정도 투자액 때문에 돈이 많은 기업 순으로 인공지능 기업을 인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인공지능 기업 인수와 시총 간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인공지능이 이들 테크 자이언트의 기업가치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구글에서 검색을 하려고 검색어를 입력하다 보면 검색창 아래로 구글이 추천하는 검색어들이 나열된다. 어느 기업의 시총을 알아보려고 검색을 하면 검색 결과 첫 번째에 그 기업의 시총을 표시해 줘 더 이상 정보를 찾아 검색 결과에 나온 다른 웹 페이지를 방문할 필요가 없다. 이런 편리함 때문에 구글이 검색엔진 시장의 86%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이런 편리함의 근원에 인공지능이 있는 건 물론이다.
아마존에서 파는 제품의 가격은 경쟁과 수급 등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서 그때그때 인공지능이 다이내믹 프라이싱이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정하게 된다. 동일한 제품의 가격이 때에 따라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제품을 살 때 같이 사면 좋을 다른 제품들을 추천하는 것도 인공지능의 몫이다.
전 세계에서 매초 6만 건 이상의 구글 검색이 이루어지고, 피크 시즌에 아마존에서는 매초 600건 이상의 판매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 검색 결과를 만들어내고 상품을 판매한다면 편리성이나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고사하고 감당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 테크 자이언트에게 인공지능은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이차적 기능이 아니라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그 거래 고객 하나하나에 맞춤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서 천문학적인 기업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핵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을 남들보다 더 많이 인수한 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2017년 구글 CEO인 순다 피차이는 인공지능 퍼스트 전략을 선언했다. 기업가치 1조 달러를 넘어서 계속 생존하고 성장하려면 기술 개발뿐 아니라 사업모델과 운영에 이르는 기업의 모든 것을 인공지능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세계 시총 5위에 오른 구글조차 새삼스럽게 인공지능 퍼스트를 선언하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과연 인공지능이 우선순위 몇 번째인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