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날을 만들자)<2부>⑥합리적 투자가 실종된 코리아

부동산 성공신화에만 익숙한 투자자들
"펀드로 분산투자? 이론적으론 알겠지만…"
노후자금만 8억 필요.."장기·분산투자가 대안"
  • 등록 2006-11-13 오전 11:57:22

    수정 2006-11-13 오후 7:18:41

[이데일리 지영한 조진형기자] 인플레는 노후의 적(敵)이다. 가만 있어도 돈의 가치를 뚝뚝 떨어뜨린다. 노후를 저축상품에 맡겼다가는 '저금리'로 인해 역마진마저 각오해야 한다. 쥐꼬리만한 국민연금에 의존하자니 한숨부터 나온다. 이에 따라 노후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준비에 나서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테마기획 '투자의날을 만들자' 2부에서는 우리 국민들이 본격적인 '저금리-고령화'에 직면해 있음에도 이에 대한 대응이 부족한 현실을 점검하고자 한다. 아울러 '투자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국가산업 측면에서 자본시장의 미비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는 김지중(가명·40)씨는 요즘 어리기만 한 아이들만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서른 살을 넘어 결혼을 한 탓에 이제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다. 맞벌이를 핑계로 늦둥이로 낳은 막내 딸은 이제 고작 네살이다.

조기퇴직 바람으로 앞으로 몇 년이나 직장생활을 더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아이들만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김씨 부부는 여느 맞벌이 부부처럼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형편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서울 변두리에 용케 33평형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모기지론으로 돈을 빌린 탓에 매달 원리금 갚기도 벅차다. 막내까지 대학에 보내려면 15년 이상은 일을 더 해야 하지만 쉰 살을 넘겨 일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매스컴에서 '고령화 쇼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라도 들려올 때면 한숨이 더욱 깊어진다. 연봉제 회사에 다니는 김씨는 월급중 일부를 노후생활을 위해 따로 적립해야 하지만 미처 그럴 여유가 없었다. 김씨의 아내도 몇 년전 퇴직금을 중간정산으로 모두 찾아 썼다. 김씨의 한숨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 예고된 고령화 충격..노후준비 없는 한국사회

저금리·고령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 40대라면 김씨 부부의 고민이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내 일이다. 부모세대는 자식을 낳아 교육시키고 결혼시켜 보내는데 한 평생을 바쳐왔다. 노후가 걱정되지만 자녀교육이나 주택구입 등에 떠밀려 노후준비는 순위에서 늘 뒷전이다.


▲ 최근 한 분양 모델하우스에 몰린 투자자들. 부동산 투자에 대한 믿음은 아직도 절대적이다.
최근 한국 HSBC의 설문조사는 노후에 대한 우리국민의 불안감을 잘 반영한다. 월소득 400만원을 넘는 중산층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됐지만, 상대적으로 잘 사는 이들의 무려 90%가 ‘노후 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인 이들 응답자의 30% 가까이는 노후대비를 아직 시작하지 않고 있다는 반응이다. 

특히 이번 조사가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만큼 저소득 계층을 포함할 경우 상당수의 우리 국민이 노후준비에 매우 미흡할 것임을 충분히 어림짐작할 수 있다.   

다행히 고령화와 핵가족화 등에 따라 노후는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는 의식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걱정'에 비해 실행에 나선 국민들은 많지 않다. 국민들의 자조(自助)의 노력이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삶의 질은 높아지고 있고, 사는데 드는 비용은 치솟고 있다.  우리은행 강남PB센터의 분석으론 4인 가족이 평생 살아가는 데 드는 비용은 총 21억9000만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은퇴시점인 55세 이후 필요한 노후자금만 해도 8억원이 소요된다.

이만한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자녀에게는 물론, 공적연금에도 기댈 수도 없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구조조적인 문제로 국민연금은 후세대로 갈수록 연금수령액이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2013년부터 연금수급개시 연령을 매 5년마다 1세씩 연장, 2033년에는 65세부터나 받게 될 전망이다.

지금 40세 미만의 직장인이라면 국민연금을 65세 이후나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퇴직시점이 짧아지고 있어, 은퇴이후 연금을 받기 까지 10~15년간의 공백기간이 발생한다. 그나마 손에 쥐는 연금은 쥐꼬리만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년전 퇴직연금도 도입됐지만, 아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지금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 10명중 9명은 1인 가구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 30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고 있다. 퇴직후 월 200만~300만원(부부기준) 정도가 필요한 노후생활을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나마 앞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금리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과거처럼 10~20%의 고금리 시절이라면 저축상품으로 안전하게 자산을 불릴 수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낮은 금리에선 노후자산을 준비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 '저금리-인플레'로 노후를 준비할 수단이 마땅찮다

특히 인플레를 감안하면 저축상품에 돈을 맡겨선 남는 것이 없다. 인플레는 가만히 있어도 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연평균 인플레가 지금처럼 3~4% 정도가 지속된다고 치면, 현재 1억원의 현금자산은 18~24년 뒤에는 반토막인 5000만원으로 저절로 줄어든다.

이 때문에 국내외 투자자들은 '현금'이 아닌 '현물'에 주목을 해왔다. 다름 아닌 부동산과 주식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러한 현물 투자자산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다는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이유는 있다. 우선 개발연대를 거치면서 '부동산 불패 신화'는 깨진 적이 없다. 참여정부가 두 팔을 걷고 '부동산 불패 신화'에 도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동산으로 떼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국내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70~80%에 달하는 기형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이같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부자들 대다수가 부동산 투자로 성공한 사람들인 반면 건전한 투자로 부자가 된 사람은 거의 없다.  

주식시장의 불신도 한 몫 했다. 주식시장은 으레 경기상황을 선반영해 사이클을 그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장기적 접근이 아닌 '일확천금'을 노리는 단타매매에 '올인'했다. 증권사들은 투자자 보호는 뒷전인 채 매매를 부추켜 수수료 떼먹는데에만 '혈안'이 됐다. 이러한 과정이 거듭되면서 주식시장을 불신하는 시선이 늘어만 갔다.

강우신 기업은행 분당파크뷰 PB 팀장은 "왜곡된 수단인 줄은 알지만 부동산 투자가 아직까지도 가장 효과적인 투자 방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이같은 상황에서 고객에게 아무리 펀드 등 자본시장에 투자할 시기라고 말해도 설득시키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 지나친 부동산 의존도 낮춰야..투자상품 분산을 통한 노후대비 절실

논어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나온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아직 유효하다손 치더라도,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란 전망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오히려 부동산의 거품이 급격히 빠질 경우 가계는 물론이고 국가경제가 입게 될 충격파를 미리 우려하는 목소리도 고개를 든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우리는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선호를 통해 고령화에 대비했던 일본식 모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적립식 펀드를 통해 고령화를 대비했던 미국식 모델을 따를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주식시장의 최근 40년간 연평균 주식수익률은 12%을 기록하고 있다. 1000만원을 묻어뒀다면 40년 후 9억3100만원로 불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 40년 동안 연 5% 이율의 예금에 넣을 경우 받을 수 있는 금액은 7040만원에 불과하다.

백승화 국민은행 압구정PB센터 팀장은 "고객들은 이러한 해외의 사례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주식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편견이 강하고, 한국시장 자체에 대한 불신마저 크다"고 지적했다.

김창수 하나은행 재테크 팀장은 "부동산으로 한 건해서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시대는 서서히 지고 있다"면서 "목돈이 없는 서민들일수록 향후 필요한 자금에 맞춰 안정적이면서 수준에 맞게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해식 우리은행 강남PB센터 팀장은 "부동산 불패 신화가 무너지고 주식시장이 급등하면 후행적으로 자연스럽게 장기투자가 늘어나겠지만 그 때가 되면 늦는다"고 우려했다. 지금부터라도 눈높이를 낮춰 적립식 펀드 등으로 장기적으로 차근차근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 협찬 : 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증권선물거래소,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 후원 :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 도움주신 분들 :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 김일선 자산운용협회 이사, 변진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임종록 한국증권업협회 상무, 최창환 대우증권 전문위원 (가다나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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