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날을 만들자)<3부>⑬저금리가 미국을 바꿨다

401(k) 자금유입, 노후대비·증시부양 `동시 만족`
뮤추얼펀드 성장세..장기 자산관리시스템 자리잡아
  • 등록 2006-11-22 오후 12:06:54

    수정 2006-11-22 오후 1:33:30

[뉴욕 = 이데일리 이진철기자] 미국 뉴욕 맨하튼 5번가. 세계 제일의 쇼핑 거리라는 이 곳은,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명품매장과 고급 백화점이 즐비해 있는 거리에는 전세계에서 몰려온 쇼핑 매니아들로 북적거린다. 

불과 5년전 이 곳에선 9.11테러가 발생했다. 온 세상이 경악했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 미국도 무차별적인 테러 앞에선 속수무책인 듯 했다. 하지만 미국은 강했다. '뭔 일이 있었냐'는 듯이 미국전역은 이내 평범한 일상을 회복했다. 

이러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돈'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9.11테러 직후 주식시장은 거래도 없이 충격만으로 폭락세로 돌변했다. 월가의 분위기는 '세상 다 끝난 것' 처럼 험악해졌다. 하지만 '기우'라는 것이 곧 확인됐다. 미국 자본시장을 지탱하는 펀드자금이  '바켄헌팅'을 즐기면서 뉴욕주가를 한달만에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 80년대 본격적인 저금리 도래...저축에서 투자의 시대로

미국은 1970년대까지는 은행예금과 채권이 자산운용의 중심이었다. 가계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이 예금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조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보다 높은 기대수익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커졌다.

1975년 미국의 가계금융자산 구성은 예금 비중이 55%로 지금 우리나라 비중 57%와 큰 차이가 없었다. 80년대 이후 금리가 급속하게 낮아지면서 미국의 가계금융자산도 투자상품쪽으로 옮겨갔다.


▲ 미국도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식 등 투자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NYSE) 모습.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12% 안팎이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에는 3~4% 수준까지 떨어졌다. 각 가정에서는 한두달 쓸 돈만 은행에 맡기고 나머지 돈으론 수익성이 높은 해외투자를 하거나 기업의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게 됐다. 

주식과 같은 투자상품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배당주 투자도 인기를 끌었다. 주식을 장기투자하는 풍토도 생겨났다. 이같은 영향으로 미국 기업들도 점차 주주 중시경영에 신경을 쓰게 됐다. 위험자산을 운용하는 자산운용회사도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저금리 시대는 미국의 투자문화를 바꿔놓았다. '저축의 시대'에서 '투자의 시대'로의 전환을 이끈 셈이다. 그 결과로 현재 미국 가계금융자산의 70~80% 정도가 투자상품 비중이 차지하고 있다. 저축상품 비중은 20~30% 수준으로 줄었다. 예금의 비중은 12%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 장기, 분산투자가 미국 자본시장의 힘

미국은 돈을 빌릴 때는  '모기지론'으로, 투자를 할때도 '뮤추얼펀드'를 통한 장기간 분산투자하는 자산관리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같은 시스템은 미국 국민들의 삶을 여유롭게 하면서 전세계에서 가장 부자국가로 지탱해주는 동력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퇴직자들은 수입의 40% 가량은 공적연금인 사회보장에서 받는다. 나머지 소득은 퇴직연금 19%, 부동산 등 자산소득 14%, 근로소득 25% 등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보장의 재정고갈은 미국인의 노후를 크게 위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401(k)는 미국인들의 노후대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특히 401(k)을 통해 유입되는 대규모 자금은 미국증시를 부양하면서 미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미국 기업연금이 확정급여형(DB)에서 확정기여형(DC)으로 전환이 이뤄진 것은  '401(k)' 제도도입이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의회는 78년 근로자들이 급여의 일부를 떼어서 퇴직계좌에 넣을 경우 그 돈에 대해선 퇴직후 인출때까지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도록 하는 '401(k)' 조항을 내국세법에 추가했다.

미국 근로자들의 401(k)를 통한 투자는 일하는 동안 소득세는 줄이고 투자수익률은 높이는 효과를 얻게 되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401(k)는 기업들의 퇴직금 부담도 해결했다. 실례로 최근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세계적 자동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은 비용절감을 위해 내년부터 퇴직연금제도를 종전 DB형에서 DC형 연금제인 401(k)의 도입키로 했다. GM은 401(k) 도입으로 내년에만 4억2000만달러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인퇴직계좌(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도 기업연금과 함께 미국인의 노후자금 마련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10가구중 7가구는 개인퇴직연금과 기업연금을 통해 퇴직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기업연금과 개인퇴직연금은 주식형펀드 외에도 채권형펀드, 머니마켓펀드 등 다양하게 투자돼 미국의 자본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데오도르 루즈벨트4세 리먼브라더스 대외담당 상무는 "전세계적인 개방화·통합화 경향에 따라 국경을 초월한 자본교류가 늘어나고 있다"며 "활발한 펀드자금의 투자가 국가의 성장역량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국 자본시장의 동력은 '저금리-고령화'

미국의 투자자들은 수익률에 상당히 민감하다. 주가만 오른다면 내가 투자한 기업의 주인이 누가되든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전세계 우량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며 단기 시세차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가 가장 발달된 것도 미국이다. 빌 앤더슨 골드만삭스 상무는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률을 추구할 수 있다면 기업의 경영권을 누가 갖던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익률을 최고로 여기는 미국의 투자자들 성향에서 퇴직연금 자금이 뮤추얼펀드로 유입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수익률이 다른 투자상품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1955년부터 2004년까지 50년 동안 미국 투자자산의 연평균 수익률 평균은 주식(S&P500 지수)이 10.9%로 유일하게 10%선을 넘었고, 채권(미국정부 채권) 6.7%, 예금·단기투자(미국국고채권) 5.4%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지수 평균은 연 4.0%였다.

주식투자 수익률이 높은 것은 장기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식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채권이나 예금 수익률을 앞설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 가장 낮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지난 90년 뮤추얼펀드중 장기펀드 비중은 25%였지만 2004년에는 45%로 거의 두배수준으로 높아졌다. 반면 단기투자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는 돈이 계속 빠져나가면서 2002년 이후 13%선에 그치고 있다.

뮤추얼펀드는 장기 분산투자를 통해 위험은 낮추고 수익은 높여놓는 투자상품으로 미국 투자자들의 생활속에 자리잡았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내 뮤추얼펀드는 자산규모도 갈수록 증가하며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존 프라빈 푸르덴셜국제투자자문 상무는 "미국의 주식시장 상승은 뮤추얼펀드가 가장 큰 동력이 되고 있다"면서 "뮤추얼펀드로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주식시장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자본시장은 저금리를 타개하기 위한 펀드투자의 정착과 맞물려 성장했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각종 연금제도는 미국 자본시장의 안정성을 담보하고 있다. 결국 '저금리-고령화'가 미국 자본시장 발전의 동인인 셈이다.

* 협찬 : 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증권선물거래소,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 후원 :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 도움주신 분들 :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 김일선 자산운용협회 이사, 변진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임종록 한국증권업협회 상무, 최창환 대우증권 전문위원 (가다나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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