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관객 눈높이에 딱 맞춘 수작(VOD)

21년 만에 호주 아동극 총회 초청 ''가믄장 아기''
  • 등록 2008-04-10 오전 10:39:00

    수정 2008-04-10 오전 10:39:00

[조선일보 제공] 장구와 해금으로 인기 가요 〈텔미〉를 연주한 배우들은 "혼자옵서예(어서오세요)" 같은 제주 사투리를 가르쳐주면서 놀이판을 연다. 제주도 설화를 소재로 한 연극 《가믄장 아기》(고순덕 작·남인우 연출)에서 배우 4명은 여러 인물들로 변신하느라 바쁘다. 병풍 하나뿐인 공간은 비어 보이지 않는다. 볼록한 인형과 오목한 인형을 맞대 다른 얼굴을 완성시키고, 나란히 누운 발 그림자 4개(발가락 20개)로 결혼 장면을 빚어낸다.

가믄장 아기는 가난한 집 셋째 딸이다. 연극은 '검은 나무그릇'을 뜻하는 이 착한 아이가 자라며 겪는 고난을 따라간다. 관객이 참여해야 이야기가 완성되는 대목이 많다. 객석은 "쉬~ 쉬~"바람 소리도 내야 하고, "철썩 철썩~" 파도 소리도 보탠다. 부채로 바람을, 파란 천으로 파도를 일으키는데 어린이 관객은 깔깔대며 호응한다. 나중엔 깊은 산속 짐승 소리까지 알아서 내준다.

▲ 극단 북새통의 아동극《가믄장 아기》는 몸짓으로 더 많은 말을 한다 . /북새통 제공

 
가믄장 아기는 초경(初經)을 "가랑이 사이에 뻘건 꽃이 피었다"고 표현하는데, 위기의 순간마다 그 꽃자국(핏자국)난 손수건이 그녀를 돕는다. 숟가락으로 물허벅을 두드려 내는 음악, 뜨거운 밥을 먹는 것 같은 연기, 한 배우가 세 남자 역을 초고속으로 왕복하는 대목에서도 객석 반응이 좋았다. 배우의 몸이 얼마나 다양한 풍경과 소리를 만드는지 확인하게 되는 연극이다. "여기까지 살아온 건 자궁 덕"이라고 말하고, 아동 관객들에게 벼(쌀)가 뭔지 설명해주는 등 교육적인 부분도 있었다.

이 연극은 다음 달 호주에서 열리는 제16회 아시테지(ASSITEJ·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총회에 공식 초청됐다. 한국 아동극이 아시테지 총회 초청작으로 뽑히기는 1987년 《방황하는 별들》 이후 21년 만이다. 《가믄장 아기》는 2004년 초연해 서울어린이연극상 우수작품상·극본상·연기상을 가져간 수작이다.

▶4월 20일까지 대학로 씨어터디아더. (02)969-3997




연극 '가믄장 아기'. /극단 북새통 제공=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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