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0일 금호그룹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두 대의 택시로 시작해 재계순위 8위까지 오른 금호그룹은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빌린 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혹독한 구조조정의 길에 들어섰다. 과도한 차입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정부도 빚더미에 올랐다. 지난 1999년 93조6000억원이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366조원으로 10년새 4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공식적인 국가채무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공기업 등 공공기관 부채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7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70%에 가까운 규모다.
돈을 풀어 소비를 늘리고 투자를 확대하는 정책은 국민경제 전체에 큰 상처를 남긴다. 화폐가 적정수준을 넘어 공급되면 실물자산에 거품이 끼고, 생산적이지 않은 곳에 돈이 유입돼 경제의 비효율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그렇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도 똑같은 사례다. 돈 잔치, 빚잔치의 끝은 섬뜩하다. 이들처럼 급격한 파열음이 나지는 않았지만 한국도 거품경제 붕괴위험에서 예외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가계는 눈덩이 부채를 짊어졌고, 기업들은 남의 돈으로 다른 회사를 사면서 큰 시련을 맞았다. 정부도 마찬가지. 세금 인상보다는 반발이 적은 국채발행이나 공기업을 통한 재원조달로 경기를 떠받치는 방법을 써왔다. 돈이 흔해지면서 말 그대로 돈 무서운 줄 모르는 분위기가 경제 전반에 팽배해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단견적 정책이 낳은 병폐다. 파국을 막고, 2020년 선진경제를 이끌 생산성 혁신을 위해서는 더 이상 돈 빌려 쓰기가 만만해서는 안된다.
◇ 눈덩이 가계부채
가계 빚으로 인해 발생한 일차적인 문제가 부동산 가격 앙등이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0~2008년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가격상승률은 각각 113.3%, 110.3%로 미국(106.5%)을 웃돌았다. 특히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186%에 달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직간접적인 생산원가가 급증했고, 기업가 정신과 근로의욕이 꺾여 버렸다.
이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규모는 1.4배가 넘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이 가계부채를 축소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조정과정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박사는 "가계부채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집값하락시 소비위축과 개인파산은 물론이고 은행권 신용경색 등으로 이어져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나라빚도 안심못해
가계부채는 결국 저축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지난 2008년 한국의 가계 저축률은 2.5%로 미국(2.7%)보다 낮았다. 기업들의 투자자금 원천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투자가 되살아 날 경우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외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가채무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366조원으로 GDP의 35.6%에 달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는 10년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국민연금 등 4대 연기금에서 나간 돈보다 들어온 돈이 20조~30조원 가량 많았는데도 국가재정에 구멍이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보장성기금 흑자 등을 제외한 관리대상수지는 지난 2000년 이후 단 두번을 제외하고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복지관련 지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난 가운데 지난해는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정부지출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재정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그만큼 정부 빚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는 저출산 고령화로 세원은 줄고 지출은 늘어날 수 있어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국의 국가채무는 OECD 국가중 미국·일본·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 이어 6번째로 빠르게 증가했다. 그리스 등 남유럽국가들의 위기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이유다.
오석태 SC제일은행 상무는 "한국은 아시아 다른나라에 비해 가계와 기업부채가 많다"며 "아직은 사회보장지출이 선진국에 비해 적어 정부부담이 크지 않지만 고령화사회가 진전되면 이런 균형이 깨져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빚부른 저금리..경제도 왜곡
장기간 지속되는 저금리 상황은 부채와 자산가격의 거품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부작용도 낳는다. 이른바 `좀비경제`의 원인이다.
부도업체수를 보면 지난 2008년 말 반짝 증가했을뿐 이후에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어음부도율도 하향안정된 모습이다. 경제위기는 `옥석가리기`라는 순기능도 수행하는 측면이 있는데, 정부의 각종 긴급대책으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꺼리고 안전한 곳으로만 돈을 굴리려는 유혹에 빠진다. 금융위기 이후 통화나 유동성의 동향을 보면 이런 현상이 극명히 드러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대폭 낮춘 이후 협의통화인 M1 증가율은 지난해 초 19%까지 높아졌으나 광의통화인 M2나 Lf는 금융위기 전보다 증가율이 더 떨어졌다. 돈을 많이 풀었는데 금융권 안에서만 맴도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의미다.
한은 관계자는 "아직은 금융권의 위험회피 성향이 강해 실물로 충분히 돈이 흘러가지 않은 상태"라며 "하지만 이렇게 금융기관에 모여있는 돈이 갑작스럽게 실물부문으로 흘러들어가면 물가부분에서 예상외의 충격이 발생할 수 있어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 "마약을 끊어야"
전문가들은 자산가격과 물가안정,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빚으로 쌓은 거품경제와 단절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빚에 의한 성장이 계속될 순 없기 때문이다. 우선 부동산시장의 연착륙 유도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무너질 경우 실물과 금융부문의 충격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박사는 "지금으로선 부동산 가격을 서서히 안정시키는게 가장 큰 관건"이라며 "집값을 하향안정화하고 부채만기를 장기화해 부동산시장 급랭에 따른 실물과 금융시장 충격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라빚과 관련해선 한시적으로 재정준칙제도를 도입하는 등 재정건전성 확보방안이 시급한 실정이다.
임언선 국회입법조사관은 "정부는 괜찮다고하지만 감세정책과 정부지출확대, 선심성 정책 등이 지속되면 재정에 문제가 생겨 후대에 큰 짐이 될 수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재정규율을 강화하고 지출관리제, 세입기반 확대 등의 노력을 강화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저금리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컸다. 오상근 동아대 교수는 "기업의 투자활성화 등 저금리 정책이 바라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가계부채 등 부작용만 커지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며 "당장 금리를 올리면 가계의 충격이 크기 때문에 저금리 정책이 불가피하지만, 저금리가 자칫 가벼운 우울증환자를 만성 우울증 환자로 만들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